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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붕어를 계기로 기미3.1운동이 기발하자 선생은 인산길에서 급거 귀향하여 두 아우(상회,상구)와 동지 육창주, 김용이등과 거사를 모의하고 그 주도자로서 사전에 태극기를 제작하여 동년 3월 27일의 이원시일을 기해 수백명의 이민을 동원하여 일헌주재소를 습격파괴하고 옥천으로 진격중에 왜헌과 접전에서 피체되어 무수한 고문에도 항거 불굴끝에 동년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현 서울고법)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공주형무소에서 복역 1923년 6월 20일 형기만료로 출옥○○○ 선생의 우국심은 더해갔고 그에 따라 선생과 그 일문에 대한 일헌의 위협과 탄압을 그치지 않았으나 선생은 의연한 자태로 굳건하게 사시다가 ○○○ 조국광복을 보시고 1948년(무자)년 5월 21일 향년 71을 일기로 타계하시니 배 밀양박씨와 함께 이곳에 잠드시다. 아들 3남에 종섭, 창섭 정섭이요 종섭은..중략..1977년 12월 13일 정부는 그 숭고찬연한 애국충절에 대하여 대통령건국포장을 추서하였으며 여기 독립운동관계문적에 등재되고 이원역전에 기미3.1운동기념비등이 세워졌고 이제 3선성이 지극한 후손과 관민의 헌성으로도 묘비를 근수하니 공 가감언고 선생의 위훈에 천심선보로 예문..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