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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국방연구 제51권 제2호 하여 해상으로부터 전력을 투사시키는 공격작전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상륙전 수행 교리와 전술의 발전은 해병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해군과 육군에 전파되고 교육되어 전 반적인 상륙전 수행 능력의 향상을 가져다주었다. 1. 상륙전 교리와 무기체계의 발전 아시아ㆍ태평양 전쟁 초기 상륙전 교리의 수준은 전간기중 교리를 개발하고 이를 적용하 기 위한 훈련을 실시하였으나 여전히 초보단계에 있었다. 비록 해병대가 상륙전 교리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앞선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던 군이었다고 할지라도,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시기의 교리 발전의 수준과 연습들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1933년 12월 7일 해군성 일반 명령 제 241호에 의해 함대 해병대(FMF; Fleet Marine Force)를 설립한 이후부터 해병대와 해군에게 상륙전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지만, 예산의 부족으로 발전의 속도는 느리게 진행되었다. 해병대는 1934년도에 상륙전 교범을 발간하여 육군, 해군에게 상륙전에 대한 기본 교리를 제공하였다. 해군은 1938년, 육군은 1941년도에 이 교범을 채택하였다.31) 전전(戰前)에 이루어진 해병대의 상륙전 연구들은 상륙 돌격을 위한 지휘관계, 해군 함포지원, 공중 지원, 함안이동, 해안두보 확보, 군수 등 6가지의 요소들이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1934년 교범에서는 상륙군 조직을 - 수송(상륙군을 수송하기 위한), 보호(상륙을 보호하고 방호함), 화력지원(해군 함포), 그리고 항공(항공 엄호 및 근접 항공 지원) 집단들과 같은 임무 조직 집단으로 불렀다.32) 비록 상륙전에 대한 교리가 정립되기 시작하였고, 연구가 진행되었을지라도 해군이나 육 군은 해병대에 비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해군이 상륙정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적은 수의 함정만이 병력 수송에 적합하였으며, 상륙전을 수행하기에 가용한 함정의 수는 제한적이었다.33) 육군은 1940년도부터 상륙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으나, 훈련은 제한적으로 실시하였다. 그러나, 1942년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게 됨으로써 육군은 상륙전의 발전을 위하여 심대한 노력을 경주하게 되었으며 대규모의 훈련을 실시하게 되었다. 1942년 4월 말에 육군은 대서양에서의 상륙전은 육군이, 태평양에서의 작전은 해병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제기하기도 하였으나, 해병대는 대서양과 태평양 모두에서 작전을 해야 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립하였다. 육군도 태평양 전역에서 31) Allan R. Millett, For the Common Defence (New York : The Free Press, 1994), pp. 390-396. 32) Isely and Crowl(1951), pp. 37-58. 33) Krulak(1999), pp. 88-99 ; Smith and Finch(1948), pp. 4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