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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타의 시인들과는 달리 자연을 다루는데 있어서 지나치게 관념적인 경향으 로 빠지지 않고 현장성과 사실성을 살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유배생활을 해야 했던 윤선도였지만, 그는 유배 기간 동 안 바라보았던 자연을 단순한 도피처나 일시적인 피난처로 생각하지 않았 다. 자연을 진실한 삶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자연이야 말로 자신 에게 인간 본연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윤선도의 자연친화적 작품들은 단순히 안빈낙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과의 합일을 노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물아일체의 자연관은 윤선도가 지향하였던 엄격한 유 교적 윤리 체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가 자연에서 발견한 인간적 가치와 정서는 대부분 유교적 덕목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윤선도의 작 품, 인격, 인생관 등 전반적인 이해를 필요로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소학〉이다. 윤선도는 자신뿐만 아니라 왕의 정치이념이나 후학의 양 성 등 사회 모든 곳에서 〈소학〉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윤선도의 작품에는 자연과 합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조정과 산림을 하나로 파악하여 연군지정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초기의 〈견희요〉, 〈우후요〉나 후기의 〈몽천요〉뿐만 아니라 자연을 노래한 〈산중신곡〉, 〈어부사시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윤선도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의 작품에 사용된 언어의 아 름다움에 기인한 바도 크다. 교과서에 수록된 〈어부사시사〉 외에도 〈만 흥〉, 〈오우가〉 등의 작품에는 한글이 지닌 멋스러움과 다양한 표현력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어부사시사〉 등의 작품에서는 조선 중기까지의 시조에 서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였던 한시구(漢詩句)를 순 우리말로 바꾸어 표현 의 난삽함을 극도로 절제하고 한글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밖 에도 한글을 통한 여음구, 청유형과 의문형을 적재 적소에 배치하여 시조 의 리듬감을 효과적으로 높이는 데에도 성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