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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옥포해전이 있던 다음날에는 고성의 적진포(赤珍浦)에 정박중인 왜선 13 척을 쳐서 불태웠다. 제1차 출동 후 전력을 보강하고 전선을 정비한 뒤 다 음 출동에 대비하고 있던 이순신은 일본수군의 주력함대가 서쪽으로 나아 간다는 정보가 계속 들어오자,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에게 합동으로 출동하여 왜선을 격파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경상우수사 원균으로부터 왜선 10여 척이 사천·곤양 등지로 진 출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예정출동일을 변경하여 적에게 선제공격을 가하 기로 하였다. 5월 29일 거북선을 앞세우고 23척의 전선으로 여수항을 출항하였다. 노량(露梁) 앞바다에 이르러 전선 3척을 인솔하고 있던 원균이 이순신의 전함에 올라와 적정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조선수군은 곧 일본수군이 정박 중인 사천으로 달려갔다. 이때 왜군은 대부분 상륙하여 있었고 해변에는 왜선 12척이 줄지어 정박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공격이 용이하지 않자 그들을 바다로 유인하여 섬멸할 계획을 세웠으며, 그 작전계획은 적중하여 왜선 12척을 파괴하고 많은 왜군을 섬 멸하였다. 이 싸움에서 군관(軍官) 나대용(羅大用) 등이 부상하였고, 이순신도 적의 조총탄에 맞아 왼쪽어깨가 뚫리는 부상을 입었다. 이 싸움에서 최초로 출 동한 거북선의 위력은 확고한 인정을 받았다. 6월 2일 왜선이 당포(唐浦) 에 정박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곧 그곳으로 달려갔다. 당포 선창에는 일본수군장 가메이[龜井玆矩]와 구루시마[來島通元]가 인 솔하는 대선 9척, 중·소선 12척이 정박하고 있었다. 일본수군들은 성 안팎 에서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다 조선수군을 보고 발포하였으나, 거북선을 앞 세운 조선수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대패하고 왜장 구루시마가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