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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따른 한·미동맹관계의 쟁점과 대책 9 북한은 1974년 이후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기존의 남북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철회하고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북한은 1974년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된 ‘미의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최초로 북·미 평화협정을 제기하고, 이후 집요하게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 왔다. 북한의 제안은 주한미군 철수를 조건으로 한 기존의 남북평화협정 체결 주장과는 달리, 먼저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후에 주한미군 철수를 실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점에서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1990년대 초까지 북한은 남북 불가침 공동선언 및 북·미 평화협정 동시체결을 제기했다. 북한은 1984년 「서울 당국과 미합중국 정부 및 국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남북 불가침 공동선언 및 대미 평화협정의 동시 체결」이라는 소위 「3자회담」을 제안했다.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계기로 유엔과의 비정상적 관계 청산의 일환으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및 유엔군사령부 해체, 대미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등을 포괄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북한은 1991년 한국과 「기본합의서」에 합의한 이후, 남북 불가침선언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이후부터는 한국을 철저히 배제한 가운데 북·미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미국을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로 간주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정세를 긴장시키고 전쟁위험을 조성하며 통일을 방해하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남한은 정전협정의 체결 당사자는 아니지만 미국의 전쟁정책에 적극 추종하여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고 있으며 실제로 군사적으로 대치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침 선언을 해야 된다는 주장이다.13) 북한은 1993년 북한 핵문제가 국제사회의 최대현안으로 부각되면서, 북·미간 고위급회 담이 개최되자,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을 본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4년 4월 대미 평화협상을 제의하면서 군사정전위원회로부터 북한군 철수, 중국의 군정위 대표단 소환 등 정전위의 무력화를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했다. 또한 북한은 1996년 4월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대변인 명의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유지·관리임무를 포기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모든 조치들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활용하려는 의 도에서 행해진 것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2002년 켈리특사의 방북과 북한의 HEU 이용 의혹 제기를 계기로 북·미관계가 악화되자, 즉시 위기감을 느낀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의 ‘대북 불가침 조약’을 요구하였다. 한편 그동안 6자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는 중심 이슈로서 다루어지지는 않았으나, 2005년 9월 제4차 6자회담에서 발표된 13) 심병철, 조국통일문제 100문 100답 (평양: 평양출판사, 2003) 참조, http://go.jinbo.net/webbs/view.php?board=범민련-9&id=115&page=1&s2=subject&s_arg=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