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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_4월호 | 89 보다 높은 곳에 있기 위해... 내가 정말 부사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지 겉으로 드러난 대우가 바뀌었다는 이유 하 나만으로 실감한 것은 아니었다. 부사관이 되어 첫 출동을 나가던 날, 나는 디젤기관실 당직 한 직수를 맡게 되었다. 수병 수준의 지식만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나 를 부사관으로 대우해 주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 고, 나를 믿어주는 기관부 가족 모두의 기대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첫 출동을 무사히 마쳤고, 나를 수병으로만 대해오던 시선들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 다. 나는 어느새 진정한 제주함 기관부 내연하사가 되어 있었다. 병 전역 후, 복학까지의 시간이 있기에 시작했던 유급 지원병…. 제도 초입단계라 정보가 잘 전파되지 않은 점 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사실 후회도 있었다. 영외 생활동안 가족·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 했을 때, 힘든 과업으로 인해 몸이 좋지 않았을 때는 내 가 과연 옳은 결정을 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 러나 힘든 하루일과를 마치고 퇴근을 해서 직별 사람들 과 밥 한 끼, 술 한 잔으로 이야기 나누며 군 생활만이 아 닌 사회생활로서 경험 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유급지원병으로 근무하며 가장 값지 게 얻은 수확은 수병으로 지냈을 때는 모르고 지냈던 부 사관으로서의 책임감과 통솔력이다. 수병이었을 때 한번 보고 지나친 일들을 부사관이 되어보니 한 번 더 확인해 야했고, 수병들을 잘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도 가 져야 했다. 수병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다른 계급보다는 수병이 가장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부사관이 되어 보니 사람은 그 직업과 그 위치에 있지 않는 한 알 수 없 는게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처럼 수병부터 장교까지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는 없다. 이 다양한 계층과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한마 음으로 똘똘 뭉칠 수 있을 때, 우리는 싸우면 이길 수 있 다. 아니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한다. 비록 6개월뿐이었지만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자부 심을 갖고 근무했다. 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한 첫 계단으로 나는 유급지원병을 선택했다. 26개월의 기간 보다 짧은 하사 6개월의 기간 동안 얻은 소득이 정말 많 았다. 며칠 후면 나는 사회인으로 돌아가겠지만 내 마음 속 또 하나의 고향 제주함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영원한 제주함 가족이니까... 새벽 3시 반, 내 옆에는 동료 전우들이 서해 NLL을 사수하기 위해 각자의 당직근무지에서 촉각을 곤두세우 고 있다. 이 시간 함장님 방 현창에는 아직도 불이 밝다. 무엇보다도 내가 유급지원병으로 근무하며 가장 값지게 얻은 수확은 수병으로 지냈을 때는 모르고 지냈던 부사관으로서의 책임감과 통솔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