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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등 10인이 6년에 걸쳐 경주 옥돌로 조성하였다. 천불이 완성된 뒤 해로를 통하여 이 절로 옮기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일본에 닿게 되었으나, 일 본인들의 꿈에 이 천불이 나타나서 ‘우리는 지금 조선국 해남의 대둔사로 가는 중’이라 하여 다시 대흥사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천불전 좌우에는 불경을 배우는 학승들이 기거하는 1982년 전라남도 유 형문화재로 지정된 대흥사 용화당(龍華堂)과 강사가 기거하는 건물이 있으 며, 정면에는 가허루(駕虛樓)가 있다. 표충사는 대흥사의 사격(寺格)을 말해 주는 대표적인 건물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하여 공훈을 세웠던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四溟)과 처 영(處英)의 영정을 봉안했으며, 1976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표충사 일원의 당우 배치는 표충사를 중심으로 좌우에 표충비각(表忠碑 閣)과 조사전(祖師殿), 정면에 삼문(三門), 삼문 밖에는 2층 누각인 의중당 (義重堂)과 앞쪽에 중문인 예제문(禮齊門)과 정문인 호국문(護國門)이 있다. 또, 의중당의 동쪽에는 서산대사의 유품을 비롯하여 절의 유물(遺物)을 보관하는 서산대사유물관이 있다. 표충사의 건물은 1789년(정조 13)에 건 립되었고,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며, 정면 3칸의 맞배집이다. 의중당은 당시 6군의 군수가 봄·가을로 표충사에 제사지낼 때 가지고 온 제물을 차리던 곳으로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이다. 서산대사유물관 에는 선조의 하사품인 옥발(玉鉢)·비취옥발(翡翠玉鉢)·수저·금란가사(金棋袈 娑)·금자병풍(金字屛風)과 표충사총섭사령패, 서산대사의 친필·교지·신발, 초의가 그린 관음도, 대광명전상량문, 승군단(僧軍團) 표지물, 철제 방패, 금과 은으로 쓴 불경, 금동불상 등 총 24종의 유물이 있다. 1982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대흥사 대광명전은 표충사 동쪽 300m 지점에 있으며, 조선 후기 초의가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