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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한국독립운동과 국제도시 한국독립운동의 세계적 전개   26 2023년 4월 년대 중국 내 한인 아나키즘운동은 항일의열투쟁으 로 특징지어진다.  의열투쟁의 전개 암살과 파괴를 통한 의열투쟁의 대표적인 단체인  의열단은 1920년 가을쯤 근거지를 베이징으로 옮겼 다. 베이징에 활동하고 있던 독립운동가 다수가 의 열단에 가입하거나 관련된 활동을 펼쳤다. 대표적인  의거는 1920년 9월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투탄 의거,  그해 11월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투탄 의거, 1921년  9월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청사 폭탄 의거, 1922년 2 월 상하이 황푸탄에서의 김익상·오성륜 등의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암살 시도, 1923 년 1월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 의거 등이다. 이렇 듯 1921~1922년 2년 동안 의열단의 활약은 일제에  충격을 던져줬다.  1923년 1월 단장 김원봉은 신채호로부터 「조선혁 명선언」을 받고선 아나키즘적인 운동 이념과 노선을  천명했다. 그 뒤 김원봉은 활동 무대를 상하이로 옮 겼지만 사회주의사상의 확산에 따라 단원 사이에 이 념 분쟁이 일어나 활동은 침체 상태에 빠졌다. 중국 에서 국공합작이 이루어지자 1925년 가을경 본부를  광저우(廣州)로 옮겼다. 1920년대 중후반에 베이징에는 새롭게 ‘다물단(多 勿團)’이 출현했다. 신채호가 이 단체의 선언서를 작 성해 주었고 단원들은 유자명, 이회영, 김창숙 등의  지도를 받고 밀정들을 제거했다. 대표적으로 1925 년 3월 베이징의 독립운동가 사이에 숨어 있던 고급  밀정 김달하의 처단을 들 수 있다. 상하이에는 암살과 파괴를 목적으로 1926년 1 월 병인의용대가 조직되었다. 이 단체는 이유필 · 나 창헌 등의 주도하에 일제의 밀정과 친일 분자를 처 단하는 활동을 했다. 병인의용대가 상하이 일본총 영사관을 폭파하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소기의 성 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어서 1931년 김구를 중심으로 상하이 등지에 서 일제의 주요 인물을 암살 · 처단하여 일제의 침 략 야욕을 꺾을 것을 목적으로 ‘한인애국단’이 결 성되었다. 이봉창의 도쿄 의거,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 등이 한인애국단의 대표적인 활동이었다. 한 인애국단의 활약으로 중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비롯해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적극 지원하 게 되었다. 그러나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 을 피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근거지인 상하이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1931년 ‘9 · 18사변(일명 만 주사변)’ 이후 중국에서 일제 침략 세력이 확산되 면서 베이징·상하이와 한국 독립운동의 관계는 점 차 멀어졌다.  필자 손염홍 중국 길림성 장춘시 출생. 중국 연변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박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 교양학 부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편 · 저 · 역서로 『근대 북경의 한인사회와 민족운동』(역사공간, 2010), 『운암 김성숙 의 생애와 사상』(공저, 2013), 『중국신문 안중근의거 기사집』(편저, 2010), 『상하 이 지역 일본군 위안소』(역서, 201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