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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_4월호 | 61 한민족의 역사를 바꾼 고대의 대해전들(2) 삼국통일전쟁 당시의 해양전도. 1. 660년 소정방군 성산을 출발, 덕물도에 도착 2. 661년 1,4월. 소정방 황해를 건너 평양성을 공격 3. 662년 1월 방효태군 평양성 공격 괴멸됨. 4. 662년 손인사군 40만 황해를 건너 덕물도에 도착. 5. 667년 곽대봉군 평양성 공격 6. 661년 2,8,9월 부여풍, 장군, 군사 5천명, 군수물 자 도착 7. 662년 1, 3월 군수물자 도착 8. 663년 왜국의 지원군 도착 9. 660년 1월 사신등 100여명 축자에 도착. 10. 661년 12월 사신도착 11. 666년 정월 사신파견, 6월 귀국 12. 666년 10월 사신파견 13. 668년 추 7월 사신 파견 14. 661년 1월 제명천황 越지역에서 고구려와 회담. 15. 663년 나당연합군과 백왜연합군의 백강전투 668년 9월, 평양성은 수륙양면작전과 남북협공을 받으며 항전을 하다가 끝내 함락당하고 말았다. 700년 의 길고 강한 역사와 70년 간에 걸친 대 전쟁이 막을 내린 것이다. 압록강 이북의 40여성은 항복을 인정하 지 않은 채, 몇 년 동안 전쟁을 계속하였으며, 안시성 은 끝까지 항전을 하다가 671년 7월에야 항복을 하였 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가 이룩해왔던 해양능력과 해양활동범위를 흡수하여 당군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도 충분하게 활용하였다. 671년 10월에 당의 漕船 70 여척을 격파하였고, 673년에는 당나라의 침입을 경계 하기 위하여 문무왕은 大阿 인 徹川을 파견하여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지키게 하였다. 이 전쟁이 끝난 후에 동아시아에는 새로운 질서가 형 성되었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고, 남에는 신라 북 에는 발해라는 남북국 시대가 되었으며, 일본열도에서 는 일본국이 탄생하고, 이 후 우리와는 갈등관계를 맺 은 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는 당이 중심국가가 되었으며, 동아지중해에는 해양의 중 요성이 부각되면서 경제나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하 였다. 고구려는 해양을 활용하고, 해전에서 유리한 환 경을 조성하므로써 동아시아의 강국이 되었고, 끝내는 해양을 활용한 외교전을 활발하게 펼치지 못한 한계로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백제 또한 해양전에 등한시하 면서 나당연합군의 원거리기동 상륙작전과 기습으로 수도가 함락당했고, 부흥운동을 펼쳤으나 해양으로 인 하여 일본열도의 세력과 유기적인 작전을 펼치는데 한 계가 있었으며, 결국은 마지막 대해전에서 패배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그 후에도 우리 역사에서 해전은 우리 의 운명을 결정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거나 계기가 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우리의 바다에서 펼쳤던 해양활동을 이해하는 일, 우리의 현재 운명을 낳은 의미깊은 해전 을 알고 이해하는 일. 이것은 우리 해군으로서는 너무 나 당연한 일이다. 세계의 모든 해군들이 갖고 있는 이 러한 자세와 태도를 우리 해군도 갖는 것이 도리가 아 닐까. 굃舜臣은 자기 바다와 자기배 자기 부하들을 속속들 이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해 해전을 완벽한 승리로 이 끌어낸 해군장군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군인을 뛰어넘 어 자기확신을 바탕으로 진정한 용기를 가졌으며, 군 인으로서 의미를 추구하고 멋을 부리는 분이었다. 한 마디로 정체성에 충실한 분이었다. 그래서 성웅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