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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REPUBLIC OF KOREA NAVY | || | 기획특집Ⅲ 리가 생기면 보리 한 끼만 먹었고, 아무 것도 없으면 조용히 위에서부터 아랫사람까지 아무 말 없이 굶었습니다. 우리는 세월이 조금 나아져서 월급을 타게 되었고 그 적은 월급 중에서 성금을 모으 고 부인들은 바느질을 하여 6만불을 모아, 이승만 대통령께 배를 사달라고 드렸습니 다. 이 대통령께서는 감명을 받으시고 정부 돈 6만불을 더 보태시어 12만불로 백두산 호와 또 그 외에 배 세 척을 더 샀습니다. 백두산호가 하와이에 도착한 그날 새벽에 손 제독은 이승만 대통령께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손 제독은 배를 가지고 속히 돌아오시오. 전쟁이 났습니다.”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말이 미 해군에 전해졌고 미 해군은 백두산호에 최신식 포를 달아주고 포탄도 가득가 득 실어주었습니다. 백두산호는 해군사관학교 1기생 20명과 함께 부산항 근처에 잘 도착하였습니다. 그 때 이북에서 내려온 600명의 정보군이 탄 군함을 우리 백두산호 가 침몰시켰습니다. 6·25 전쟁이 시작된 후 해군 가족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마지막 기차를 타고 진 해에 있는 일본 사람들이 살던 관사에 도착시켰습니다. 우리들이 사 온 배 네 척은 먼 저 의사나 박사, 음악가 등 인재들을 실어서 피난시켰습니다. 그 다음은 부둣가마다 모여든 많은 국민들을 실어서 피난시켰습니다. 맨 마지막에 함흥 부둣가에 모여든 우리 민 간인들은 배가 없어 피난을 시킬 수 없어 손 제독이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때 미국의 짐 싣는 배가 나타나 그들을 구해 주었습니다. 당시 몇 대 안되던 자동차에 가족들을 싣고, 한강다리가 끊어진 줄 모른 채 한강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교통을 돕는 기차도, 자동차도, 아무것도 없으니 먹 을 것을 손에 들고, 또 머리에 이고 갈 수 밖 에 없으므로 아이들을 부엌에 넣고, 모래밭에 버리는 사람, 길에 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 었습니다. 미국을 방문한 손원일 제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