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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3월31일 일요일 6 (제207호) 특집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즉 자신의 몸과 마 음을바르게한사람만이가정을다스릴수있고,가정을다스릴수 있는자만이나라를다스릴수있으며,나라를다스릴수있는자만 이천하를평화롭게다스릴수있다. 이는 뜻을 성실하게 하고(성의 誠意)마음을 바르게 하고(정심 正心)한연후에,자신을닦고(수신修身),집안을바르게하고(제 가 齊家),나라를 다스리고(치국 治國),천하를 평화롭게 한다(평 천하平天下)는것이다. 우리 선현들은 자신을 닦기 위한 수신의 방법으로 계(戒)와 잠 (箴)을 지어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는 후손들에게 알리어 집안의 격을 올리는 수단으로 전해져 온다.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선현들의 금언(金言)이 족보 또는 문집을 통해 전해져 오는데도 사실자체도모르고 있으며남들이하는 즉옮기기 쉬운 문구만외우려한다.지난호4면에강원감사를역임하였던박수기 (朴秀基, 1429~1510) 선생이 관복(官服)을 벗고 전북 장수군에 정 착하여 ‘자락정’과‘족부족시(足不足詩’)28장을지어후인들에게 교훈이되도록한명구(名句)를소개한바있어.많은독자분들이 호응(呼應)하기에 이르러 각 문중에 전해져 오는 선현들의 금언 (金言)명구(名句)를지속적으로소개하며,이번호에는송은박익 선생과그후예들의금언(金言)을소개해본다, 송은 박익(松隱 朴翊)선생은 고려 말 충신(忠臣)으로 팔은(八 隱)의 한사람이요 두문동 72현으로 전해지고 있다.휘는 익(翊)이 며 초명은 천익(天翊)이고 자는 태시(太始)며 호는 송은(松隱)으 로 은산부원군 영균(銀山府院君 永均)의 장자이다. 1332년 (충숙 왕복위1년)에밀양삽포에서태어났다. 1360년(고려공민왕9년)29세의약관으로입지잠(立志箴,뜻을 세우는글)을지어학문의뜻을세웠고,또한지신잠(持身箴)을지 어 수신지도(修身之道)를 깨우쳐 학문의 근본을 세웠다. 고려 공 민왕때에과거에급제하여한림문학(翰林文學)을시작으로소감 (少監)을 지내고 1386년 (고려 우왕12년)에 동경판관(東京判官) 과예부시랑(禮部侍郎)을역임하였으나공양왕대에곧관직을그 만두고 밀양으로 낙향하였다. 당시 정치상황이 여의치 않아서였 을 것이라고 김교수는 밝혔다.특히 이성계 중심의 조선 건국세력 이 왕조 개창을 위해 반대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과정이 선 생을 관직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낙향해 있던 선생은 정몽주의 권유로 공양왕 말년에 다시 상경하 여 잠시 예조판서를 역임하였으나 이성계 세력이 정몽주를 살해 하고조선왕조를개창함으로써절의(節義)을지키며이성계가공 조(工曹),형조(刑曹),예조(禮曺),이조판서(吏曹判書)와 좌의정 (左議政)을제수하며다섯차례나불렀으나나아가지않았다. 졸당공의 심신(愼心) 신관(愼官) 편(篇)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훈이 된만하다. 특히 공직자들에게는 명심해야할 대 목으로청백한공무원상을강조한다. 졸당공은두문동현인(賢人)으로불사이군의절의를지킨송은 공(휘익)의네아들중막내아들이다. 휘는총(聰)字는명옹(暝翁)호는졸당(拙堂)이라하니주염계 (周濂溪)의부졸(賦拙)의뜻을취함이다. 공은 어려서 재주가 남달리 총명하였다.장성하여 세분 형과 같 이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크게 사문(師門)의 칭 찬을 받으니 당시 사봉(四鳳)칭호가 있었다.벗으로는 모두 당세 의현인인 야은길재,도은이숭인,독곡성석린,춘정변계량,춘당 변중량 등과 더불어 정의가 돈독하였으며 서로 도의를 논하고 시 문을주고받기도하였다.야은이일찍공을일러공은나의스승이 요나의벗아니라하였고,춘당이시를주워말하되충열(忠烈)의 송계댁에 연원을이은사형제라 하였고,춘정이 말하기를 말 더듬 을 웃지 말라 한나라 주창(周昌)이 대의를 잡았다하니 그 추론을 받은것이이와같더라하였다.공의행실이심비(深秘)되고더욱 효가 돈독하여 부모를 섬김이 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얼굴빛을 밝 게하여 부모의뜻을 기쁘게 하고거상을 당하여슬퍼하고수척함 이 예절에 넘치니 사람들이 그 효성에 감복하였다.그때에 춘당이 이조전위에 있을때 공의효성을 조정에천거하여정랑 벼슬에올 랐다.그후에곧은말을진언하니권력층에미움을받아수년동안 귀양살이를 하고많은 고생을하면서시를 읊으니꿈 가운데임금 님이 번연하게 다다랐는데 꿈을 깨고 보니 강가에 누워있음을 알 았도다.신하가되어벼슬이높고낮음을말하지말라천성이누가 임 생각하는 마음 없으랴 하였고,또한 신심(愼心)신관(愼官)편 을저술하여 말하되 벼슬에오르기전에는 비록걱정은 하되마음 은 반드시 편안하고 이미 벼슬한자는 비록 기뻐하나 마음은 반드 시위태롭게 생각할 것이니관리가되어백성을다스리는것이먼 저 마음을 청렴하게하고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면 반드시 천성을 상실한다 하였다.공이 본래 경륜(經綸)이 있으니 곧은 말이 시행 이어려운 것을알고 향리에 돌아가조용히 살면서 학문을강습하 여늙도록게을리하지않으니탁연한일세의종사이다. 주(註)-주염계(周濂溪):자는무숙(茂叔).시호는원공(元公).주염계(周濂溪)라 고도한다.중국의사상가운데거의1,000년동안국가의이념으로자리잡았던이 학(理學)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또한 부분적으로 신도가(新道家)를 기초로 하여 유교를다시체계화했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감에 있어서 벼슬하지 못한 자는 비록 걱정 이나마음은반드시편할것이요.이미벼슬한자는비록기쁘다해 도 마음은 반드시 걱정일 것이다.벼슬아치가 되어 백성을 다스릴 땐마음을굳게잡음만함이없다. 벼슬에있으면서욕심을줄이지않으면반드시천성(天性)을상 실할것이니어찌 두렵지않으랴벼슬은 높으면위태롭고낮으면 편안하다. 위태하고 편안함이 비록 다르지만 그 실상은 하나의 이치다.위 태함을 알면서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험한 길 쪽에 빠지고 편안함을 알고 깨달으면 가히 족 (足)함을안다하리라. 무릇 녹봉(祿俸)은 마땅히 절용(節用)하여 가벼이 쓰지 말아야 한다.마음껏 맡은 일에 몸 바치고 지극히 청렴(淸廉)하고 지극히 근면 (勤勉)할 것이니 청렴하면 사람들이 복종하고 근면하면 일이 잘 될 것이다.무릇 벼슬에 있는 자 어찌 털끝만한 비리(非理)라도 그 사이에 작용시켜나의본심을어기리오.공무(公務)에 몸 바쳐 직책을 다한 뒤에야 가히 벼슬과 녹 (祿)의위태함을면할것이며내본심의덕(德) 을 온전히 하리라. 조심할 지어다 조심할 지어 다. 소요당 박하담 선생은 송은 박익 선생의 현 손이다. 선생은 총명(聰明)하고 영리(怜悧)하 고 슬기로운 영재(英才)였다. 1484년 6세에 입 학하여 벽상(壁上)에 ‘명(明)’자를 보고 ‘해와 달이 합쳤으니 밝을 명의 글자가 된 것이구나’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글을 읽기를 좋아 하고 몸가짐이 의젓하여 대인다운 풍모(風貌) 를 지녔으며, 14세인 1492년에는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읽었고, 18세인 1496년에는 소 학(小學)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평생의 지기이자 절친인 삼족당 김대유(1479~1551)와 함께 운문산의 운 문사로들어가서맹자(孟子)자를읽었다. 1509년31세에심경(心經)을읽고성리학에전념하게되면서과 거(科擧)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이는 조부인 소고공께서 무오사 화로인해화를입었고,또한계속된사화는선생으로하여금관로 (官路)나가자않으려는뜻을굳혔을것으로보인다. 1519년41세에현량과에뽑혔으나나아가지않고정암조광조(1 482~1519) 등 신진사류가 피화한 기묘사화 이후에 그동안 자신이 지었던글을모두모아소각하였다.이로인해후손과후생들이선 생의글을볼수있는기회가사라지게되었다. 사산감역과 사재감봉사에 제수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경재 (警齋) 곽순(郭珣, 1501~1545)과 성리설을 강론하였으며, 67세이 던 1545년에 남명 조식(1501~1571)이 입암정사(立巖精舍)를 방문 하자 여러 학생들을 위하여 ‘서명(西銘)’과 사자서(四子書)의 의 문점, ‘하락태극도설(河洛太極圖說)’의 강론을 청하는 등 당대의 거유들과교유한학자이다. 선생은61세에모친상을,64세에부친상을당하여노경(老境)에 도불구하고6년동안거려(居廬)하여슬픔을다하고우애가지극 하여 재산을 분재할 때에도 자기는 약간의 박토(薄土)를 차지 할 뿐 좋은 전장(田庄)과 노복(奴僕)은 동생들에게 분양(分讓)하였 고, 항상 성찰(省察)에 힘써서 율신(律身), 존심(存心) 입지위학 (立志僞學), 거향(居鄕)에 잠계(箴戒, 깨우쳐 타이름)가 있고, 신 변기물(身邊器物)에까지명(銘)이있어서행동의지표로삼아수 양(修養)에 힘썼으며, 백성들의 노고를 덜어 주는데 최선을 다했 다. 선생은 82세의 장수(長壽)를 향유(享有)하여 임종(臨終)이 가 까움을 알고 운명(殞命) 전일(前日)에 친히 가훈 10조를 써서 유 계(遺戒)하시니, 내용은 사친효(事親孝), 사장경(事長敬), 우애 (友愛), 부부도(夫婦道), 봉제사(奉祭祀), 언충언(言忠言), 행독 경(行篤敬), 계분욕(戒忿慾), 면학(勉學), 가업(家業)과 근검(勤 儉)등으로요약된다. 그유훈의정신을이어받아충효의세덕(世德)이가풍을이룩하 여장자영(潁)은효행으로천거되어순릉참봉과형조참판에추증 을 받았고, 차자 이(頤)도 효행으로 장사랑이고, 후에 아들 의 귀(貴)로 호조참판에 증직을 받았으며, 손자와 증손에 와서는 임진왜란과 갑자활란, 병자호란에 창의하여 녹훈 또는순절한사람이14명에이르렀으니선생의유덕 (遺德)유풍(遺風)에 후손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 다 할 만 하다. 어버이를 봉양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반드시 어버이의뜻을미리짐작하여뜻을받들고,순종하여 어김없이공순하여아들로서의직분을다할것이니, 이렇게하여야만뜻을기리는효도라고할것이다. 어른을 섬기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마땅히 공경 하는마음으로예(禮)를다하고,몸가짐을따스하고 공손하게한다면또한어른을공경하여섬긴다고할 것이다. 형제는 부모의 같은 기맥(氣脈)을 타고 낳으므로 화합하면하나로합하게되고,어긋나면떨어지나니 서로 애정(愛情)을 손상하지 말고 끝까지 화합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 이것이 형제간에 화합하는 것이 다. 남편과아내는두성(姓)이어울려서이루어진것 이니, 친압(親押,하나하나 따지다)하면 만홀(漫忽, 무엇에 관심이 없고 소홀해져)해지고, 멀리하면 원 망하나니,정(情)이지극하여도의(義)로써분별하고,화순(和順) 함으로써 가도(家道)를 바르게 하여야만 바야흐로 순종(順從)하 는아내의도리(道理)가되는것이다. 조상의은덕을갚는길이제사보다더큰것이없으니,재계하고 공경을지극히하여정결함을다하고,애연히신(神)께서강림(降 臨)하여흠향하는것을보는듯이하는것,이것이정성이니라. 말은 사람의 문채이니 문채만 숭상하고 실상이 없으면 자기의 생각과 도리(道理)를 다하고, 다른 사람과 사귀지 못하므로 정성 스럽고믿음있는것을말하는표준으로할것이다. 행실은 말을 실천하는 것이니 돈독하게 실천하면 자연히 생동 하는사이에나타나는것이므로독실(篤實)하게공경하는것이행 실을닦는근본이다. 사람으로서 없을 수 없는 것이 분노(憤怒)와 욕심이다.장차 이 러한 마음이 나타나려 할 때는 경계하기를 원수같이 생각하고.이 미나타났을때에는험악한말을제어하듯이하여,오직끊고징계 (懲戒)함을일삼아분노하는마음과욕심이방자하지못하도록하 여올바른마음이되도록할것이다. 사람으로서폐할수없는것은시서(詩書,공부)이다.배우지않 으면 바람벽에 낮을 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없을 것이오, 무식 (無識)하기가새짐승과같을것이니사람이시서(詩書)를공부하 지않으면어찌사람이라하리오. 삶을영위(營爲)하는데무엇보다의식(衣食)이먼저이니,밭갈 고베짜서생활의기반을삼는것이나,다만배부르고몸따스하기 를 구하지 말 것이니.남들이 보아서 사치(奢侈)하지 않고 추악하 지않을정도(程道)로하는것,이것이절검(節儉)이다. 이 열 조목으로 가훈(家訓)을 삼아 가슴에 새겨 잊지 않으면 삼 가고경계할줄아는선비됨에부끄럽지않을것이니너희들은힘 쓸지어다. 은산부원군후송은공과후예금언( 金言) 선현들의 금언(金言)·명구(名句) 송은박익선생의입지잠과지신잠 보본재,밀양청도면고법리에소재하는송은선생의재사(齋舍)이다. 송은선생입지잠(立志箴) 입지잠은뜻을세우려는사람에게훈계하는글이다.사람이학문하 는처음에어떤뜻을세우냐에따라인생의방향이결정될수있음 을명심하여야한다는것이다. 송은선생지신잠(持身箴) 지신(持身)은수신(修身)과같은것으로바른마음과몸가짐을경계 하는글이니옛날사대부들이존경받은것은이처럼철저한자기관 리에서비롯되었다할것이다. 졸당박총선생의심심신관 人於處世也(인어처세야)에未仕者雖憂(미사자수우)나心必 得安(심필득안)이요 已仕者雖喜(이사자수희)나 心必生憂 (심필생우)라 爲官治民(위관치민)이 幕如存心(막여존심)이 니 仕不寡慾(사불과욕)이면 必喪天性(필상천성)이라 可不 懼哉(가불구제)아 位高則危(위고즉위)오 位卑則安(위비즉 안)이니 危安(위안)이 殊而其實(수위기실)은 一理(일리)니 知危而不覺則必陷於險路(지위이불각칙필함어험로)요 知安 而覺之則亦可以知足矣(지안이각지칙역가이지족의)라 凡此 祿俸(범차록봉)을 切宜節用(절의절용)이요 不可輕用(불가 경용)이니 盡心奉職(진심봉직)하야 克廉克勤(극렴극근)하 라廉則人服(廉則人服)이요勤則事竣(勤則事竣)이니凡居官 者豈可以一毫非理(범거관자기가이일호비리)요 干其間而違 吾素心哉(간기간이위오소심재)아 奉公盡職然後(봉공진직 연후)에 可以免仕祿之危(가이면사록지위)며 可以全本心之 德(가이전본심지덕)이니愼之哉愼之哉(신지재신지재)라 소요당박하담선생의가훈10조 ①養親如之何(양친여지하) 必先意承志(필선의 승지) 有順無違(유순무위) 恭爲子職(공위자직) 斯可爲養志孝也(사가위양지효야) ②事長如之何(사장여지하) 當起敬盡禮(당기경 진례) 溫恭子持(온공자지) 亦可謂事長弟也(역 가위사장제야) ③兄弟一氣(형제일기) 和則合(화즉합) 乖則離 (괴즉이) 勿傷愛情(물상애정) 終始湛樂(종시담 락)是爲兄弟翕也(시위형제흡야) ④夫婦合二姓(부부합이성) 狎則褻(압즉설) 遠 則怨(원즉원)情摯義別(정지의별)用和正家(용 화정가)方見婦道順也(방견부도순야) ⑤報本莫大於祭祀(보본막대어제사) 極其齋敬(극기재경) 致 其精潔(치기정결) 優然如見其神道之歆格(우연여견기신도 지흠격)此之謂誠也(차지위성야) ⑥言者(언자)人之文華(인지문화)華而不實(화이불실)則不 能盡己而交人(즉불능진기이교인) 故(고) 忠信(충신) 爲出言 之準的(위출언지준적) ⑦行者(행자)言之實(언지실)踐履篤厚(천이독후)則自然著 見於動靜之間(즉자연저견어동정지간)故(고)篤爲立行之根 低(독위입행지근저) ⑧人所不能無者(소불능무자)忿慾也(분욕야)於其將萌(어기 장맹) 戒之如仇敵(계지여구적) 於其旣發(어기기발) 禦之如 悍馬(어지여한마) 惟以閼絶懲創爲事使忿慾(유이알절징창 위사사분욕)不得肄得其正(부득이득기정) ⑨人之不可廢者(인지불가폐자) 詩書也(시서야) 不學則如面 墻(불학즉여면장) 蔑識則如禽獸(멸식즉여금수) 人而不業詩 書(인이불업시서)烏可曰人耶(오가왈인야) ⑩養生(양생) 莫先於衣食(막선어의식) 耕織以爲基業(경직 이위기업)且勿求飽煖(차물구포난)人目之以不侈不野(인목 지이불치불야)此其爲節儉也(차기위절검야) 以此十條(이차십조), 爲家範(위가범), 服膺而勿失(복응이물 실), 則無愧爲謹勅之士(측무괴위근칙지사), 汝曹勉哉(여조 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