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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출근시간에 충무공 동상을 뒤로하고 동문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자전거 행렬 등,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 였다. 드디어 신병교육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고되고 힘 든 신병훈련이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군악대의 연주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고 힘찬 나팔소리와 북소리는 잠시나마 힘든 것을 잊게 해주는 원기회복제 역할을톡톡히 해 내었다. 거칠고 단조로운 고적대 연주와는달리 멀리서 또렷하게 들려오는 트럼펫의 차려 나팔소리로 시작하여 울려 퍼지던 군악대의 부드럽고 산뜻한 연주는 모두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어느 날 미 8군 군악대의 ‘대니보이’ 와 통제부 군악대의 트럼펫 3중주‘나팔수의 휴일’ 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명연주였다. 또 미 8군 군악대 연주회에 통제부 군악대장이 유창하게 통역을하면서 사회를 보고, 곡목설명도 즉흥적으로 하였는데신사복 풍의 복장과 유연한 태도는 그야말로 해군이 국 제신사임을 새삼 느끼게 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배고픔과 환경의 열악함은 당시 모두가 그러하였듯이 견디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 때 그 자리의 우리는 해군이된다는 자긍심 하나로 모두가 해군 제125기로 수료하였 고 나는 다시 내가 그토록 희망하고 꿈꿔왔던 해군 군악대를 군악보통과 제19기로 수료, 해군 군악대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36년간 계속된 나의 해군 군악대 생활... 어느 것 하나 기억되지 않고 소중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토록 소중한 나의 해군생활...., 좀 더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근무자세를 가지지 못했던 점이 아쉽고 때로는 지혜롭지 못한 처신으로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었지만 나의 해군생활은 즐겁고,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해군은 나에게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익히게 하였으며 내 삶의 터전이 었다. 지난 2002년 5월 31일 정년퇴임을 하였지만 내 삶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휴일이면색스폰을 연주한다. 15분전 규정을 지키며 옛 전우들도 만나고, 예전에 근무했던 해군부대를 찾아가 보기도 한다. 지금도 꿈속에서 나는 해군으로 등장한다. 언뜻 놀라 깨어보면 꿈이었음을 알고 싱긋 웃음이 나오지만 나의가슴에는 아직도 해군 군악대의 북소리와 힘찬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해 해 군 군 99 98 NN AAVV YY ‘강원함’ “어? 이 배 강원함 아냐?”진해해양공원을 구경하던 중 전시함에 올라보니 기억에도 아련한 강원함이다. 순항단 군악요원으로 파견되어 승조하였던 군함이다. 그 당시 강원함은 한국 해군의 대표적인 군함이자 순항단 기함으로 태평양을 누비며 세계를 돌던 군함이다. 우리 해군이 그러한 강원함을 퇴역시킬 정도로 발전하였 다고 생각하니 흐뭇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한편 강원함을 보면서 나의 청춘을 바친 곳이자 지금 의 나를 만들어준 사랑하는 해군을 떠올릴 수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릴 때부터 나는 해군을 접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해군병원이 자리하고 있던답십리였고 우리 집에 해군 의무중사가 세 들어 있어 가끔 해군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초소를 지키던 초병들과 놀기도 하였다. 그 무렵은 6. 25가 끝난 지 얼마되지 않은 어려운 시 절이었으나 사람들의 심성이 부드러웠고 군대 초병이어린 꼬맹이와 놀아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기도 했다. 해군병원에서 해군홍보영화와 선무연극을 설레이며 보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쟁으로 황 폐하고 볼거리도 없던 시절, 해군군악대와 의장대가 시민위안을 목적으로 방문하였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울려퍼지는 나팔소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의장대의 모습 등은 당시 어린 마음에도 크게 각인되었다. 해군들이 다녀간 뒤로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마다‘바 다로 가자’곡을 들려주었고 학교 선생님은 물론 학생들 모두가 가사를 외우고 곡에 친숙해졌다. 또 언젠가하얀 외출복을 입은 수병이 주위의 푸른 숲 경치속에 데이트를 즐기던 모습이 그리도 멋지게 보였던 등으로 나의 마음속에는 해군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굳게 자리하 고 있었다. 해군에 입대하던 날 어머니의 눈물훔친 손 배웅을 뒤 로 하며 진해를 향하는 야간 군용열차에 몸을 실었다.당시만 해도 열차는 매우 느리고 시설도 열악하였으나어둑한 실내조명에는 나와 고만고만한 입대동기들이 불안한 눈망울을 굴리며 이제부터 시작될 해군으로의 변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흔들리며 잠을 설치게 한야간 군용열차는 아침이 되어서야 진해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일본풍의 낯선 가옥들,... 한산한 거리...., 푸른 꿈 파도 너머…… 예비역 군악준위 김 영 걸 해군글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