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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미국 해병대의 발전에 미친 영향:상륙전 경험을 중심으로 139 지을 수 있을 것으로 가정하였다. 이에 따라, 이들 전역에서 장기간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전함, 중형 및 경형(輕型)의 항공모함, 구축함 그리고 잠수함이 요구되었던 것이다.18) 미국은 서태평양에서 필리핀이나 다른 전초 기지로부터 일본을 억제할 수 있으며, 태평양 함대는 캘리포니아에 집결하여 파나마 운하에 대한 공격을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또한, 동원령이 선포된 이후 태평양 함대가 서태평양을 횡단하여 괌이나 필리핀에 있는 미국 지상군을 증원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후 일본 제국주의 해군과 결정적 전투를 시행 하고 일본 본토를 봉쇄하려 하였다. 해군이 전진기지를 만들고, 필요하다면 이를 적으로부터 탈취해야했기 때문에 상륙전력 을 건설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군사전략적 고려에 의하여 미국은 적의 저항에 직면한 상태에서도 상륙전을 수행할 수 능력을 발전시켜야만 했다. 미국의 상륙전력 발전은 지전략(geostrategic)과 정치, 예산지원, 작전 교리 그리고 과학기술 등 의 다양한 요소 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전되었다.19) 미군은 오렌지 계획에 의하여 상륙전 교리를 발전시켰다. 해군성에서는 해군참모총장실, 해군 일반위원회, 해군대학, 해병대 사령관실에서 상륙전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상륙전이란 임무를 매우 중요하게 간주하고 연구한 곳은 해병대뿐이었다.20) 리준(John A. Lejeune) 해병대 사령관은 상륙공격 임무의 중요성과 이것이 오렌지 계획에 끼치는 기여도를 정확하게 예측하고서 상륙전 교리 개발에 집중하였다. 1920년 해군에 의하여 해안 작전 수행 지침을 제공하기 위한 교범이 발간되었으나, 너무나 간략하였고 상륙에 관한 내용은 전체 760페이지 중에서 단 7페이지에 불과하였다.21) 리준 해병대 사령관은 엘리스(Ellis) 소령을 통하여 1921년에 폭격, 기뢰제거, 전투 적재, 연속적인 병력파(wave)의 하선, 약한 측방의 점령 등과 같은 전술교리에 대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1930년 초부터 다양한 작전 환경하에서의 상륙전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상륙전시 항공력 운용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었다. 상륙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연구를 진행한 결과 1934년에 ‘상륙작전 지침서 초안(Tentative Landing Operation Manual)’이 발간되었다. 이후 이 교범을 토대로 해군과 육 군에서는 상륙전을 수행하기 위한 자체 교범을 발간하였다.22) 18) 맥스 부트 지음, 송대범ㆍ한태영 옮김, 전쟁이 만든 신세계 (서울 : 프래닛 미디어, 2007), pp. 482-535. 19) Murray and Millett(1996), pp. 50-95. 20) Miller(1991), pp. 319-343.; Isely and Crowl(1951), pp. 33-36. 21) 이후 이 교범은 1927년도에 개정되었으나 상륙전에 관한 것은 단 5페이지에 불과하였다. Isely and Crowl(1951), pp. 34-35. 22) 이 교범을 토대로 해군은 1937년에 ‘미 해군 상륙작전 교리, 1937(Landing Operations Doctrine U.S. Navy, 1937)’, 육군은 1941년도에 ‘적성 해안에 대한 상륙작전(Landing Operations on Host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