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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_4월호 | 67 한산도 제승당을 찾아서 충청도의 수군을 말하는데 당시 조선 의 수군 대부분이 삼도의 수군전력이 차지하였으므로 충무공은 수군 최고 의 위치에 있었다. 충무공은 여수에 있던 삼도수군 통 제영을 이 곳 한산도로 이전하여 지금의 제승당 터에 ‘운주당(運籌堂)’ 이라는 건물을 지었다. ‘운주’ 란‘모 든 계획을 세운다’ 는 뜻으로 지금의 해군 작전상황실에 해당하는 건물이라 하겠다. 충무공은 이 곳에서 배를 조선하고, 군량미를 확충하 고, 무기를 만드는 등 전력증강을 위해 다각도로 힘썼 는데 1594년에는 인재를 등용하기위에 조정에 주청하 여 첫 무과를 치르기도 하는 등 1593년 8월 11일부터 1597년 4월 12일 무고하게 옥거(獄車)로 한양에 실려 가기까지 이 곳에 진영을 설치하였다. 총 1,491일의 난 중일기 중 1,029일의 일기가 여기에서 씌여졌고 많은 시도 남겼던 곳이다. 그러나 운주당은 정유재란 때 2대 삼도수군통제사인 원균이 칠천량 싸움에서 패하자 왜군에게 군량미 등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경상우수사 배 설이 불을 질러 안 타깝게도 없어지고 말았다. 1604년 수군통제영이 세병 관으로 옮겨가자 운주당은 폐허가 된다. 그리고는 142 년 지나 1746년에 이르러서야 107대 통제사 조경이 한 산도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여겨 이를 복원하고 건물을 다시 지었으니 ‘제승당’ 이라는 친필 현판은 이때부터 걸리게 된 것이다. 제승당에어린 충무공의혼 사적 제113호로 지정 된 제승당은 약 18만 부지에 제승당 본 건물 외에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 승전고, 대첩문, 내삼문, 충무문, 수루, 유허비, 한산정 등의 건 물이 있다. 제승당 건물 내부에는 현판과 당시 사용했던 무기가 전시되어 있고, 네 개 기둥 현판에는 장군이 지은 한산 도야음(閑山島夜吟) 詩가 방문객을 맞는다. 수국추광모 水國秋光暮 수국에 가을빛이 저무니 경한안진고 驚寒雁陣高 추위에 놀란 기러기떼 높이 나는구나 우심전전야 憂心輾轉夜 걱정에 잠못이뤄 뒤척이는 밤 잔월조궁도 殘月照弓刀 기우는 달이 활과 칼을 비추네 제승당을 마주하고 오른쪽으로는 수루(戍걹)가 자리 하고 있다. 수루는 충무공이 왜군의 동태를 살피던 곳으로 건물 은 누각형식의 열린 공간이다. 원래의 건물은 없어지고 1976년 정화사업 당시 고증 을 통해 신축한 수루는 널찍이 마루로 되어 있어 쉴 곳 을 찾은 방문객에게 한 눈에 바다와 함께 한산만의 아 름다운 경치를 안겨준다. 과연... 누구나 눈 앞에 펼쳐 제승당과 그 앞 바다를 내려다 보고 위치한 충무사 건너편 섬으로의 활쏘기를 훈련했던 한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