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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에 태어난 세대)가 사회 화두로 등장하 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인구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542만 명, 5년 사이 노인 인구가 24% 급증했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 고령 사회(14~20%)'로 진입하고 있다 는신호다. 10년 정도 지나면 현재 노인인구보다 더 많은 인구인 베이비붐 세대 700 만 명이 노인인구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때가 되면 우리 사회도 지금까지 겪 어 보지 못한 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 게될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는 우리 사회 여러 면에서 상 당한 그늘을 드 리우게 할 것이 다. 하지만 꼭 그 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발표한 국토연구 원의 통계조사는 베이비붐세대고 령화의긍정적인면도보여주고있다. 국토연구원은 광역경제권 중심 대도 시(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베이 비붐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를 실 시 하 고 여 러 가 지 정 책 적 시 사 점 을 발표했다. 그 발표 내용을 보면 대도 시 거주 베이비붐 세대의 2/3정도(약 5 00만명)가 은퇴 후 농촌이주 의향을 갖 고 있다. 이 응답자의 13.9%(70만명)는 농촌이주 계획을 구체적으로 갖고 있으 며, 구체적으로 농촌이주 계획을 가진 경우 85.8%가 향후 10년 이내에 농촌이 주를 희망하고 있다. 응답자의 41.8%가 5년 이내, 그리고 44.0%가 5년에서 10 년 이내에 농촌으로 이주할 계획인 것 으로조사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이도향촌(離都向 村)성향이극명하게나타난것이다. 이처럼 베이비붐 세대의 농촌전원 지 향 성향은 인구감소로 고민 하는 농촌 지역에 인구증가 효과는 물론 농촌 활 성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로 활용할 수 있고 비수도권 및 농촌으로의 인구분산 효과도있다. 베이비 붐 세대의 이주목적을 살펴보 면 농촌으로 이주하려는 목적 중 "본인 및 배우자의 노후 전원·휴양·여가 활동 영위를 위해서"가 69.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농림수 산물 생산·가공·판매(11.2%), 음식점· 숙박업·펜션·체험농원 경영(8.2%)등 경제적 기회 창출도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차지한다. 이는 농촌지역에 안정적인 소비층이 두 텁 게 형 성 된 다 는 의 미 이 며 또 직 접 생산에도 참여해 농촌지역경제 활성화 에큰도움이될것이다. 베 이비 붐 세대 의 농 촌 공 간 선호 구조 를 보면 대도 시거 주 베이 비붐 세대 는 대 도시 인근의 농촌지역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 농촌이주 계획을 구체적으로 가진 경우 비수도권의 농촌마을(20.9%),면소 재지(14.2%), 중소도시 인근 농촌(16.4 %)을 선호한다.이주희망농촌지역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울에 사는 베이 비붐 세대는 경기(43.6%), 강원(14.6%), 전남(7.2%),경남(6.3%)순으로나타나고 있고,부산에 거주하는 이들은 경남(55.0 %),경북(6.4%)경기(5.0%),대구는경북 (70.5%), 경남(6.3%), 광주는 전남(79.5 %), 전북(4.5%), 대전은 충남(41.5%), 충 북(15.1%), 경기(5.7%), 전남(5.7%)순으 로나타났다. 이 통계를 보면 우리 전남은 광주, 서 울 , 대 전 순 으로 선 호도 가 높 게 나타 나 고 있 다. 광 주야 당 연 한 것 이지 만 특히 인 구가 가장 많 은 서울 에 주 목을 해 야 한 다.현재는7.2%로그리높게나타나고있 지 않지만, 전남의 생태환경과 주거환경 은 타 시 도와 비 교가 안 될 정도 로 좋다 . 단지 그동안 접근성에서 떨어지고 홍 보가 덜되어 아직 서울주민들의 선호도 가 떨어져 있을 뿐이다. 앞으로 KTX가 목포까지 확장되고 나면전남은 서울에 서 1시간 거리이다.접근성에서 서울 근 교농 촌에크게뒤지지않는다. 서울 근교와 이주비용면에서도 많은 차이가 날 정도로 저렴하다. 이 점을 잘 홍보하면 이주희망자가 전남으로 많이 오리라본다. 이처럼 전남은 베이비붐 세대의 농촌 전원 지향 성향을 활용하기 위한 정책 을 마련해야하는 등 타시도보다 발 빠 른움직임이필요하다. 전 남을 농 촌 활 성화 의 새 로운 거 점으 로 만들어 내기 위해 전원주거, 경제활 동, 의료·복지, 활력증진등 다기능 복합 형농촌도시로만들어내는데지금발벗 고 나서 시 작해 도 빠 른 것이 아 니다 . 베이비부머세대의이도향촌에주목하 라! 박철홍 전전남도의회운영위원장 담양군종친회사무국장 2023년2월28일 화요일 11 (제194호) 독자마당 출신이 좋으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그 러나여기에는 조건이있다.어렸을적의 시련과 어려움이 경험과 체험으로 몸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언론에 나오는 지 체 높은 인 사들 의 불 명예 스러 운 보도 를 보면,어렸을적에경험을통해형성되어 있었어야 할 겸손과 겸양, 배려와 공감 능 력 이 빈 약 하 여 생 긴 일 이 많 다 . 대한민국도 이제는 세계경영을 할 때 가 되었다. 국제적으로 G7의 위상에 세 계 10위권 경제대국이고 또 문화강국이 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로서는 세계 에서 유일하게 경제화, 민주화, 문화화를 달성 했다. 식민지시 대의 가난하고 어려웠던 경험 이 한국인 특유 의 발전DNA와 결합되어 성장 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큰꿈을 하나 세워도 좋을 것 같다. 대 한민국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大세계 경영을 하자는 것이다. 두 가지 문제 를 해결하면 가능할 것 같다. 국민의 민도(民度)가 공직자들의 의식수준인 관도(官度)와 정치인들의 치도(治度) 를 좌우하기에 첫째는 국민의 의식수 준인 민도를 높이는 일이고, 두 번째 는 전 세계적으로 170여 개발도상국 들이 한국으로부터 배우고 지원받기 를 학수고대하고 있기에 그들을 도와 주는 일이다. 어 떻 게 해 야 이 두 가 지 문 제 를 해 결 할 수 있을까? 국민이 깨어있으면 민도 는 높아진다. 무엇이 옳은 일이고 그른 일인지 분별할 줄 알면 민도는 높아진 것이고,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일을 제 대로 하지 않거나 그르게 일을 하면 과 감히 혼내는 사회기풍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관도와 치도가 높아진다. 자원봉사는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활 동이다.활동과정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경험과 체험은 차치하고라도 겸손과 겸 양, 배려와 공감 능력이 몸에 붙으면서 의식수준도 높아져 옳고 그름을 분별하 는 의리지변(義利之辨) 능력이 높아지 기때문이다. 기업CEO들에게는 외교자원봉사활 동((Diplomacy volunteer)을 제창한다. 중견중소 기업인들이 서울에 상주대사 관을 두고 있는 115개 외국대사관을 상 대로 코리안 서포터즈 봉사활동을 하면 개도국들에게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도 움 을 주면 서 목 마름 을 채워 줄 수 있다 . 그 과정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도 익히고 국 제적인 인맥도 만들게 되면 한국사회가 점차 선진사회로 변모되는 등 기대효과 가 크기 때문이다.기업은 대사관에서 부 탁하는 그 나라 손님 안내봉사와 한국에 서 열리는 국제행사와 국제경기대회 응 원봉사를하고,시도등지방자치단체와 외국대사관을 연결시켜 공공외교도 뒷 받침하는 과정에서 세계화와 지방화를 동시에달성할수있다. 흙수저로 태어나고 자라난 것이 크게 도움되었다는 저명인사가 많다.학생수 몇명 안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수 업으로 가축 키우고 농사짓는 일도 많 이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렸을 적의 고생과 시련이 한눈팔지않고 성실하고 공감력과 창의력 키우는데 크게 도움되 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좌절하거 나 포 기 하 지 않 고 끝 까 지 가 는 성 격 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흙수저 경험은 그 래서 인생의 성장과정에서 아주 중요하 다.자식 귀엽다고 고생 안 시키고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어렸 을 때 고생은 돈 주고 사서 한다는 말이 있듯이, 개인이나 기업이나 흙수저 체 험은 성공의 자양분이다. 다양한 분야 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은 성공하는 인생 을 만드는 길이고, 역량 있는 직원을 키우는 방법이다. 율곡 선생님은 사자위인(仕者爲人) 이고 비위기야(非爲己也)라 했다. 벼슬 은 남을 위해 하는 일이 지 자 기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위고자 주어행도(位 高者 主於行道)이니 도불가행 즉가이퇴 이(道不可行 則可以退矣)라, 높은 벼슬 에 올 라가 면 도 (최 고의 정책 )를 행 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니, 도를 행할 수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하도록) 바로 물러나는 것이 좋다고도 말씀했다. 고위직이 되면 철저히 국리민복을 생각 하고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공직자와 CEO들이 한평생 행동강령으 로마음에 새겨야 할 구절이다.공직에서 의 높은 자리나 기업에서의 높은 자리 모두 본질적으로는 국민을 잘살게 한다 는,그역할이같기때문이다. 흙수저 체험은 아주 중요한 성공자산 이다 박승주 전여성가족부차관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영일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3)588-7300 FAX(053)581-0067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42612 대구달서구달구벌대로1221(이곡동538-2)성창B/D5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 경상남도 진주시 박씨종친회는 지난 1월 28일 오전11시 2022 회계년도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국민의례에 이어 선조에 대한 묵 념,박미경 시의원의 종강삼시 제창에 이어 2022년 결산 및 감사보고, 2023년 사업계획 및 예산안을 원안가결하고 임원 선출에 있 어 전임 박식래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직무대행을 맡아왔던 박윤덕 회장을 신임 회장에 추대하고 수석부회장에 밀성 박씨우당공파진주 호산재 종중 박순오 회 장,감사에는박동진사무국장,박기종청년 회장을각각선임했다. 박윤덕회장은 수락인사를 통해 전임회 장의 궐위로 그 임무를 대리해 오면서 정 말로 부족함이 많았음을 깨닫고 새로운 도 약의 계기 가 될 수 있도 록 정 열적 이고 진취적인 마인드를 가진 새 회장이 선임 되기를 바라왔는데 뜻하지 않게 막중한 임무를 부족한 몸으로 맡게 되어 영광스 럽 지만 두 렵기 도 하 다며 소 회를 피 력하 고 임기동안 미력하나마 우리의 자긍심을 높 이고 대종친회의 유관단체 등과 협력하여 화합하고 단결하며 자랑스러운 선조의 유 훈을 실천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 을 다짐 하고 자 한다 고 말 했다 . 이어 선배 종친 일가 분들의 뜻이 대대 로 이어질 수 있도록 확장 발전시켜 나가 야 하는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 으로 그것이 우리 청년회와 여성회원 여 러 분 이 분 발 해 가 야 하 는 이 유 라 며 함 께 노력하자고주문했다. 진주시종친회는 1926년 숭덕전 중수와 위토답 구입을 위한 전국적인 모금운동에 박헌경(朴憲慶)公(이백원)을 비롯 26명 의 선대어른들이 동참했다. 이는 타 지역 보다 많은 성손이 참여해 당시 화수회 모 임이 활성화 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광복과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모임 은 외소해지고 있어 1971년 39명의 종친 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새롭게 출발하 고 당시 농협중앙회 감사와 진주문화방 송사장을 역임한 박상봉 현종을 초대회 장으로 추대하여 진양·진주박문종친회 로 출범하여 1975년 전 종친이 동참 십시 일반 조성한 기금으로 진주시 유곡동 16 3의 1번지에 부지를 마련하고 3월27일부 터 진양군 진주시거주 2,917세대 종친이 울 력 봉 사 하 여 같 은 해 7 월 3 일 완 공 지 부 회관(齋室:목조와가)을 처음 마련하 였다. 이후 1999년 이를 매각하고 망경동29 -30번지에 대지 241㎡ 연건평 792㎡의 4 층 건물을 전세를 안고 매입하였으나 국 제통화기금을 받는 국가의 경제상황에 높은 이자는 지부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어 2006년 임원진이 숙고한 끝에 매도 매수 추진위원회 를 결성 망경동 회 관을 매도하고 진주시 봉곡동 6-14번지 대지 92.6㎡ 연건평 197.68㎡ 3층 건물을 매입현재에이르고있다. 진주종친회가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은 이처럼선대어른들의피와땀이 서려있어 가능한 것으로 이날 윤덕 회장은 취임사에서도 다 같이 손을 잡고 만파일원 신라왕손의 자존심을 지키며 선조의 명예 를 높이는 일에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소임을다할 수있도록끊임없는채찍과협 력을아끼지말것을거듭부탁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 진주 대안동 소재 박 안과 원장이 타올 100장을 협찬하여 행 사를빛냈다. [박윤덕회장프로필] 시조대왕 66세손 밀성박씨 충헌공 후 현령공 16세손/ 경남 하동군 북천면 194 8년 生/ 경상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 일본 씨마네(鳥根)대학 및 기타미(北 見)공업대학 연수/ 교육부(경상대·창원 대·부산대) 부이사관 역임/ 진주보건대 학교 외래교수/ 진주문화원 간사/ 경남 연합신문 논설위원/ 녹조근정훈장 수훈 / 박씨종친회 진주시청년회장/ 경남청 년회 부회장/ 오릉보존회 이사/ 민족중 흥회경남청년부회장/ /박현숙명예기자(경남진주시지부) 진주시박씨종친회2022정총성료 신임회장박윤덕수석부회장추대 뷺다같이손을잡고만파일원신라왕손의자존심을지키자뷻 유교의 창시자는 공자였습니다. 공자는 세상 사람 모두가 칭송하는 성인(聖人)이었습니다. 그래서 공 자는 ‘생이지지(生而知之)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 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때문에 공자같은 성인은 아 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공자 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나는 생이지지한 사람이 아 니다.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노력하여 학문과 인격을 구해낸 사람이다.(好古敏而求之者也)”라고 말하여 보통사람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인격을 도야 해서 그런 수준에 오른 사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누구라도 공부하고 노력하면 자기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서 가능과 진보의 인간론을 주장했습니다. 더 진지하게는 자신이 보통사람과 차이 없음을 사 례를 들어 설명까지 했습니다. “덕을 닦지 못함, 학 문을 강론하지 못함, 의로움을 듣고도 옮겨가지 못 함, 착한 일을 안하고도 고치지 못함이 나의 근심이 다.(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 吾憂也 : 「述而」)”라고 말하여 갑남을녀라면 지니고 있을 근심이 자신의 근심이라고 명확히 말했습니다. 덕을 닦고 학문을 강론하고 착하지 못함을 고치기만 한다면 원하는 인간의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성인 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 한 공자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경우를 말하기도 했습 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나는 잘못을 저지르고 도 마음속으로라도 잘하고 잘못함을 판단해내는 사람 을 보지 못했노라.(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 者也 : 「公冶長」)”라고 말하여 자신의 잘못을 저지르 고도 마음속으로라도 잘잘못을 판단해 반성하고 뉘우 칠 줄 모르는 경우,그때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절망 의탄식을발하지않을수없다는것입니다. 주자(朱子)는 이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합니다. 마음속으로 잘못과 잘함을 분별해낸다는 말은 입으 로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으 로라도 자신의 허물을 느낀다 는 뜻으로 풀이하고, 그렇게 만 해도 깊이 반성하여 고칠 가망성이 있는데, 그것조차 없다면 그때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공자가 탄식했다고 풀 이합니다. 개과천선(改過遷 善)의 문제에 대하여 다산 정 약용도 많은 주장을 폈습니다. 다산은 자신의 삶을 거론할 때마다 자신의 일생은 참으로 뉘우칠 일이 많은 사람임을 전제하고, 잘못한 일과 잘못 살아온 삶에 대하여 후회하고 반성하고 고쳐야겠다는 각오 를 언급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1822년 61 세 회갑을 맞아 자신의 자서전을 기록하며 “60년의 회갑을 맞았다. 뭐로 보더라도 죄를 회개할 햇수다. (六十朞 皆罪悔之年也)”라고 말하여 회개하는 마음 으로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공자의 절망적인 탄식에 자신의 뜻 을 보충했습니다. ‘내송자(內訟者)’의 송(訟)을 공 개적인 변론으로 보고 마음속으로 자신의 행위가 옳 았는가 글렀는가를 따져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보 았습니다. “마음속에서 천명(天命)과 인욕(人欲)이 싸워 옳은 판단을 내리듯 인욕을 이겨내면 사람은 저절로 그 허물을 알게 되어 옳고 그름도 판단하고 허물도 고치게 된다.(天命人欲 交戰于內 克己如克 訟 然人能自見其過 … 必能見其是非而知所以改過 也 : 「논어고금주」)”라고 말해, 개과할 때에만 인간 이 인간일 수 있다는 결론을 맺었습니다. 공자븡주자 븡다산, 인간이란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지만, 잘못 을 알아 고칠 수 있다면 문제는 언제나 해결된다고 여겼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권력자들, 아무리 잘 못하고도 잘못인 줄을 모르고 마음속으로라도 회개 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라는 공자의 탄식을 읽다보니 나라의 장래가 참으로걱정입니다. 박석무드림 ‘어찌할도리가없구나!’라는탄식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