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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국방연구 제51권 제2호 Ⅰ. 서 론 1. 문제의 제기 상륙작전이란 ‘함정, 주정 또는 항공기에 탑승한 해군 및 상륙군이 적 해안에 대하여 실시 하는 공격작전’으로 정의된다. 상륙작전은 차후 전투 작전의 수행과 지역 또는 시설의 적사용 거부, 해군 전진기지 또는 공군기지의 획득을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1) 성공적인 상륙전을 수행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여왔다. 상륙전은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라는 천연적인 장애물을 극복하고 육지에 있는 적과 전쟁을 치르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으며, 해양을 통해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은 전략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2)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윈스톤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이 주도 했던 ‘갈리폴리’ 상륙작전의 참패로 인해 상륙작전은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작전으로 인식되었다.3) 그러나 미국은 해병대를 중심으로 전간기(interwar period) 동안 상륙전을 수행할 1) U.S Joint Chiefs of Staff, JP 3-02 Joint Doctrine for Amphibious Operations (Washington D .C : U.S Joint Chiefs of Staff, 2001), p. I-1. 전사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상륙작전은 BㆍC 1250년에 그 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중에 있었던 트로이 상륙작전으로 알려지고 있다. 2) 고대로부터 상륙전과 관련된 주요 사례들을 살펴보게 되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시 아테네가 상륙군을 사 용하여 BㆍC 413년과 BㆍC 415년 사이에 시실리 섬을 원정한 것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던 것을 비롯하여, BㆍC 55년에는 로마의 쥴리어스 시저가 영국 해협을 도하하여 오늘날 도버 해안에 상륙작전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서 Angles, Saxons, Vikings, Normans 들이 상륙전을 통하여 영국을 지배하려고 시도하였다. 상륙전을 통한 1066년 노르만의 영국의 침입은 2만 명의 보병과 1200명의 기병이 포함되어 있었다. 상륙전의 효용성은 유럽에서만이 아니라 동양에서도 입증되고 있는데, 15세기 중국의 정화는 인도양을 통하여 수많은 원정작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또한, 몽고는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일본에 상륙전을 하려고 시도하였다. 이후 상륙전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나라는 영국이었으며, 영국은 스페인과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세계적인 패권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최근에는 한국전쟁(1950), 수에즈 위기(1956), 레바논(1958), 베트남(1964-1975), 포클랜드 전쟁(1982), 걸프전(1990-1991) 등에서 상륙전의 유용성과 효용성이 지속되고 있다. 이와 같이 상륙전은 인류가 전쟁을 수행해오면서 바다라는 장애물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함께 발전해 왔다. Ian Speller and Christopher Tuck, Amphibious Warfare : The Theory and Practice of Amphibious Operations in the 20th Century (Cremona: MBI Publishing Company, 2001), pp. 8-12 ; Merrill L. Bartlett and Jack Sweetman, The U.S. Marines Corps : An Illustrated History (Maryland : Naval Institute Press, 2001), pp. 1-9 ; 버나드 르 몽고메리 저, 승영조 역, 전 쟁의 역사 (서울 : 책세상, 2004), pp. 123-205. 3) 갈리폴리 상륙전의 실패는 당시 해군과 군사 전략가들에게 대규모의 상륙전은 현대전에서 비실용적인 것으로 인식되게 하였다. 이들은 기관총이나 대포 등으로 잘 방비되어 있는 해안과 군에 대한 상륙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