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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국방연구 제51권 제2호 구별되는 주둔형 동맹이 주를 이루었다. 냉전이라는 양극체제에서 주둔형 동맹이 일반화된 것은 기본적으로 체제의 성격에 따른 미국의 동맹정책의 산물이었다. 미국의 동맹정책은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보다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21) 비록 1945년 전후로 냉전이 출발했지만, 한국전쟁 이전까지 미국은 자신의 봉쇄정책을 뒷받침해줄 동맹정책을 구체화하지는 못했다. 냉전시대 미국의 봉쇄정책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1947년의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 당시까지만 해도 동맹정책에 대한 미국의 구체적 입장은 없었다. 일례로, 1949년 4월에 결성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군사조직을 갖추지 못한 정치형 동맹 유형이었다. 이는 당시 서유럽에 대한 소련의 위협이 군사적이 아닌 정치적 측면으로 이해한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인식22)에서도 어느 정도 연유했지만 구체화된 미국의 동맹정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1949년 소련의 핵무기 획득과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은 북대서양조약기구 전략상의 변화를 야기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만 아니라 소련의 의도를 평가하는 전환점이 되었다.23)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군사적 관점에서 소련의 의도를 인식한 이후 봉쇄정책의 실제적 수단으로서 반공을 기점으로 동맹정책을 구체화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미국은 소련의 위협을 봉쇄하기 위해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관점에서 우방 국가들과 동맹을 체결하였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탄생한 동맹들은 주둔형 동맹 유형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냉전체제에서 미국과 맺은 모든 동맹이 주둔형 동맹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례로, 1948년의 미주기구(OAS), 1950년대의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와 앤저스 조약(ANZUS Pact), 중동 지역의 중앙조약기구(CENTO) 등은 이들 지역에 미군 병력이 주둔하지 않은 정치형 동맹이었고, 또한 이들 동맹의 주된 기능도 집단방위라기 보다는 지역 차원의 집단안보 역할 을 수행하는 것이었다.24) 그러나 미국이 지정학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고 자신의 사활적․핵심적 이익 지역이라고 인식한 곳에서는 지역 국가들과의 쌍무적․다자적 동맹을 체결하고 소련의 위협을 봉쇄하기 위해 이들 동맹들을 주둔형 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대표적으로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 아시아에서의 미일동맹, 한미동맹 등이었다. 따라서 냉전체제에서 주둔형 동맹은 기본적으로 비대칭 동맹이었으며, 일정 규모이상의 미군 병력이 동맹국의 영토에 상시적으로 주둔해 있었다. 그에 따라 동맹의 주된 기능은 방어적 성격을 갖고 적과 위협에 대한 일차적 21) Osgood(1968), pp. 33-47. 22) John Lewis Gaddis, Strategies of Containmen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2), pp. 34-35. 23) 이수형,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안보 (서울: 한울 아카데미, 2004), p. 107. 24) Osgood(1968), pp. 7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