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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동 연 주홍콩 총영사 정부가 식품산업을 신성장산업의 하나로 육 성한다는 취지 아래 한식 세계화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 런 계획이 쉽지 않은 과제임을 말해준다. 서울 시내 특1급 호텔 19곳 중 한식당을 운 영하는 곳은 4곳에 불과하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조차 한식을 외국인에게 소개하기가쉽지 않은 형편이다. 동서양의 음식이 경쟁하는 ‘음식의 천국’, 홍콩에도 50여 곳의 한식당이 있지만 특급호텔에는 한 군데도 없다. 이웃 마카오의 베네치안호텔에는 하루 평균 5만6000명의 방문객이 오지만 간이 한식당이 한 곳 있을 뿐이다. 주홍콩 총영사관은 8일 농수산물유통공사의 후원 아래 홍콩 샹그릴라호텔에서 도널드 창홍콩 행정장관 등 홍콩의 유력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만찬을 성황리에 베푼 적이 있다. 입맛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홍콩의 손님들이 한국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한식 세계화의 가능성을 확 인할 수 있어 모두가 고무됐다. 한식 세계화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비전 을 선포하고, 행사 한 번 크게 개최한다고 해서단시일 내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아니다.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한식 고유의맛과 멋은 계속 지켜 나가되 외국인도 배울 수있도록 표준 요리법을 개발 및 보급하고 우수 한 내외국인 한식 요리사를 육성해야 한다. 한식 세계화 사업에 있어 해외에 거주하는 700만 명의 한인은 든든한 버팀목이다. 주재국의 지도층과 유력 인사에게 한식을 대접할 기 회가 많은 150여 개 해외공관장 관저도 한식세계화의 현장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조상이 물려준 문화유산인 한식을 누구나 사랑하는세계의 음식으로 만들면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한식 세계화 위해 표준요리법 보급을 최근 출간한 저서 ‘다케시마=독도 문제 입문’을 통해일본 외무성의 ‘독도는 일본 땅’ 주장을 논박한 나이토세이추 시마네대 명예교수. 그는 “내가 ‘독도는 일본 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밝혔으니 이제 한국 학자가 ‘독도는 한국 땅’임을 밝혀줬으면 한다”며 한국 학자들의분발을 촉구했다. 가나가와=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나이토 세이추 교수갚갚갚갚갚갚갚갚갚갚갚갚갚갚갚 △1929년 오카야마(岡山) 생 △1953년 교토(京都)대 경제학부 졸업△1968∼1993년 시마네(島根)대 교수 △1993년∼시마네대 명예교수 △1993∼2003년 돗토리(鳥取)단기대 교수, 돗토리 단기대 동북아문화종합연구소장 △저서: ‘시마네 현의 역사’ ‘일본해 지역의 재일조선인’ ‘다케시마를 둘러싼 한일관 계사’ ‘다케시마=독도 논쟁’ 등 日 ‘다케시마 자료집’ 반박서적 낸 나이토 세이추 교수 학자적 양심에 따라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 라고 주장하는 일본인 학자가 몇 명 있다. 독도 전문가인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79) 시 마네(島根)대 명예교수도 그중 한 사람. 최근 그가 ‘다케시마(竹島·독도)=독도 문제 입문’(신칸샤·新幹社)이란 제목의 저서를 보내왔다. 일본 외무성이 2월에 발간한 자료집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포인트’ 를 조목조목 논박한 소책자다. 3년 전부터 가나가와(神奈川) 현에서 홀로 칩거생활을 하는 그 를 8일 찾아갔다. 책을 낸 이유를 묻자 나이토 교 수는 “자료집을 보니 ‘이건 해도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 중 형편에 맞는 부분만을 끌어다 쓰고 불리한 사실은 아예 무시해버린 일방적이고도 조잡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이 자료집이 교육현장에서 활용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우려했다. “대개의 일본인은 독도에 대해 무지하다. 게 다가 독도 문제는 책 몇 권을 읽어도 이해하기어렵다. 결국 교사들이 뭘 참고로 할까. 이런 정부 자료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 책은 외무성 주장에 대해 그간의 연구 성과를 총동원해 논박하되 간결하고 알 기 쉽게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가령 ‘일본은 17세기 중반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주장에 대해 1695년 바쿠후(幕府)가, 1877년 메이지(明治) 정부가 각기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 공문서를 제시했다. 또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맡기자고 하는데 한국이 거부한다’는 주장에대해서는 “한국은 당초부터 영유권을 갖고 있 어 굳이 국제사법재판소에 확인을 구할 이유 가 없다”고 반박했다. ―일본인으로서 이런 주장은 국익에 반하는 것 아닌가. “국익에 반한다고 역사적 사실을 바꿀 수 있나. 오히려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 국익이 된다. 나는 일본의 명예를 위해 이 책을 정리했다.” ―그간 우익의 위협 같은 건 없었나. “2005년에 40여 년간 살아 온 시마네 현에 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곳에 머물렀다면 공격 대상이 됐을지 모르지만 숨어 사니 찾을 수없을 것이다. 이제 내 나이 80이고 거동도 불 편하다. 건드려서 뭐하겠나.” ―독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93년 시마네대를 퇴직하고 돗토리(鳥取) 대로 옮겼는데 향토자료관에 독도와 관련한희귀자료가 잔뜩 있는 걸 발견했다. 학자로서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일본인인 내가 ‘독도는 일본 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밝혔으니 이제는 한국 학자가 ‘독도는 한국 땅’임을 밝혀줬으면한다”고 말했다. 독도 문제로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사료를 뒤져 결정적 증거를 들이대 달라는 주문이다. 그는 “독도가 한국 땅임을 밝 혀줄 사료는 좀 더 나올 수 있다” 며 한 가지 예를 들었다. “1900년 대한제국이 공포한 칙령 제41호에 는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죽도(竹島)와 석도(石島)를 더해 울도군을 설치한다는대목이 있다. 여기에서 석도는 울릉도민이 속칭 ‘돌섬’이라 부르는 독도가 분명하다. 아쉬운 것은 독도를 석도라 칭한 사료가 이것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다. 주변 사료, 가령 당시 신문기사나 관청 서류 등을 찾아보면 석도가 독도임을 증명하는 자료가 나올 수 있을 것이 다. 한국 학자들이 좀 더 분발했으면 한다.” 가나가와=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독도〓한국땅 밝히는 건, 日명예 위한 것” 불리한 史實 무시는 국민에 대한 모독 한국학자, 日 꼼짝못할 사료 찾아내길 뙞뙟뙠뙡 제27130호 퉍 홦홨 A29 2008년 10월 17일 금요일 [7] 에도의 패스트푸드 오쿠보 히로코 지음·청어람미디어 “화재로 늘 복구공사가 끊이지 않았던 에도에는 ‘쇼쿠닌(목수·미장이·노무자 등)’이라는 장인이 많았는데, 이들 장인들에게 손쉽고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포장마차의 먹을거리는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지나치게 배가 부르면 일을 제대로 할수가 없으므로 적당히 먹은 상태에서 일을 할 수가 있어 능률적이기도 했다. 이처럼 당시의 서민들과 떼려야 뗄 수 없었던 포장마차의 음식이 바로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 의 대표적 음식인 ‘덴푸라(튀김)’‘스시(초밥)’ 등에 관한 책이다.그리고 이들 음식이 탄생한 에도시대라는 시공간의 생활사를 다룬 보고서다. 일본 단기대 생활과학과(식물영양학 전공) 교수인저자가 에도 시대 식문화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결과를 담았다. 저자는 먼저 이 음식들을 이해 하기 위해선 당시 사회적 상황을살피라고 권한다. 에도 시대는일본에서는 국가의 정체성이 형성된 시기였다. 1590년 도쿠가 와 이에야스가 지금의 도쿄인 에도 성에입성해 1603년경 세이이타이쇼군으로 에도 막부를 열었으며이후 260여 년간 에도는 도쿠가와 정권 의 중심에 있었다. 에도는 오랜 전통 을 지닌 교토나 나라와 달리 ‘성문 밖에는 억새풀 따위의 이엉으로 지붕을 인 집들이 100여 채들어서 있던’ 별 볼일 없는 시골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천하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이신흥도시 인구는 최대 100만 명까지 늘어났다. 당시 런던 인구 가 70만 명 정도였다. 그러던 에도에서 1657년 ‘메 이레키 대화재’가 발생한다. 에도 시내 70%가량을 태워버린 대형 참사였다. 그 결과 도시 복구겸 제대로 된 수도 조성을 위해전국에서 장인들이 모여들었고화재가 잦은 에도에 빈터를 상가로 조성하며 번화가가 형성된다.에도로 올라온 이들은 대부분 가 족과 떨어져 혼자 일을 찾아온남성이었다. 혼자인 남성이 으레그렇듯, 이들에게 끼니를 해결하는 문제는 만만치 않았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이런 사회적 필 요에 의해 생겨났다. 무엇보다 패스트푸드 인기는 에도라는 도시의 문화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신흥도시니만큼 에도는 특별한 문화라는게 없었다. 도시 초기에 물자 자체를 교토나 오사카 지역에 의존했으며 문화 역시 옛 도시의 ‘고급 귀족 문화’ 영향 아래 있었다. 하지만 덴푸라 스시소바 등으로 대변되는 독특한 먹을거리가 인기를 끌면서 에도는 ‘서민이 주도하는’ 문화로 바뀌게 된다. 즉, 멜대를 메고 돌아다니는 행상과 포장마차 등이 도시 의 주요 풍경이 되고, 결국 서민음식은 상류층까지 포괄한 대중음식이자 국민음식으로 번지게 된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국내 독자에게 재밌는 일본 음식에 대한정보를 전해줄 뿐 아니라 음식의연원과 관련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와 세세한 수치도 함께 담았다. 책에서 언급했듯 음식은 ‘인간 이 살아가는 땅 위에서 오랜 세월엄청난 비용을 들여 가꿔 온 역사와 문화의 결정체’다. 한 사회의먹을거리 역사를 살피는 것은 역사의 결정체를 가늠할 수 있는 길이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그 연구의 의미를 일러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日 포장마차 서민음식의 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