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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REPUBLIC OF KOREA NAVY | || | 기획특집Ⅲ 였다. 진해가 함락 위기에 처했을 때, 미군도 국군도 낙 동강 전선 방어 때문에 안중에도 없었다. 바로 그때 손 원일 총장이 창설한 해병대만이 통영에서 한국 최초의 해군 해병대 단독 상륙작전을 펼쳐 인민군을 격파, 진해 군항을 사수하여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에게 보답하였다. 이를 우리 해병대는 지금도 큰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해군에서 창설시킨 해병대가 진해 군항을 사 수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해군은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되 었다. 김성은 해병대사령관은 훗날 최 장수 국방부장관 이 되어 옛날 해병대를 전폭적으로 배려한 손원일 제독 처럼 구축함 도입과 고속정 조함 등 해군 현대화에 남다 른 집념을 보였다. 역사가 우리에게 여과(곃過) 없이 설 명하는 대목이다. 진해 군항을 지킨 김성은 부대의 영웅적 전투 결과, 적의 거제도 점령계획이 수포화됨으로써 진해는 물론 거기서 차량으로 불과 1시간 거리인 부산의 임시수도를 지켜냈다. 이러한 해병대의 공적은 곧 손원일 제독의 준 비된‘혜안(慧眼)’덕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손 제독이 부산이 뚫리면 한국이 멸망한다고 하여 해 병대로 하여금 구국(救國)을 성취한 점이 그의 선각자로 서 두 번 째 사례가 된다. 셋째, 손 제독의 결단은 그가 인천상륙작전과 수도탈 환이라는 한미 유엔군 연합작전에 당시 걸음마 단계로 서 보잘것 없는 해군, 해병대를 참전케 함으로써 나라의 위신을 살리는 자부심을 갖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해군, 해병대가 연합군들과 어깨를 나란히 그 진가를 발휘하였음은 물론 대한민국이 승리 한다는 믿음을 갖게 하였고 전후 긴밀한 한미동맹을 강 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앙청에 우리 해병대가 태극기 를 게양하여 국민과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우리 해군 과 해병대가 국민의 군대로서 전폭적인 신뢰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결국 손 제독의 선견지명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것이다. 김성은 부대가 통영과 진동리 전투를 마치고 파김치 같이 지쳐 있을 때 일이다. 낙동강 전선, 안강-영천지구 로 이동하라는 신성모 국방부장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만일 그 지시에 따랐다면 해병대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 을지 알 수 없다. 손 총장은 김성은 부대장의 읍소(泣訴) 에 가까운 휴식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여 진해로 이동해 휴식을 취하게 해 주었다. 또 개전 초기에 제주도 해병대사령부가 부산으로 이 동한 후 제주 출신 학도신병 3천여 명을 낙동강 전선으 1953년 임진강 장단 전선에서 손원일 해군참모총장과 본인 공정식 해병제3전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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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창설60주년의 의미와 기념행사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