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page

| || | 해군 글 광장 88 | REPUBLIC OF KOREA NAVY 제주함 내연하사(유급지원병 2기) 김 웅 일 32개월간의 긴 항해를 마치며… 전역 일주일 전, 이때쯤이면 대부분 정들었던 전우들 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떠날 준비를 해야 할 때, 나 는 여전히 긴장감 넘치는“실전 총원 전투배치” 라는 방 송, 굉음을 내뿜는 가스터빈 소리와 함께 하고 있다. 30 개월이 넘는 군 생활 중 지금처럼 긴장감과 초조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적은 아마 없는 듯하다. 대북경계 강화 지시, 북한의 일방적인 남북합의문 무효 선언, 제3의 연 평해전이 일어날 수 있음을 우려하는 언론들, 이때까지 만 해도 늘 그랬듯이 지금과 뭐가 다르겠냐며 웃어 넘겼 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판단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 다. 함장님을 중심으로 한 각종 교육 훈련들의 강도가 높 아지면서 필승의 신념과 확고한 의지를 엿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지금의 상황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방 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2006년 7월 그해 여름은 유난히 변덕스런 날씨 탓에 모두들 힘들어 했지만, 바다 냄새 물씬 품은 시원한 바람 은 나의 입대를 열렬히 반겨 주는 듯 했다. 해상병 521기 김웅일, 언제나 특별한 것을 꿈꾸는 평범한 청년은 멋있 는 전투복과 군함으로 바다를 누빌 생각에 두 말 할 것 없이 해군에 지원했다. 이처럼 바다가 좋고, 함정생활을 꿈꾸던 나에게 해군은 분명 특별한 곳이었다. 기계공학 을 전공한 나는 기관병이 되었고 결국 나는 2함대를 수 호하는 최강의 전투함 제주함 내연병으로 승조하게 되었 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함정 생 활은 내가 생각했던 만큼 녹록치 않았고 바쁜 과업에 지 쳐 뒤돌아 볼 겨를 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처럼 하 루하루 보내다보니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처음 마음가짐 은 점차 퇴색되어만 갔다. 그렇게 병장의 계급을 달고 점 점 전역이 다가올 무렵, 유급지원병이라는 제도가 생겼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사관들의 멋있는 근무복과 정복, 수병과는 확연히 다른 월급은 내가 유급지원병이 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지만, 남들과는 똑 같은 길을 걷기 싫어 선택한 해군이었기에 새로운 기회 가 있다면 언제든 다시 도전할 용의가 있었고 나는 그 기 회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유급지원병 2기에 당당히 선발 될 수 있었 고, 짧은 교육을 모두 이수하고 난 뒤, 나는 제주함에서 6개월간 다시 근무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아마 평생 동안 언급될 제주함에서 더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순항훈련을 통해 외국을 방문하는 등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원했던 나에게 한편으 로는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다. 하사로 임관 후 내가 정말 부사관이라는 사실을 처음 느끼게 되었을 때는 한 달간 근무하고 첫 월급을 받았을 때였다. 군입대 전 아르바이 트라고는 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내가 피땀 흘려 노력 한 첫 대가였다. 월급을 받고, 영외거주를 시작하면서, 보다 높은 곳을 향한 나의 선택 (김웅일 하사는 2월말 현재 전역하였습니다.)
90page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