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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 REPUBLIC OF KOREA NAVY | || | 해양사 이야기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장수왕은 경제정책을 중요하게 여겨 주변의 여러 지역과 무역을 활발하게 벌였다. 宋 나라의 태조가 북 위를 공격하려고 할 때 군수물자인 말을 800필을 보내기도 하였다. 군 수무역이다. 그런데 장수왕이 중국남쪽인 강남지역에 있었던 송나라에 게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그가 탄 선박이 해상에서 나포되었다. 그 후에 는 반대로 송을 이은 남제가 파견한 사신선이 고구려의 안장왕에게 가 다가 역시 산동반도의 해상(光州)에서 북위의 수군에게 나포되는 일이 있었다. 이러한 해상봉쇄와 선박 나포는 해전 만큼 격렬하지는 않지만 국제적으로 매우 중대한 결과를 야기 시키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백제의 개로왕은 북위에 사신을 보내 豺걎(승냥이와 이리) 같은 고구려가 길을 막아 사신을 보내기가 어렵다는 사정하면서 불만을 토로하였다.( 『위서』 ) 북위도 고구려가 길을 막으므로 백제에 사신을 보 낼 수가 없었다.( 『위서』 ) 이러한 해상봉소로 말미암아 결국 백제는 수도 가 점령당한 채 남쪽으로 천도하고, 개로왕은 죽임을 당하였다. 그리고 더 훗날 김춘추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다가 고구려 해군 척후선에 게 붙들릴뻔 했었지만, 무사히 빠져나온 적이 있었다. 만약 그가 붙잡혔 다면 역사의 물줄기에는 변수가 생겼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민족사 전체와 직접 연결된 상황은 아니지만 소규모의 해전이 신라의 국력을 강화시켜 결국은 삼국통일의 초석을 이룩한 경우 도 있었다. 신라는 505년에는 현제 해군 1함대 사령부가 있는 삼척지역 에 悉直州를 설치하고, 軍主를 굋斯夫로 삼았다. 다시 512년에는 이사 동국대학교 교수 윤 명 철 한민족의 역사를 바꾼 고대의 대해전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