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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font style="background-color:#ffffff;font-size:14px"> 연산군에게 여동생을 시집보내 영의정이 된 신수근.중종이 왕자시절 딸을 시집을 보내 왕자비로 있었다. 중종반정에 참여하라고 박원종이 요청할때, 동생과 딸을 두고서 결국은 동생쪽인 연산군을 선택하고, 중종반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왕비의 부친 신수근이 반정으로 참살되어 죄인의 딸이 왕비로 부적하다는 반정공신들의 주청으로 왕비 책봉 7일 만에 폐출되어 사제로 나갔다. 폐비 신씨는 소생 없이 71세로 승하했으며, 친정 묘역 언덕에 장사지냈다. 1698년 숙종은 연경궁 내에 사당을 세워 춘추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한식에는 묘제를 지내게 했다. 1739년 영조는 익호를 단경(端敬), 능호를 온릉 (溫陵)으로 추봉하고 새로이 상설을 설치하면서 추봉된 왕비릉인 정릉, 사릉의 상설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