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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_4월호 | 87 새내기 Submariner의 조용한 기쁨 가장 인상 깊었던 훈련은 긴급잠항 훈련. 수상항해 및 잠망경심도로 항해시 각종 위험이 생기는 상황에서 긴급히 잠항을 하는 훈련이다. 수영에서 스타트를 할 때 팔을 귀에 붙여 머리부터 들어가는 자세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긴급잠항 훈련을 하면 뒤통수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었는데 실제로 훈련을 하게 되니 이해가 되었다. 앞으로 심하게 기울어 잠항 과 동시에“함 총원 함미로” 라는 구령에 따라 모든 승조 원이 뒤쪽으로 재빠르게 이동을 한다. 3차원 공간을 장 기간동안 유영하는 것은 잠수함 기동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데 온 몸으로 경험해보니 훈련이지만 사실 재미 있었다. 훈련 중에 앞사람의 등과 허리를 밀어주며 훈 련에 임하는 모습 역시 인상 깊었다. 이렇게 모든 훈련과 생활이 첫 경험의 연속이지만 화 장실 사용법은 정말 생소하면서도 즐겁기까지 하다. 용 변을 볼 때에는 물 내리는 소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 종의 물총인 샷건을 쏘아 처리를 하고, 물이 튀어 미끄 러운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면대 사용 후에는 스펀지로 물기를 닦아낸다. 그리고 한 번 화장실 사용에 한 가지 용무만을 보는 것이 승조원들 간의 암묵적인 관습이다. 잠수함 생활의 또 다른 즐거움은 식사에 있다. 잠수 함에 지원했다고 하니 스테이크 먹으러 가냐는 동기들 의 연락을 받았을 정도이다. 그 깊은 바다 밑에서 무엇 을 먹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투식량도, 우주음식도 아니다. 호텔요리사의 솜씨와 어머니의 정 성으로 무장한 조리장은 매일, 매 끼니 다른 메뉴로 식 사를 준비한다. 삼선해물볶음, 갈비탕, 돼지수육 등등. 일일이 메뉴를 열거하기 구차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좁은 식탁이 더 좁아질 정도로 오르는데 목요일은 포크 와 나이프까지 같이 오르는 날이었다. 곁들일 와인도, 입가심 할 아이스크림도 없었지만 버섯과 함께 듬뿍 뿌 려진 A1 소스에 촉촉한 스테이크는 잠시나마 감상에 잠 길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즐거움이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유대감을 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장교와 부사관으로 이뤄진 특이한 구성. 부서·직별을 뛰어넘는 잠수함 전 반에 대한 지식 공유 등. 잠수함의 함 총원 관계도를 함 장님이 가장 위에 있고 하사가 가장 아래에 있는 사다 리식이 아니라 함장님을 중심으로 하는 원형으로 그리 는 것이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마땅히 쉴 공간도 충분 하지 않은 좁은 잠수함. 서로가 서로의 운명을 의지하 지 않으면 안 되는 강한 믿음. 어쩔 수 없이 어깨를 부 딪히고 발을 밟아야 하지만 한마디 불평없이, 오히려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이상적이라는 생 각이 많이 들었다. 이 무거운 쇳덩어리가 가라앉지 않 고 항해를 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신기한 것이 바로 그 것이었다. 비록 정기출동이 아닌 짧은 훈련치 출항이었 지만 모두를 포용하고 아우르며, 실수를 할 때는 매섭 게 꾸짖으시는 함장님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시간이 금 방 지나갔다. 글을 마무리 짓는 즈음해서 선택과 고민, 나아감에 대해 다시 정리를 해 보아야겠다. 바다로 나온 이상 누 구나 땅을 그리워하지만, 선택과 동시에 후회를 하고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해군이 되었다는 것 자체를 돌이키진 않는다. 첫 항해기간 동안‘좁다. 맛있다. 조 용하다.’ 와 같은 피상적인 감상보다 더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 겨우 짧은 첫 항해를 마쳤을 뿐이고, 정식 Submariner가 되지도 않았는데, 주제넘은 생각일 수 도 있지만, 이제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구나, 후회할 필 요가 없구나, 고민할 필요도 없구나, 결국 옳은 선택을 한 것이구나…. 잠수함이 전략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 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며, 생존성이 높은 무기체 계라서도 아니며 남들과 다른 종류의 배를 탄다는 단순 한 자부심도 아니다. 단지, 좋아서. 힘들겠지만 견딜 수 있는 매력이 있어서, 그 뿐이다. 나의 선택을 조용히 칭 찬하며 다음 항해를 기다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