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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6월30일 금요일 8 (제198호) 기 획 박만영 회장은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 례리 사화동의 산골마을에서 밀양박씨 사문진사공 후 갈충공(휘 宗南)의 네 아 들 중 사남인 통정대부 휘 영방(榮邦)의 후예로 태어났다.어렸을 적 아버지로부 터항상선조의 충의정신과 가문의 전통 을 듣고 자라면서 어린마음에도 선조를 흠모하는 소년으로 자랐다.그러나 농사 를 짓던 집안은 6남 1녀를 양육하기에는 너무 가난했다.아들로는 다섯째 형제로 는여섯째였다.큰형님이공부를하면둘 째는학교를쉬고농사를도와학비를대야하는식이었는데,1967 년단장면의고례초등학교를졸업하고중학교에진학할차례인데 이상하게 아버지가 부르더니 “넷째 형이랑 동생이 중학교 들어가 야하니네가농사를좀지어달라”고하였다. 서운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사정을 아는 만큼“네,일년만 하겠 습니다.”하고집안일을거들며지냈다.그런데이후3년동안농사 를지어야했다.당연히중학교에진학한친구들이까만교모,교복 을 차려입고 반짝이는 배지를 달고 찾아오면 어린마음에 부끄러 워산으로줄행랑을치면서한편으로는무쩍부러웠다. 열일곱살5월늦은봄‘이렇게살아서는안되겠다.’싶은생각이 들었다.한해한해머리는굵어지는데농사만짓기에는앞길이너 무불안하고도시에나가서공부하는친구들이부럽기만해5만원 정도 들고 추민국이란 친구와 둘이서 기차를 타고 무작정 부산으 로갔다.요즈음으로말하면가출을한셈인데도망나오면서혹시 나싶어뒤주에서쌀세되를꺼내담았다가그래도남은식구들이 밥을못먹을까걱정되어다시넣고한되만꺼내왔던기억이지금 도생생하다. 막상 부산역에 도착했는데 친구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그길 로버스를타고노포동종점까지갔다.근처중국집에들어가짜장 면을시켜먹고서는안가고있으니주인이왜안가고계속있느냐 고물었다.갈곳이없다고하니주인이자신의중국집에서일을하 라고했고,3개월동안배달일을했다. 부산생활에익술해질무렵셋째형님이수소문끝에내가있는 곳을 알아내 찾아왔다.그리고는 “촌에 좀 있거라.조금 있으면 부 산에 취직 시켜 줄게”하고 달랬다. 결국 둘째 형님과 함께 밀양으 로다시돌아왔다.그때가가을걷이가막시작될무렵이었다.부산 에보내준다는약속에흥이나서열심히일했고,지게를지고산비 탈을 오르내리며 부모님이 겨울에 땔 나무까지 마련하는 등 부지 런을떨었다. 결국 열아홉 살이 되던 1973년 형님이 약속을 지킨 덕에 다시 부 산으로가서취업을했다.둘째형님과사형의소개로펜치,드라이 버,밸브등공구를파는삼남기공사에서일하게되었다.둘째형님 집에 얹혀살면서 1년 가까이 그곳에 다녔다.그러다가 사형으로부 터광덕물산미싱기사로취직되었다고연락이와서회사를옮겼다. 와이셔츠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당시 서면 진양화학 옆에 있었 다.사실 기술은 없었지만 미싱 수리보조로 들어가 어깨너머로 배 우고,다른 사람들이 퇴근 후에그날보아두었던 것을 실습해보는 등 밤낮으로 열중하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제일가는 미싱수리기사가되었다.첫달월급이3,800원,지금돈으로는30만 원정도되는수준이었다.하지만돈보다는평생할수있는일을찾 은셈이었으니인생의터닝포인트가되었던셈이다. 2년 후 군대에 갔다 오니 다른 사람이 차고 앉아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마산,부산,서울 등지로 몇 달간 방황을 하다가 경기도 부 천에 있는 신양이란 텐트 공장에서 일했지만 오래 근무하지는 않 았다.회사가 반월공단으로 옮겨 갔는데 다른 직원은 방을 얻어주 면서 박 회장에게는 얻어주지 않았단다. 이에 화가 나서 보따리를 싸들고부산으로내려왔다.이때텐트만드는것을눈여겨보았다가 이것을바탕으로우여곡절끝에1981년부산부전시장에서큰업체 의 하청을 받아 브랜드도 없이 텐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이때 는세사람이동업을했는데마음이안맞아서2년만에접었다. 그리고는부산양정에위치한반지하30평에미싱3대를들여놓 고2대를더빌려모두5대로임가공을하면서수통피,야전삽피를 만들어 군대에 납품했다.이건 품질만 신경 쓰면 되는 제품이여서 착실하게만하면제법돈이들어왔다.미싱을한대 두 대 늘려 60~ 70대가 되기에 이르자 본격적으로 텐트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번 돈을밑천으로1983년 초읍 초곡시장 지하로 옮겨 콜핑(코리아 캠 핑이라는뜻)이란이름으로봉제사업을시작했다. 1987년서울올림픽이개최되기1년전사업이정말불같이일어 났다. 주로 미국에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텐트와 배낭 등을 수출했는데 자고나면 하루에 100만원,100만원씩 남는 게 눈 에보일정도였다.1995년에는텐트와배낭수출로‘수출100만달러 수출탑’까지수상하는등눈부신발전을거듭했다.하지만호사다 마랄까경기가급격히하락하면서인생최대의위기를만났다. ‘100만 달러 수출 탑’도 받고 직원이 450여 명에 달하는 등 승승 장구하던사업은IMF사태직전인1996년8월80여억원의부도를 내고한순간에빈털터리가된것이다.당시주로일본에텐트를수 출했는데 국내 기업끼리 ‘제 살 깎기’ 경쟁을 하는 바람에 채산성 이나빠져결국수출을포기하고내수로돌렸다.하지만그마저불 황으로 판매가 여의치 않았다. 게다가 판매대금으로 받은 어음과 가계수표가 줄줄이 부도나는 바람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원자재 대금은꼬박꼬박줘야하는데당장줄돈이없어어음을발행했다. 하지만자금이원활하게돌지못하면서결국부도로이어졌다. 당시부도가 난어음을 들고아침 일찍몰려드는채권자들이납 품하려고준비해둔제품을싹실어가버렸을때는정말로세상살 기가 싫어질 정도였다.이제 끝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으면서 이 렇게살아뭐하나싶었다.하지만먹여살릴가족이있으니그러지 도못했다.결국빛독촉에시달리다못해가족들을남의집에더부 살이를시켜 놓고텐트하나달랑 들고지리산으로들어가혼자생 활 했다.산속에서 혼자 지내다보니 시골에 살아봐서 그런지 마치 고향에온것같았다.그러나두고온가족특히혼자서감당해야하 는아내걱정에하루하루가힘들었다. 실패의 이유를 곱씹기도 하고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지, 벗어날 수는있을지등온갖생각이들었다.찬이슬을맞으면서‘가족을위 해서라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결심했다. ‘세상이 날 버렸다고 나도버리면안되지않은가.안된다고해서가만있으면안되겠다. 계속정진하고움직여야한다.왜하지못하겠는가.다시바닥부터 해보자’란각오로다시3개월만에집으로돌아왔다. 집으로돌아와서지리산에서얻은교훈을되새기며‘할수있다. 해보자’란다짐을통해정신적건강을회복한것이이후삶에긍정 적영향을미쳤다.집으로돌아와모두내잘못이라받아드리고어 느때보다열심히일을했다.그렇게꾸준히사업에집중한결과은 행및보증기금등부채를청산하고내이름과보증을서준동생의 이름으로1만원씩예금한각자의통장을만들었을때가생애가장 보람찼다. 지리산에서 내려와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려니 막막했다. 그 래도 아는 것은 텐트, 섬유, 옷 밖에 모른다고 판단해 1997년 처남 등지인에게500만원정도를빌려부산에서장사를다시시작했다. IMF사태로 온 나라가 어려웠을 때 오히려 박 회장에게는 전화 위복이 되었던 것이다.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중소기업을 돕자는행사가벌어진것이다.요트장경기장안에천막을치고부 스를 빌려 장사를 하는데 경험이 없어 ‘골라 골라’ 하는 호객행위 도못하고손님들에게입도떼지못한채멍하니한나절을서있었 다.친구에게타박을맞고점심때막걸리한잔을마신게힘이되었 는지자신감이생겨재미도있고큰돈은아니지만하나팔면5~6만 원이 들어오니 ‘이게 일어날 수 있는 기회다. 지금이 기회다’라고 절실히느꼈다. 부산에서번돈으로울산으로옮겨가울산MBC에서태화강고 수부지에중소기업살기기캠페인의일환으로중소기업제품판매 전을 열었는데 방송 덕분인지 불티나게 팔려 5천 만 원이나 벌었 다. 이렇게 번돈으로 경남양산에작은 창고하나를 마련하고 부산 에있는공장에의뢰해옷과텐트를만들어팔았다.월요일부터목 요일까지는물건이잘만들어지는지부산공장을들러보고금요일 과주말에는대구와대전,광주등지의판매처를순회한수일요일 새벽 3~4시에 돌아오는 강행군을 반복했다. 싸고 품질 좋은 콜핑 제품은입소문이 나서 불티나게 팔렸고,박 회장은 전국을돌아다 니며콜핑제품을팔았다. 낯설기만 한 장사의 세계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 이연구하고노력했던당시를떠올리면,중소기업전은새로운제2 의인생을펼쳐준보약으로여겨진다. ‘콜핑’은 2001년 이 후 본격적으로 알려졌 지만, 1983년 등록한 상표다.코리아캠핑이 란 뜻으로 박 회장은 자신의 브랜드를 단 제품을 만들어 팔겠다 는생각으로등록했다. 아웃도어 의류를 소비 자에게 알리기 위해 ‘산과 하나 되는 자유’, ‘자연이 선택한 브랜드’,‘합리적인 아웃도어’ 등을 만들어 반응을 봤지만 싸늘했다. 내용을 함축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데다 중저 가 이미지로는 시장에 어필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다 가 박 회장은 무심결에 “그냥 콜핑이면 충분하지 않나”라고 하자 모두가무릎을쳤다.기능도만족스럽고산에오르는데필요한다 양한제품을모두갖춰다른회사제품을찾지않아도된다는만족 감을소비자에게준다는의미가담겨있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 직접 콜핑 제품을 입고 히말라야도 가보고, 산악원정대에도 물 품을지원해본결과텐트와배낭,양말,속옷,등산화,의류등모든 것에서 품질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희말라야,지리산,한 라산,제주도올레길도콜핑하나면충분하다’는자신감이란으로 이런작명이가능했다. 박 회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콜핑은 국내는 물론 중국, 미얀마, 베트남,인도네시아,방글데시에생산거점을두고,특히방글라데 시에는1천여명의근로자가생산에주력하고있다. 그리고해외에서도각광받으며승승장구했다.국내유통망303 개 점포와 2015년 첫 중국 진출이후 100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특 히“우수한기능과뛰어난디자인으로세계각국에서인정받고있 는콜핑은U.S.A,ITALY등해외10개국으로수출되고있다. 그리고 독특한 지자인과 다양한 아이템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더나은즐거움을표현한어반라이프스타일골프웨어브랜드‘비 티알’, 안전한 작업환경 필수에 따른 작업화, 안전화, 스포츠용품 등을주력하는안전화전문브랜드‘콜핑세이프’,스포츠아웃도어 를 주력상품으로각종포털사이트 및 자사몰에 유통,판매를 전문 으로 하는 온라인 브랜드 ‘KICT’, KF94인증 마스크 전문브랜드 ‘에코자연’등의계열사를가진중견기업으로우뚝섰다. 박 회장은 항상 소비자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까 지받은사랑사회사업으로보답하고자한다. [튀르키예지진피해지역기부] 2023년 02.21.2시 4분 2 8초 규모 6.4의 대지진으 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국민들을 돕기 위해 콜핑이 자사물품을 긴급 지원했다. 콜핑은 현지에서 가장 시급하게 지원이필요한부분이이 재민들의 거주시설과 방 한용품이라는점을주목하여텐트150동,침낭 400개,키즈 롱패딩 300개씩 총 850개(약 3억 상당)를 지원하면서 주목받았다.관계자 는“형제의나라튀르키예국민들의슬픔을함께나누고조금이나 마 재해 구호에 도움이 되고자 빠른 지원에 나섰다”며 “예기치 못 한 자연재해로 슬픔에 빠진 튀르키예 이재민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조속히지진 피해를극복하고다시 일어설수 있기 를희망한다”고전했다 [한국청소년오지탐사대후원] 대한산악연맹은 전 세계 산악오지를 탐사 하는 븮콜핑과 함께하 는 2023 한국 청소년 오지탐사대븯 꾸렸다. 븮콜핑과함께하는2023 한국 청소년 오지탐사 대븯는 대한산악연맹이 주최하고콜핑이후원하는프로그램으로2001년부터진행한청소 년들을 위한 국내 최대의 해외탐사 프로그램이다. 올해 오지탐사 대는 만 18세~24세로 구성된 챌린저 16명과 고등학생 1~3학년(이 와같은연령대청소년)인드리머8명으로꾸려지며,각팀당청소 년대원 8명,대장·지도위원 2명으로 구성된다.종합훈련 및 각대별 훈련,발대식을거쳐7월부터8월까지약20여일간탐사에나서게 된다. [무등산무돌길완주대회후원]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아 천년 문화와 광주 정신이 어린 무등산무돌길을‘지구촌민주화운동의성지순례길’로만들기위 한 ‘제2회 전국 무등산 무돌길 완주대회’가 지난 5월 20일 무등산 일원에서 열렸다.21일 (사)무등산무돌길협의회,광주시체육회,5 ·18기념재단등에따르면이들이주최하고광주시와전남도,광주 동구·북구,담양군·화순군,(주)콜핑,(주)비오신코리아가후원한 이번 대회는 광주·화순·담양 등 무등산 자락 60㎞ 구간에서 진행 됐다.㈜콜핑은 무등산 무돌길과 완주대회를 알릴 수 있도록 서포 터즈 진행을 했고, 완주대회에는 참가자들의 티셔츠를 후원했다. 완주(60㎞/51.8㎞)와하프(13·23·33·44㎞),5·18사적지와무돌길1 5구간 (푸른길)을 중심으로 한 시민 걷기(5.18㎞) 등 다양한 코스 로 나눠 열린 이번 대회에는 1800여 명의 참가자와 300여 명의 자 원봉사자가 참여했다. 전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오월의 푸른 하늘 아래 무등산 자락에 펼쳐진 무돌길의 비경과 문화를 만끽하며 저 마다목표한구간을완주했다.특히참가자중200여명이51.8㎞와 60㎞구간을제한시간인12시간안팎에완주하며기염을토했다. 박회장은이밖에도‘2030부산세계박람회개최’,‘울산울주세계 산악영화제’,‘골둠피크 해외원정대’, ‘산악문화 발전위한 전국 산 악대회’,‘인재양성 학교’,‘섬유패션산업’후원과 본사가 있는 양산 시와 고향 밀양시에 고향사랑기부 등으로 지역발전에 힘을 보태 고 있다.특히 2011년 11월 11일 븮제25회 섬유의 날븯 기념식에서 섬 유패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포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박만영회장은박성(朴姓)으로태어났음을자랑스럽게여기 며각급종친회 행사에도후원을아끼지 않아종친들의찬사가 이 어지고있어더발전하는‘콜핑’을응원해본다. 종/친/탐/방 ㈜ 콜핑 박 만영 회장 콜핑본사,경남양산시외신길23-33(덕계동) 콜핑은 자연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고객에게 높은 품 질과 합리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전문 스포츠브랜드로 국내외 생산거점을 두고 국내 303개 중국에 100개 매장 을두고있다.우수한기능과뛰어난디자인으로세계각 국에서인정받으며,U.S.A,ITALY등해외10개국으로수 출되고있으며골프웨어브랜드‘비티알’,안전화전문브 랜드‘콜핑세이프’,판매를전문으로하는온라인브랜드 ‘KICT’,KF94인증마스크전문브랜드‘에코자연’등의계 열사를가진중견기업으로연매출3천억을돌파하는등 우리나라아웃도어브랜드를선도하는기업으로자리메 김하고 있다. 박만영 회장은 밀성(밀양)박씨전국청년회 제7대(2013~2015)회장으로청년회발전을이루었고,파 조인사문진사공파를비롯간의대부공종중에도기여한 바가커많은종친들의칭송이자자해소개해본다. 친구들교복이부러웠던유년시절 박만영회장 스물아홉살에창업,미싱기사에서사장으로 포기하지않는한실패는 없다 인생2라운드,울산에서다시일어나다 소비자에게받은사랑사회에환원하다 박만영회장은직접산에오르는산악인이기도하 다.사진산악회지원업무협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