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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인물히스토리 33 來 열정의 40대, 보람된 시절이었다 이번 호 인물히스토리의 주인공은 진해연구소와 대전본부 소재부 창설의 주역이었던 손운택 박사다. 현재 진해연구소가 해상/수중무기개발의 산실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산파 역할을 담당한 손 박사를 만나 창설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ADD의 진해연구소장과 대전본부의 기획실장을 지냈던 손운택 박사는 해상/수중무기개발본부인 진해연구소와 대전본부 소재부 창설의 주역이자 산증인으로서 ADD 재직 시절 가장 보람된 일이 세 가지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손운택 박사가 진해연구소 창설에 참여하게 된 것은 ADD 재직 이전, 해군본부 조함과에 근무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초 해군에서 30톤 규모의 학생호 2척을 진수했는데 나라가 떠들썩했어요. 그것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항공모함이나 구축함을 만 들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우리 세대에 그것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의견도 많았지만 손 박사는 당시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해군에서 일을 추진하던 중 국방과학연구소 와 인연을 맺게 된다. “우리나라에 국방과학연구소가 있으니 국과연의 조함연구소로 만들자고 결정이 내려졌고, 저의 일터가 해군에서 국과연으로 바뀌게 되었 습니다.” 진해연구소 창설 계획단계에는 배를 만드는 것이 주 사업이었으나 발족하면서 어뢰·기뢰 등을 포함한 수중 무기를 개발하는 해상/수중무기개발연구소로 창설된다. 이미 국과연에서도 수중무기 개발이 한창 진행 단계에 있었고, 잠수정 개발에 돌입한 시기였다. 진해연구소 재직 시절, 최초 잠수정 완공 “초창기 어느 분야나 모두 그렇듯 기술 축적이 안되어 있어 어려움이많았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개발에 들어선 나라를 찾아 배우는 방법밖에 없었지요. 미국에 가서 학교 동기들을 만나 어린아이 떼쓰듯 실험실 제작에 필요한 도면 설계도를 받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센서 시험에 필요한 수조 실험실 제작의 탄생 과정을 이야기하던 손 박사는 당시 함께했던 오태선 박사와 한경선 소원이 없었다면 열악한환경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밤을 새워가며 그들과 함께 진해연구소 실험실 하나하나를 완성했던 40대 시절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하여 진해연구소는 시설면에서나 연구인력면에서 최고의 수 준을 자랑하는 연구소로 자리하게 됐지만 대전본부와 조직을 합칠 위기 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소장님께 진해에 한 번 와보시고 결정하시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실험실 돌아보신 후 그 중요성을 인정하시고 그냥 둬야겠네 하셨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해지기도 하는데 연구소가 유지돼서 정말 다 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1975년 창설부터 진해연구소에 몸담았던 손 박사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언제일까? “1980년도 초에 처음으로 잠수정이 완공되어 물 속으로 들어가는 데 제가 거기 타고 있었어요. 수심은 깊지 않았지만 이게 과연 다시 물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던 그때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 네요.” 기초 연구의 필요성, 산학협력 추진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진해연구소장으로 자리했던 손 박사는 이후 대전본부의 기획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때 대전본부는 소재 부 창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연구원이 3천여 명 정도됐으며 연구 개발 규모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유도탄 사업을 시작하는 시기로 금속재료연구소의 필요 성이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금속공학을 전공한 손 박사는 대전본부 소재 부를 창설하는데 적임자였고, 진해연구소 창설의 추진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4본부의 전 신인 소재부를 창설했다. 굵직한 연구본부의 창설에 참여했던 손 박사 는 국과연이 국책연구기관으로서 기초 연구에관심을 갖게 된 것도 무척 다행스런 일이라고 덧붙인다. “기초 연구에 투자할 비용이 없는 시절이었어요. 기초 연구 관리실을 만들어 대학과 기초연구 사업을 진행하면 국과연의 연구 개발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손 박사는 퇴직 후 처음으로 지난해 ADD를 방문했다. “12년 만에 방문했는데 나무가 아름드리 크기로 자란 만큼 엄청나게 발전한 ADD의 모습 을 만날 수 있어 감개무량했습니다.” ADD를 방문하여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계기 가 되었다는 손 박사는‘나이에 구애받지 않고연구를 지속적으로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연구실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 였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