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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미국 해병대의 발전에 미친 영향:상륙전 경험을 중심으로 141 순번 상륙지역 일자 상륙군 함호명 (작전명) 1 과달카날 -툴라기 42.8.7 해병 1사단 Watchtower 되었으며 해군의 적극적인 함포와 항공지원하에 실시되었다.25) 태평양 전역은 니미츠 제독 예하의 태평양 지역(Pacific Ocean Area; POA) 전역과 맥아 더 장군 예하의 남서태평양 지역(Southwest Pacific Area; SWPA) 전역으로 나누어졌다. 태평양 전역(POA)은 캘리포니아로부터 중국 연안까지 그리고 태평양의 남과 북쪽 전역이 해당되었다. 반면에 남서태평양 전역(SWPA)은 필리핀, 네덜란드 동인도의 대부분 지역, 오스트레일리아, 뉴 지니아, 북부 솔로몬 제도가 해당되었다.26) 이 지역에서는 2개의 육군 야전군(총 6개 군단)과 22개의 사단, 3개의 해병대 사단이 전투에 참가 하였다. 해병대의 작전 중심 지역은 태평양 지역 전구의 일부분인 광대한 남태평양과 중부 태평양 지역이었다. 태평양 전역에서 미국 육군과 해병대는 총 44회에 걸쳐 상륙전을 수행하였다.27) 전쟁이 개시된 이후 상륙전은 해군이 제해권을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한 이후 반격작전을 시작할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최초의 상륙전은 과달카날에서 이루어졌다. 과달카날 상륙전에 대한 성공으 로 미국은 태평양 전역에서 반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28) 태평양 상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도서들에 대하여 미국과 일본의 전쟁 지휘부는 서로 상 이한 전략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일본은 정복을 확장시켜 나가고 정복된 영토 유지와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해군기지와 비행장 건설을 위한 전략적 방어 진지로 인식을 하였다. <표 1> 태평양 전역에서 미국 해병대의 상륙전 현황29) 25) Bartlett(1982), pp. xvii-xx. 26) 군사적으로 태평양 전역은 남부, 중부, 북부의 지역과 남서부 태평양 지역으로 양분되었는데, 전자는 해군의 작전으로 니미츠 제독이, 후자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지휘를 하였다. 이러한 지휘체계의 양분은 태평양 전구에서 단일화된 하나의 명령체제를 형성하지 못하였으며, 각 군의 이기주의에 의하여 많은 갈등을 표출시키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Ronald H. Spector, Eagle against the Sun (New York : Vintage, 1985), 142-145.; 육군과 해군의 지휘권 관계는 Isely and Crowl(1951), pp. 83-95 참조. 27) Gordon L. Rottman, US Marine Corps Pacific Theater of Operation 1944-45 (New York : Osprey, 2004), pp. 6-7. ; Millett(1991), p. 439. 44회중 육군이 26회, 해병대가 18회의 상륙작전을 실시하였다. 28) Robert Debs Heinl, Soldiers of the Sea : The United States Marine Corps, 1775-1962 (Maryland: The Nautical & Aviation Publishing Company of America, 1991), pp. 350-376. 29) 전쟁 기간중 6개의 미국 해병대 사단이 18회, 18개의 육군 사단이 26회의 상륙전을 수행하였다. 그러 나, 병력규모 면이나 임무의 중요도에서 볼 때 해병대에 의한 상륙전이 훨씬 더 전쟁의 방향을 전환시키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해병대는 작전중 경험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상륙전 교리에 반영하여 발전시켜 나갔다. Millett(1991), p. 439. <표 1>은 논문의 목적상 미국 해병대가 실시한 상륙전을 정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