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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체제의 변화가 동맹의 유형 및 기능에 미치는 영향 119 질서는 지정학에 기초한 독일의 전략적 사고에서 출발한 동맹체제에 의해서 유지되었다. 보불전쟁 이후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통일 독일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해 프랑스의 고립을 유도 하고 유럽 질서의 현상유지를 지속하기 위한 장치로 일련의 동맹체제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19세기 유럽의 국제체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력균형의 원칙이었고 그 핵심적 수단은 바로 동맹이었다. 이 시기에 존재했던 주요 동맹을 나열해 보면 유럽협조체제 기간의 신성동맹과 4국동맹, 1873년 10월에 완성된 제1차 삼제동맹, 1881년 6월의 제2차 삼제동맹, 1879년 10월의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동맹, 1882년 5월 독일․오스트리아․이태리간에 체결한 삼국동맹, 1887년 6월 독러비밀조약, 1883년 독-루마니아 동맹, 1894년 1월 노불군사동맹, 1904년 영불협상, 그리고 1907년 8월 영로협상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 당시의 동맹 유형은 정치형 동맹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19세기 후반부 이전까지 동맹은 쌍무적 동맹 형태가 일반적이었으며, 집약적인 군사적 준비나 협력을 수반하지 않았다. 과학기술의 저발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의 경제적 능력 제한, 그리고 소규모 차 원의 전쟁 양식으로 그러한 준비는 실행 불가능했고 또한 필요하지도 않았다.”11) 또한 이 당시의 국가들은 군사적 억지의 수단으로서 평화시 동맹을 유지할 필요성과 능력 을 결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국가들은 동맹을 유연하게 유지하고 공약을 제한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비밀 동맹과 비밀 조항이 일반적이었으며, 또한 공격 계획을 숨기고 동맹국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다른 국가들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외교적 옵션을 증가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국가들은 권력을 거의 대등하게 보유하고 있는 다극체제의 성격으로 인해 “이러한 성질은 균형 유지에 도움이 되었고 동맹 정치는 전쟁의 주기적 발생으로 동요되었지만 전쟁의 영역과 피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용인될 수 있었다.”12) 그러나 이 당시의 이러한 정치형 동맹 유형에 있어서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1870년 보불전쟁을 계기로 유럽 국가들은 평시 군사적 준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전시와 마찬가지로 평시에도 잘 준비된 동맹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보불전쟁 이후 독일의 안보를 위해 구축해 놓은 비스마르크의 동맹체제는 역설적으로 상이한 유형의 동맹체제가 등장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주요 국가들의 기술적․경제능력의 발전과 더불어 비스마르크의 동맹체제는 대항 동맹체제를 야기하였기”13) 때문이었다. 19세기 후반에 발생한 정치형 동맹 유형에 있어서의 이러한 변화는 결국 1차 세계대전 한국과 국제정치 , 제15권 2호(1999), p. 42. 11) Osgood(1968), p. 26. 12) Osgood(1968), pp. 26-27. 13) Osgood(1968), p.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