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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해 군 군 47 ■ 클럽활동 1894년 갑오경장으로 활은 무기체계에서 해제되었다. 개항 이후 근대식 군대제도가 도입되면서 민간스포츠화되어 있던 국궁은 전국에 있는 많은 사정들이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1899년 고종황제는“활이 비록 군대무기에서 제외되었지만 호국정신 함양과 체력증진을 위하여 활쏘기를 권장해야 한다” 는 윤음을 내려 경희궁 내에 민간사정인 황학정(黃鶴亭)을 건립하였다. 이로써그동안 침체됐던 전국의 활터도 다시 부흥하게 되었고 서울에만 40여 개의 활터가 있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 동안에도 전국활터에서 민간한량들의 각 종 활쏘기 대회는 당시 신문지상의 단골 기사거리였다.이화여전의 신여성들이 체육시간에 활을 쏘는 모습의 자 료도 있다. 오늘날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양궁도 60년대 황학정에 서 각궁을 쏘던 궁도인들이 서양궁을 수입해 보급시켰고황학정의 궁도교실에서 초기 양궁선수들을 훈련시켜 올 림픽 출전의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현재 전국에 활터가 320여 개가 넘고 동호인수도 2만 명을 훨씬 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사정(射亭)에서는사원(射員)들간의 친목도모와 궁술역량을 가늠하는 삭회(朔會)를 매월 실시하고 있고 각 시·도 단위의 활쏘기대회와 전국대회도 연중 열리고 있어 동호인들의 궁술향상 의 계기가 되고 있다. 5천년 빛나는 우리 역사속에서 진정한 선비의 향기를 품고자 한다면 국궁에 다가가 음미하라고, 활을 당기라 고, 그래서 느끼라고 속삭이고 싶다. 얹은활의 구조도 죽시 구조도 46 NN AAVV YY 고구려 고분벽화 수렵도에 나오는 활은 현재 쓰는 각 궁보다 조금 작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말을 타면서쏘는 활이어서 서양활이나 일본활에 비해 크기가 작은것이 특징이다. 전쟁용, 수렵용, 습사용 등에 쓰이는여러 종류의 활이 있었으나 현재까지 주로 이용하는 활은 전통각궁이다. 우리 전통각궁은 크기가 작고 가볍고 저항력이 매우 강해서 세계 민족활 중에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있다. 물소뿔, 산뽕나무, 소힘줄, 민어부레풀, 참나무,대나무, 화피 등을 소재로 만든다. 점화장치가 있어야하고 활의 균형을 세심하게 잡아줘야 하는 능숙함이 필요해 활을 잘 다루는 궁사들이 사용하고 있다. 초보자나 대부분의 궁사들은 개량궁을 이용하고 있 다. 개량궁이라 함은 각궁대신 현대적 양궁 소재로 개발한 국궁이다. 70년대 중반부터 이용되었고 이후 개량각궁도 개발되어 궁도인의 저변확대에 획기적 계기 가 되었다. 초보자로서 활을 배우려면 일단 활터를 찾아 최소한 2~3개월의 수련기간이 필요하다. 빈 활당기기와 주살내기(화살끝에 줄을 매어놓은) 등 사범의 지시하에 기본자세를 익힌 후 각자 힘에 맞는 활과 화살을 구입하여 사대(射臺)에 서면 비로소 궁도(弓道)에 입문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때부터 활쏘기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활은 배울수록 어렵다고 여겨지니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고신체단련과 정신수양을 평생 닦는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 활쏘기의 자세 국궁과 양궁은 활의 쏘임새부터 판이하게 다르다. 양궁은 과녁과의 거리가 30~90m까지이고 활에 각종인위적 장치가 부착되어 있고 과녁을 향해 비스듬히 서있는 고정자세만 요구된다. 반면 국궁은 비정비팔(非丁非八)로 서면 마치 말위에 서 안장에 발을 얹는 자세가 되어 좌, 우, 앞을 향해 자유롭게 활을 쏠 수 있게 된다. 활쏘기 자세는‘조선의 궁술’ 이나‘사법비전공하’등의 전문관련 서적을 통해 학습하거나 각 사정에서 초보자를 위해 펴낸‘국궁교 본’등을 참고하면 된다. 특히, 선배궁사들과 어울려 활을 내면서 체득하게 된 다. 궁술에 관한 책자는 여러 경로에서 다양하게 출판되어 있어 활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 곁에 두고 읽는책들도 늘어나게 된다. 활을 쏘는 기술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위라고 강조하는 구절들을 많이 접하게된다. 그만큼 활쏘기는 예(禮)와 도(道)의 수련방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