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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내미 인물 13 武 전제춘 책임연구원은 1976년에 지인의 소개로 ADD에 입소하 여 퇴임하기까지 30여 년의 시간동안 백곰(NHK-1) 지대지유도무기 사업, 기본훈련기 사업인 웅비(KT-1) 사업, 무인항공기 사 업 등 유도무기 및 항공관련분야 연구개발에 참여하였다. “백곰사업은 개발당시 적극적인 관심 하에 인력과 예산을 충 분히 지원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새로운 개발 사업의 가장 큰걸림돌은 기술 확보의 어려움보다 인력과 예산의 부족이었습니다. 연구개발사업의 적정인력과 예산산출이 어려운 일이기도 하 고, 승인부서에서 그대로 인정받기 어렵기도 하지요.” 육상선수의 신발과도 같은 항공기의 착륙장치 연구 개발당시에 인력과 예산의 확보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 을 겪었다는 전제춘 연구원은 KT-1 훈련기 착륙장치와 브레이크의 개발 당시 어려움을 회상했다. 항공기의 착륙장치는 육상선수의 신발과도 같은 것이다. 초기 탐색개발 당시 KT-1은 브라질의‘투카노 훈련기’의 착륙장치와 브레이크를 도입하여 사용하였다. 하지만‘투카노 훈련기’는 KT-1보다 큰 훈련기로서, KT-1의 기본훈련기에 사용하기에는 착륙장치가 크고 브레이크가 너무 민감하게 작동하여 급정거를 유발하여 활주로를 벗어나기 직전 타이어 펑크와 함께 급정지한 사건도 있었으며, 조종사들의착륙 시의 긴장상황과 끊임없는 불평을 들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훈련기 전체 개발 예산을 고려할 때 착륙장치의개발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탐색개발 당시 착륙장치를 구매해 준 영국의‘페어리’회사와의 기나긴 협상을 통해 착륙장치는 국내업체에서 가공하고 설계, 시험기술은 페어리社가 국내업체와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에게 영국현장과 국내에서 기술전수를 해주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하도록 하여 합의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KT-1에 맞는 착륙장치를 개발할 수 있었다.“연구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철저한 준비를 한 후, 끊임없이밀고 나가면 항상 더 좋은 방법이 나왔습니다. 완벽한 성공을 위해 아무리 준비해도 연구개발에는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고,실패할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있기 때문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 후 기다리면 항상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ADD인으로 있으면서 국방부장관상, 국방과학상, 공로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으로 화려한 연구생활을 하였듯, 퇴임 후에도 화려한 인생이 펼쳐지길 기대한다.<편집자> 계좌로 직접 송금하는 현재의 시스템과는 달리, 당시에는 봉 투에 현금을 세어 넣어 지급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셈이 맞지않으면 작업을 중단하고 봉투의 돈을 모두 회수하여 처음부터 다시 봉투에 넣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책임감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직원들이월급을 받으려고 일하는데, 실수로 월급을 늦게 주면 좋겠습니까? 제 손 끝에 소원들의 식탁이 달려있는 것이니까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급여를 늦게 지급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이보근 관리원은 철저한 급여작업 만큼이나 소원들의 복지에 도 많은 신경을 썼다. 서울 연구소는 공원부지로 설정되어 있어서 그 당시에는 야외 체육시설이 전무하였다. 하지만, 소원들이테니스장 신설과 기타 체육시설의 확보를 희망함으로, 해당구청과의 원만한 협조를 통하여 운영유지와 보수가 용이한 인조잔디로 된 국제 규격의 테니스코트 2면을 완공하게 되었다. 또한, 등나무 그늘을 이용한 정자 설치 등 주변조경과 체육시설의 균형있는 조화로 연구와 업무로 인한 소원들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휴식처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겨울에는 비닐하우스에꽃씨를 뿌리고 봄에는 화초를 화단으로 모종하여 정문에서부터많은 지역에 아름다운 꽃밭을 가꿀 수 있도록 하였으며, 더덕 씨 를 뿌려 향기로운 냄새가 나게 하는 등 눈과 코 로 아름다움과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자신의 손길을 거친 연구소의 이모저모 를 소개하는 이 관리원의 눈길에는 정이듬뿍 담겨 있었다. 철저한 책임감으로 국방과학연구소의 복지향상을 이루어낸 이보근 관리원은 퇴임 후에도 영원한 ADD인 으로 남을 것이다.<편집자> 철저한 준비와 인내로 긍지를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온 전제춘 前책임연구원, 이보근 前책임관리원이 6월 퇴임했다. 두 사람을 만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ADD인으로서의 열정을 엿보았다. 전제춘 前책임연구원 3본부 항공구조실장 / 3본부 2부장 근무지원단 인사과장 / 4본부 행정지원팀장 “서울에 부임해 왔을 때 연구동 주변은 건설회사가 의무적으로 심어놓은 중국산 단풍나 무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쓸모없는 나무들로 아까운 공간을 낭비하기보다 소원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경계획을 새로 수립하여 유실수를 심을 것을 건의했고, 지금의 풍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비소식이 없이 화창한 날씨를 뽐내던 6월의 어느 날, 서울의 국방과학연구소를 찾아가 정년퇴임을 앞둔 이보근 실장을 만났다. 이보근 관리원은 1975년 국방과학연구소에입소하여, 퇴임까지 33년간 소원들의 살림과 복지 향상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인물이다. 소원들의 복지를 위해 힘쓰는 그의 열정은 지난 5년간 몸담았던 서울 국방과학연구소의 전경에서알 수 있었다. 연구소 주변을 가득 메운 과실나무들(밤나무, 매실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호두나무, 대추나무 등)… 때마침 살구나무에는 살구가 잔뜩 매달려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뭇가지가 휘어질 지경 이었다. 성실성과 헌신성을 보여주다 “제가 75년도 입소 후 처음 맡은 업무는 총무과급여업무로 당시의 급여작업은 계산부터 발의, 지 급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해 야 했습니다. 소원들에게제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서 밤을 새던 일도 부지기 수로 있었지요.” “처음 입소했을 때, 수행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관련업체나 개인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고 생각했고, 정부의 동조로 그것이 가능했습니다.하지만 이제는 많이 바뀌었지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자세가 없다면 어떤 사업이던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책임감으로 이루어낸복지향상 이보근 前책임관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