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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국민보도연맹사건> 전쟁이 발발하자 해남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소집 또는 연행당하여 해남경찰서와 해남식량영단 창고(혹은 공회당) 등에 감금되었다. 7월 16일 해남경찰서는 이들을 어란항에서 끌고 나가 진도군 의신면 구 자도리 갈매기섬에서 살해했다. 한편 또 다른 주민들은 해남식량영단 창고 에 구금되었다가 7월 22일 해남군 화산면 맹원에서 희생되었다. 당시 해남 보도연맹원의 수는 600여명에 이르렀다. 사건 당시 의용소방 대원이었던 김씨(김인택)의 증언에 따르면, 갈매기섬에서 희생된 주민들은 주로 송지면, 북평면, 현산면 보도연맹원이었다. 이후 해남경찰 150여 명 이 선박 1대, 경찰 가족 120명 1대(천신호), 공무원 및 우익인사 30여 명 은 별도 선박을 이용하여 송지면 어란리, 완도, 욕지도, 거제도로 후퇴했 다. 거제도에서 경찰은 전투부대로 출동하고, 가족 등은 다시 부산으로 후 퇴했다. <나주부대사건> 해남경찰서의 후퇴 후 나주경찰부대가 해남에 진입했다. 나주경찰서의 경찰관 270여 명은 7월 23일 인민군이 광주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 후 3시 후퇴를 시작하여 영암, 강진, 장흥, 보성을 거쳐 7월 25일 해남에 진입했다. 이들은 완도를 통해 해로로 부산까지 후퇴하려 했다고 알려져 있다. 해남경찰이 후퇴한 사실을 몰랐다면 인민군으로 위장한 나주부대 경찰 과 해남 완도경찰 간의 교전이 벌어졌을 것이므로 이 사실과 수백 명의 국민보도연맹원들의 희생사실을 알고 있었을 나주경찰부대가 경찰신분을 숨긴 채 해남에 들어와 인민군행세를 하며 ‘인민군 환영대회’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