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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국방연구 제51권 제2호 이 표에서 이란의 경우 1950년대 후반 이후 미국과의 동맹 및 석유개발에 힘입어 상대적 승률이 증가되고 있다. 반면 1970년 중반에는 이라크가 소련과의 긴밀한 관계 및 프랑스로부터의 무기 수입으로 인해 상대적 승률이 증가되고 있다. 그리고 두 국가간의 불확실성 정도 변화는 동맹구조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이란은 서방국가 및 걸프 지역내 보수적 국가들과 동맹을 강화한 반면, 이라크는 소련진영과 걸프지역 남단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였다.36) 이러한 군사력 건설 및 동맹구조의 변화는 이란과 이라크의 분쟁 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두 국가간의 국제분쟁 경험 중 하루 미만의 초단기 분쟁을 제외할 경우, 이란은 1950년부터 1982년까지 총 다섯 차례의 분쟁을 일으켰다. 이 분쟁들은 이란의 승률이 증가되는 시기에 일어났다. 1950년대 후반의 첫 번째 승률 증가와 함께 이란은 두 차례의 분쟁을 일으켰다. 최초의 분쟁은 1959년의 샤트 알 아랍(Shatt-al-Arab) 충돌이며, 다음번 분쟁은 1961년 샤트 알 아랍에서의 수로 이용권 분쟁이다. 그후 이란의 승률은 1960년대 후반 다시 높아졌고 그 결과 이란은 1971년 카나긴(Khanagin) 지역 충돌과 아부 무사 (Abu Musa)와 툰브스(Tunbs) 섬 분쟁을 일으켰다. 반면 이라크의 경우 불확실성 정도와 승률 변화가 연계되어 분쟁 시기와 관련을 갖는다. 1970년 이후 불확실성이 증가되면서, 이라크는 1974년에 두차례의 분쟁을 일으킨다. 바다라쉬(Badarash) 분쟁과 쿠르드 반란(Kurdish Revolt) 관련 분쟁이 그것이다. 불확실성의 증가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로 정점에 도달하고, 동시에 1979년 이라크의 상대적 승률도 급격히 증가한다. 그 결과 이라크는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이란과 이라크 관계는 예상 승률과 불확실성의 증가가 의사결정자의 분쟁 시작 결심을 유도하는 과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Ⅴ. 결 론 이 글에서는 국제분쟁의 시작이라는 의사결정에 공개 및 비공개정보의 조합이 어떻게 영 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였다. 실제 대부분 비공개 정보 상황으로 점철되는 국제분쟁에서 의사결정과정은 일반적인 정책결정과는 달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공개 및 비공개 정보간의 조화 상태가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 35) Anthony H. Cordesman, Iran and Iraq: The Threat from the Northern Gulf (Boulder: Westview Press, 1994), pp.14-18. 36) Ibid. p.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