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page

136 국방연구 제51권 제2호 2. 선행 연구 검토 스펙터(Ronald H. Spector)7)와 부렐(Robert S. Burrell)8)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해병 대에게 가장 많은 손실(28,000명의 전사상자 발생, 이중 7,000명 전사)을 가져다주었던 이오지마 상륙전이 결정되기까지의 의사 결정과정에 대하여 분석을 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해병대가 안정적인 군종으로서 지위를 획득하지 못함으로써 계획 수립단계에서 배제되었으며 그에 따라 해병대의 희생이 증가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해병대가 당시 전쟁 지휘부에 참가하지 못함으로써 상륙전 수행에 관한 제반 의사 결정과정에서 배제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전쟁 기간중 해병대가 안정적이고 자율성을 확보한 군종(軍 種 )으로서 지위(status)를 여전히 가지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크루락(Victor H. Krulak)9)은 미국 해병대가 오늘날과 같이 안정적이고 국민과 의회로부 터 신뢰를 받을 수 있기까지의 과정은 수많은 전투에서의 혁혁한 전과의 달성과 지속적인 혁신의 노력, 특히 상륙전의 발전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권주혁은 태평양 전쟁 기간중 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수행하였던 다양한 전사(戰史)들을 바탕으로 미국 해병대의 상륙전 성공이 차후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우위를 점하게 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10) 특히, 태평양 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던 과달카날에서 미ㆍ일간의 전투와 해병대가 미ㆍ서 전쟁이후 처음으로 시도한 적전(敵 前 ) 상륙전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한, 권주혁은 중부 태평양에서 타라와 상륙 작전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상륙전에 대한 새로운 전술과 장비 운용법을 학습하게 된 사항 들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11) 밀렛(Allan R. Millet)은 1775년 미국 해병대가 창설된 이후 해병대의 임무 변화를 4개의 시기로 구분12)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특히, 태평양전쟁을 통하여 미국이 일본을 패망시키 서의 영상자료 등도 활용하였다. 7) Ronald H. Spector, Eagle against the Sun (New York : Vintage, 1985). 8) Robert S. Burrell, "Breaking the Cycle of Iwo Jima Mythology : A Strategic Study of Operation Detachment",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Vol. 68, No. 4(October, 2004), pp. 1143-1186. 9) Victor H. Krulak, First to Fight (Maryland : Naval Institute Press, 1999). 10) 권주혁, 핸더슨 비행장 (서울 : 지식산업사, 2001). 11) 저자는 타라와 상륙작전을 통하여 상륙작전 지휘본부용 함선 사용, 보병 상륙정인 LCI의 활용, 해군 UDT의 등장, 수륙양용 트럭 DUKW의 등장, 조명탄 대량 사용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권주혁, 베시오 비행장 (서울 : 지식산업사, 2005). 12) 미 해병대의 임무 변화 관련해서 Millett은 크게 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선상경찰의 역할 (1775~1909)로서 기간중 해병대원들은 함정에 탑승하여 함장을 보좌하여 선상 군기, 군법, 질서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