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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 REPUBLIC OF KOREA NAVY 한산도의역사와지명유래 한산도는 자부심의 섬이다. 세계4대 해전에 당당히 이름이 올라있는 한산도대첩 의 격전지이다. 임진왜란의 불리했던 전세는 이를 계기 로 단숨에 바뀌어 버렸다. 찬란한 우리 역사에서 이처 럼 호쾌한 순간도 없었던 듯하다. 이런 연유로 한산도는 충무공의 섬이라 할 만큼 섬 내 곳곳이 충무공과 한산대첩에 얽힌 이야기들이 산재해 있다. 많은 지명들 역시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의 승전 에 얽힌 사연들이 전하는데 제승당이 있는 두억리는 당 시 바다에 떨어진 왜구의 머리가 1억개나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문어포는 한산해전에서 대패한 후 한산만 좁은 물길로 쫓겨 온 왜군 패잔병들이 문어포 개 안에서 신선 같은 노인에게 도망갈 길을 물은 바, 이 곳 지형이 뱃길로 한산만 좁은 개 안으로 들어가면 오 른쪽이 개목으로 깊숙이 들어간 좁은 물길이 있어 계속 넓은 바다로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적들이 이 리로 가면 넓은 바다로 빠져나갈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거짓 대답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개미목은 도주로가 끊긴 왜적들이 개미처럼 달라 붙 었다하여 생긴 이름이고, 바다에 떠다니는 왜적의 시체 를 수습하여 매장한 곳이 매외치, 바다 넘어 적의 동태 를 살핀 망산, 조선수군이 진을 친 요새였다는 진두, 군 함을 건조하던 곳인 비추리, 화살을 만들기 위한 대나 무를 키우던 대섬과 죽전, 군사들이 군복을 빨래하여 널었던 의암(옷바위), 뭍에서 전투훈련을 하던 진터골, 군량창고가 있던 창동, 군기창이 있던 야소골, 군수품 하치장이 있던 하포(우리말로 멜개), 이순신이 갑옷을 벗고 잠시 쉬었다는 해갑도 등이 있다. 한산도에서의충무공이순신 1591년 충무공 이순신은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 명되었고, 이는 당시 삼도 수군의 중추 사령부격인 위 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고 충무공이 지휘 한 수군은 7월 한산도해전을 대승리로 이끌었다. 일본 수군의 함정 73척 중 근 60척을 불사르고 파선하였다 하니 일본 수군의 침략전략을 송두리째 무산시키는 결 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이듬해 1593년 8월 10 일 충무공은 한산도 두을포로 진을 옮겼는데, 그해 9월 24일 충무공은 초대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어 삼도 수군을 관장하게 되었다. 삼도라 함은 전라도, 경상도, | || | 역사탐방 제승당 초입의 대첩문, 옛 수군복장의 밀랍인형이 근엄하게 방문객을 맞는다 제승당 전경, 나라의 영웅을 모신 성스러운 곳인 만큼 경내는 무척이나 말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