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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생의 경험과 애환을 겪었겠습니까. 그런데 섬에가면 도시에서는 듣지 못한 이야기가 살아 있습니다.옛날 6.25때 얘기하면 그때 당신은 어느 부대에 있었소, 나는 군번이 얼마인데 어디에 있다가 어디로 철수했고.... 그때 거기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때 누가 어떻게 했고... 하는 얘기를 하면 서로 통하는 거예요. 이건과거에 묻혀서 죽은 얘기가 아니라 다시 살아나서 아주신나게 살아나서 서로의 감성을 두드리며 활개친단 말이에요. 정치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그러다가 개인얘기가 되지요. 서로 평상에 둘러앉아 막걸리 사발이라도 오갈 즈음이면 이미 우리는 친구이고 한 식구가 되어버립니다. 동네 사람들 서로 불러서 오라고 하고 인사시키고.... 섬사람들은 정말 순수하고 또 그만큼 우리네가 살아온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요즘이야 기상정보가 발달해서 배타고 고기잡이 나가서도사고가 없지만 옛날이야 어디 그랬습니까. 그만큼 어려운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그것이 바 로 소설이 되고 노래가 되고 시가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시작(詩作)에는 예쁜 수식어가 없다. 화려하거나 감미로운 단어로 사람을 매혹시키는달콤함이 없는 것이다. 대신 투박하면서도 어딘가 진솔한 사람의 모습과 삶이 그려져 있다. 더 이상 잘 표현할수 없는 어쩌면 그리도 어울리는 표현과 그림을 그려냈을까. 선생님의 시를 읽다 보면 한 폭의 풍경화가 사실 적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어딜 가십니껴?” “바다 보러 갑니다” “방금 갔다오고 또 가십니껴?” “또 보고싶어서 그럽니다” 밤새 들락날락 바다를 보았다 알몸인 바다가 차가운 바깥에서 어떻게 자는가 밤새 들락날락 바다를 보았다 <시집‘그리운 바다 성산포’ 의 34장 여관집 마나님 중에서> 나는 시를 추상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섬에는 섬사람들만의 정보가 있습니다. 섬사람들의 모습을 시로 옮기면서 나는 추상적으로 풀지 않고 일상적으로 보았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 뒤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거문도 섬 반대편에는 등대가 하나 있습니다. 그 등대 는 바로 그 지방 아이들이 소풍 가는 곳입니다. 거문도에서는 소풍갈 곳이 바로 등대 밖에 없습니다. 등대 한쪽 벽에는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써 놓습니다. 그리고세월이 흘러 그 아이들이 반백이 되어서 소풍을 가도등대입니다. 등대에 가면 자기가 어렸을 때 써놓은 자기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섬은 자신의 과거가 살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해 해 군 군 63 62 NN AAVV YY 한여름의 열기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초, 서울 인 사동 한 커피숍에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늦장마의빗줄기가 후두둑 떨어지는 날 약속시간에 맞춰 묵주룩한검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자리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여 느 정정한 젊은이들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건강을 유지하시는 특별한 비결이라도..... 건강? 건강은 뭐 특별한 게 없어요. 그저 밥 잘 먹고 항 상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 하고... 그거예요.... 섬과 바다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으신데 왜 바다를 좋 아하세요? 아닙니다. 난 산에 가는 것도 좋아합니다. 산도 좋아하 지만 산은 외롭지 않습니다. 산은 나무도 있고 물도 있고, 새도 있고, 온갖 동식물이 다 있지요. 그러나 바다는왠지 고독합니다. 산은 우리와 가까이 있지만 바다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입니다. 사람은 소외된 느낌을 가져야 나도 생각해 보고 또 남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외로운 바다에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섬 사람들이지요. 사람들은‘섬’ 이라고 하면 낭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섬에는 낭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섬에는 과거가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 누구에게나 그들에게는 과거가있습니다. 내가 올해 80인데 이 나이까지 살면서 얼마나 이생진(1929~ ) 시집 : 『그리운 바다 성산포』 『바다에 오는 이유』『섬 마다 그리움이』 『거문도』 『동백꽃 피거든 홍도로 오라』『독도로 가는 길』등이 있으며 윤동주 문학상을 받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