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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국방연구 제51권 제2호 오렌지 계획에 의하여 육군, 해군, 해병대로 편성된 합동 훈련 부대가 대서양 함대에 조직 되어 상륙훈련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지휘참모대학(Command and Staff college)과 해군대학(Naval War College)에서는 상륙전 교육을 강화하였는데, 특히 해병학교에서는 전체 교육시간에서 상륙전 관련 수업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1920년대 중반 25%였던 것이 1930년대 중반에는 60%로 증가되었다.23) 상륙전에 필요한 제반 장비와 함정을 개발하기 위하여 합동 상륙주정위원회(Landing Craft Committee)가 구성이 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MLC(Motor Landing Craft), LCA(Landing Craft Assault), LCM(Landing Craft Mechanized), LST(Landing Ship Tank) 등을 개발하고 건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해군의 함정 건설 프로그램은 주로 전함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륙전을 위한 수송함의 건설은 미진한 편이었다. 미국 해병대는 다양한 태평양 도서들의 작전환경을 고려하여 새로운 상륙 장비를 만들었는데, 산호초를 극복하기 위한 상륙장갑차 제작도 이러한 사례중 하나였다. 또한, 1941년 당시 일본이나 영국군에서는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개발을 하지 않았 던 상륙용 탱크를 개발하여 제 2차 세계대전에서 18,000대를 사용하였다.24) 오렌지 계획에서 볼 수 있듯이, 가상의 적을 상정하고 그에 따른 군사력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은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으며, 전장의 환경에 따라 군사력 건설 방향이 달라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 해병대는 상륙전에 대한 교리의 연구와 아울러 태평양 지역에서 다양한 전장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상륙장갑차를 개발하는 등 무기체계의 개발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체계적인 면모를 갖춘 상륙전을 수행하기 위한 교리와 장비, 교육훈련은 모두 불완전하고 부족한 형편이었다. 2.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의 상륙전 오렌지 계획에 의하여 상륙전을 수행하기 위한 기본 교리와 장비가 개발 되었고, 충분하 지는 않았지만 상륙전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아시아ㆍ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상륙전을 실시하기 위하여 투입된 미국의 상륙군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극복해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태평양 전역에서 상륙전에 관한 연구는 미 해병대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 지역에서 상륙전은 육군과 해병대에 의하여 각각 혹은 합동으로 실시 Shores)’를 발간하였다. 23) 당시 상륙전에 대한 육군이나 해군 수뇌부에 대한 인식과 지원, 교육훈련에 대해서는 Holland M. Smith and Percy Finch, Coral and Brass (New York : The Curtis Publishing Company, 1948), pp. 43-63 참조. 24) Krulak(1999), pp. 88-110.; Murray and Millett(1996), pp. 8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