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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 해군과 해상자위대와의 비 교 및 연구 기회를 통해 일본의 밖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의 조직과 기능을 객관적으로 고찰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연구 과정이었다. 그리고 약 1년간의 교육기간 동안에는 학교에서의 공부뿐 만 아니라 9회나 되는 부대방문, 사적지 견학, 산업시찰 등 에도 참가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판문점이나 육·해· 공군 및 해병대의 각 부대에서 볼 수 있었던 즉응태세에서는 한국전쟁으로부터 약 50년이 경과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 직도 북한과의 휴전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남·북이 합해 약 150만 명의 지상군이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 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한편, 조선, 철 강업 등의 산업시찰을 통해서는 선진국으로 발돋움 중인 한 국의 국력을 느낄 수 있었으며, 또한 신라시대의 수도인 경 주를 비롯해 부여, 공주 등의 고도(古都)를 방문했을 때는 한국 역사의 깊이를 실감한 것과 동시에 불교예술 등 일본과 꼭 닮은 문화를 접한 것은 지극히 흥미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해군대학에서의 생활 외에도 한국에서의 또 다른 생활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라이온스 클럽 회원인 민 간후원자님의 진심어린 지원으로 조금도 불편함없이 한국에 서 생활할 수 있었다. 해군대학이 위치하는 대전광역시는 최근 과학연구도시로 서 급속히 발전된 현대도시이며, 대전광역시에 거주하는 외 국인도 6,000명을 넘는다. 국제적인 감각면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시민의 태도도 친절하고 동시에 호의적이었다. 백화점 의 점원이나 택시 운전기사와의 대화 등을 통해‘외국인이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고 하는 한국사람의 ‘정(情)’ 이라는 것도 일단 내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국 및 한국 해군대학에서 얻은 것을 정리해 보면 그 첫번째로, 약 1년 동안 같이 공부한 한국 학생장교들과 친구로서 서로 이해하고, 우정을 깊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두번째로는, 한국에서의 유학생활을 통해 한국을 깊이 이 해할 수 있었고,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간의 교류 유 지와 발전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약간 인 용이 길어지지만“全日本空輸(ANA) 종합 안전 추진 위원 회 위원장” 인 후나츠 요시유키(舟津良行) 씨는‘항공안전을 확보하는 비결’ 에 대하여“항공은 위험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매일 실시하는 항공 운항에 대해서 는 위험과의 투쟁이다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 러한 생각만 있으면 무엇이 위험하며 어떤 곳을 고쳐야 할지 를 알게 되고, 위험 의식이라는 것이 문제 의식으로 바뀌어 100점 만점의 대책은 아니겠지만, 60점 내지 70점의 대책이 저절로 그 때마다 강구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즉, 후나츠씨는“아직도 도달하지 않았다. 보충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라는 인식이 개인의 대처를 촉진시키는 원동 력이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관점에서 향후“바다라는 활동 무대” 를 공 유하는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간의 교류 유지와 발전의 필요성을 내가 새롭 게 인식할 수 있었다 는 것은 후나츠씨가 말하는 ‘비결’과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그 인식을 통 해 보다 발전적인 방 안을 도출하는 것이 야말로 한국 해군대 학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 계속해서 실 천해 나가야 할 과제 일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 해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함과 동 시에 귀국 후에도 우 리 일본 해상자위대 와의 우호 관계 촉진 에 계속해서 공헌해 나가고 싶다. 소연회에서... 오른쪽 두번째 (사진 위), 가운데 (사진 아래) 일본전통의상(키모노) 차림이 필자 해군/2005. 1~2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