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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1대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1491~1515) 윤씨의 능이다. 장경왕후는 정비인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되자 1507년 왕비로 봉해졌는데 세자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승하했다. 처음에는 헌릉(태종 왕릉) 서쪽 언덕에 조성했다. 그런데 중종의 부마가 된 김안로가 세자(인종)를 보호한다는 구실로 자기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옥사를 일으켰다. 그 중 하나가 희릉 천릉사건인데, 희릉 밑에 큰 돌이 깔려 있어 불길하다 하여 1537년(중종 32)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1544년 중종의 유교에 따라 중종의 정릉을 희릉 옆에 조영하고, 정자각을 왕릉과 왕비릉 중간으로 옮겨 세우고, 왕의 능호를 사용했다. 그런데 1562년 문정왕후의 주장에 의해 중종 왕릉이 지금의 삼성동(선릉) 옆으로 옮겨감으로써 다시 희릉으로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