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page


35page

폐비 신씨(廢妃 愼氏)는 왕비이나 폐위되었으므로 시호가 없으며, 거창군부인(居昌郡夫人)이라고도 불린다. 거창부원군 장성공 신승선(居昌府院君 章成公 愼承善)과 중모현주 이씨(中牟縣主 李氏)[2]의 딸로, 본관은 거창(居昌)이다. 남편 연산군과 함께 조선에서 반정으로 인해 퇴위한 첫 번째 사례로 꼽힌다. 외할아버지 임영대군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로, 남편 연산군은 그녀의 칠촌 조카뻘이 되기도 한다. 또 이복 시동생인 중종에게는 형수이자 처고모가 된다. 1488년(성종 19년) 왕세자로 있던 연산군과 가례를 치르고 입궁한 후, 1494년 연산군 즉위와 함께 왕비에 봉해졌다. 그러나 1506년 연산군이 폐출당하면서 그녀도 군부인의 신분으로 강등되었다. 폐비된 후 중종은 그녀에게 빈(嬪)의 예를 사용하게 했다고 한다. 사후 연산군 묘 옆에 배장되었고, 무덤 앞에 서있는 비석명은 '거창신씨지묘(居昌愼氏之墓)'이다. 연산군과의 사이에서는 4남 3녀를 낳았으나 두 아들과 공주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요절하였고, 그나마 두 아들은 연산군이 폐위된 후 사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