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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로 바뀌어 있었다. 군인은 강한 정신력과 충천한 사기가 필수 조건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때다. 국군군의학교 교육을 마친 뒤 나는 국군대구통합 병원에 자충됐다. 이곳에선‘국군’ 병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육해공군 3군 병사가 함께 생활했다. 물론 해 군과 공군은 극소수였지만.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했던 두 수병의 얼굴이 지금 도 기억에 생생하다. 둘 다 나보다는 몇 개월 더 선임 이었고 키가 큰 편이었다. 한사람은 구리 빛의 살찐 얼굴에 수염이 많았고 몸무게가 70kg 이상이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은 희고 마른 얼굴에 날씬한 편이었 다. 두 사람 모두 마음씨가 곱고 얌전했지만 아무도 그들을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아쉽게도 이름이 정확 히 기억나지 않지만, 살찐 사람은‘이 병장’ , 날씬한 사람은‘권 병장’ 으로 불렀던 것 같다. 제대 후 한번도 연락하거나 만난 일도 없는 두 사람 이 이 글을 쓰는 순간 보고 싶어지는 이유가 뭘까. 작 년 봄 이후 해군 자문위원으로 있으면서 알게 모르게 해군과 정(情)이 깊어진 모양이다. 처음엔 솔직히 자문 위원으로서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해군 비전 2030’논의를 시작으 로, 독도함 등 각종 함정과 해군기지 견학, 10년 만에 부산 앞바다에서 펼쳐진 관함식(觀艦式) 참관 등을 통 해 한 식구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민(民)과 군(軍) 의 긴밀한 유대가 얼마나 긴요한가를 새삼 절감하는 계기도 됐다. 요즘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 또는 인공위성 발 사 움직임과 함께 대남(對南) 위협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도발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 도권 방어에 해군의 역할은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군은 긴장감을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철없는 어린 아이 같은 북한의 생떼 와 으름장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성적, 합리적 집단이 아니라는 점 에서 어떤 짓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도발에 도 즉각 격퇴할 수 있는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의 끊임없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젠 과거처럼 라면 등 생필품을 사재기하 는 국민은 거의 없다. 군의 대비태세와 군사력에 대 한 국민의 믿음과 자신감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본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장병들의 강 한 정신력과 충천한 사기다. 1999년과 2002년 두 차 례의 연평해전을 통해 해군은 이 점을 충분히 실감했 을 것이다. 아무리 앞선 함정과 무기체계를 갖고 있 어도 그 자체로 곧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특히 군은 일시적인 특정 정권에 봉사하는 집단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의 군대라는 엄연한 사실을 지휘관들이 명심해야 강한 해군이 될 수 있다. 국민의 지지와 성 원이 있어야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 대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대양해군의 꿈을 키워나가는데도 소홀해서는 안 된 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해군력은 그 나라의 국력을 상 징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로 통했던 영국이 그랬 고, 지금의 유일 강대국인 미국이 그렇다. 우리의 이 웃 중국과 일본도 해군력 증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 다. 이들 국가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려면 우리도 해 군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해야 한다. 이는 선택이 아니 라 필수다. 이것도 국민이 납득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프리카 동부 소말리아 해역의 해적 들을 퇴치하기 위해 문무대왕함을 타고 떠난 청해(淸 海)부대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대양해군의 꿈을 키우는 대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먼 저 파견된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사실 자 체에 자부심을 느낄만하다. 나아가 이들 주요국 해군 과의 긴밀한 군사적 외교적 협력을 통해 파병의 성과 를 최대한 거두고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2009. 3_4월호 | 11 강군(强軍)과‘대양해군’ 에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