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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국방연구 제51권 제2호 가 미흡한 점 등이 특히 부각되었고, 다음에서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논의해 본다. 2. 조직과 예산의 증가와 업무 효율성의 저하 어느 조직이든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개혁을 단행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한 다. 미 정보공동체 역시 정보기관이 설립된 이래 조직을 개편하고 인원을 조정하는 등 개혁과 진화의 과정을 지속해왔다. 대부분의 개혁은 적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예측하지 못하거나 적의 동향에 대한 정보판단의 왜곡 등 국가적인 차원의 정보실패가 발생하고 나서 그러한 실책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시도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미국의 정보공동체 개혁에 관련하여 한 가지 특징적인 양상은 정보실패가 발생할 때마다 정보기관을 문책하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조직을 신설하거나 기존 정보기관의 조직과 인원을 증편하고 예산을 증강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부처 이기주의 또는 관료주의적인 병폐에 기인한 것으로서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익히 알려진 바, CIA는 1941년의 “진주만 기습”으로 인해 설립되었다. 사건의 경위를 조 사하는 가운데 군 정보기관들의 불충분한 정보공유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적시에 적의 기습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국가적 차원의 정보기구로서 CIA가 설립된 것이다. 1950년의 한국전쟁도 미국 정보기관들이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정보실패로 기록된다.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지시로 정보실패의 원인을 조사했던 위원회는 군 정보기관들이 충분한 협조와 통합된 노력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북한의 남침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22) 이후 소련의 군사력 수준 및 동향에 대해 군 정보기관들의 정보판단이 각기 다르게 나타남으로 인한 문제점이 부각되었다. 그래서 군사정보를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기구를 설립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1961년 10월 1일에 국방정 보국(DIA)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거의 행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어 정보실패가 발생할 때마다 개혁이라 는 미명하에 정보기구들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하부조직을 더욱 증가시키고 인원을 늘려왔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초반 미국을 목표로 하는 테러 공격이 있은 후 당시 DCI 였던 윌리엄 케이시는 1986년 CIA 공작국 산하에 국방부, FBI, 연방항공국(FAA) 등 다른 정보기관들의 인원들을 파견 받아 ‘대테러센터’(Counter terrorism Center, CTC)를 신설했다. 이 새로 22) Stan A. Taylor and David Goldman, "Intelligence Reform: Will More Agencies, Money, and Personnel Help?" Intelligence and National Security, 19. 3(Autumn 2004), p.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