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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미국 해병대의 발전에 미친 영향:상륙전 경험을 중심으로 147 안에 병력과 장비를 효율적이고 신속한 투사를 가능하게 해주었다.39) 넷째, 상륙이후 해안에 상륙한 상륙군들을 통제하기 위한 보다 나은 해안 통제 계획이 수 립되었고, 경 장갑차(37mm)의 비효율성으로 인해서 중형 탱크(75mm)로 교체되었다. 다섯째, 상륙군에 대한 화력지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인근 도서를 제압하여 포병을 위치시키기 시작했으며 보병과 기갑, 공병 간의 제병 협동 작전을 향상시키기 위한 전투 편 성에 의한 팀 훈련이 추가적인 훈련과제로 포함되었다. 여섯째, 각개 병사들의 전투력 발휘문제와 관련하여 편제 화기인 바주카, 화염 방사기 등 은 갱도화 되어 있는 적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폭파 장약의 증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였 으며, 공병만이 아닌 전(全) 상륙군들에게 폭파에 대한 훈련이 요구된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일곱째, 대량으로 발생하는 전사상자를 처리하기 위하여 증가된 의료 지원의 필요성과 보 다 현실적인 사상자 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40) 기타 전투근무지원 사항으로 탄약과 보급품들을 운반할 시에 보다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파레트를 이용한 이동의 필요성 등 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전술 교리상의 미흡한 점들은 상륙군이 태평양 상의 수많은 도서에 대한 상륙 전을 수행하면서 체득한 교훈들이었다. 미국 해병대는 이러한 교훈들을 교리에 반영시켜 시행착오의 반복을 방지할 수 있었고, 이후 성공적인 상륙전 수행을 위한 바탕이 되었다. 다양한 환경하에서 상륙전에 대한 경험의 축적과 장비의 발달, 교리의 발전은 해병대가 상륙전을 자신만의 고유한 임무로 발전시켜나가는데 있어서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무기체계를 도입하고 전술 교리를 발전시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운용하고 관리해 나갈 수 있는 인력의 전문성과 지휘통제 체제, 군수지원, 정보 등 전장의 제 핵심 요소들이 제대로 융합되지 않을 경우에는 제 역할을 수행하기가 곤란하다. 미국 해병대는 이러한 문제점 을 극복하기 위하여 부대구조를 상륙전에 적합하도록 변화시켜 나갔다. 2. 부대 구조의 변화 미국 해병대는 1939년 9월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시에 18,000여 명으로 그 규모는 뉴욕시의 경찰병력과 비슷하였고, 수행했던 임무는 해군의 전진기지 방호, 국내외의 반란 39) Rottman(2004 a), pp. 9-12. 40) Rottman(2004 a), p. 8.; Millett(1991), p. 439.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미군 전체의 사상자를 보면 전사 및 부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91,557명이었으며, 부상자는 670,846명이었다. 이중 해병대는 19,733명의 전사 및 부상후 사망과 67,207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는 전체 미군 전사상자의 거 의 10%에 해당하는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