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page


179page

사벽송 밖에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또는 바람마저 부는지도 모른다 단 한간인 내 房[방]에 壁[벽]안만은 千尋[천심] 물속 같이 고요킬래. 남의 곡식 먹는 참새같이 나면서 가난한 나인 바에 이 누리안 의지할 곳 어데인가 이 누리안 고마울 것 무엇인가 초라한 채 몸 담은 이 네 壁[벽] 뿐을. 바람만 뚫지 않고 비만 스미지 않는다면. 아아 이 네 壁[벽]의 「守護[수호]」 없든들 내 이제 어데를 헤매었을고 생각만 하여도 놀라웁고녀. 네 壁[벽]이 나를 지키이매 내 또한 네 壁[벽]을 길이 지키리라. 寸步[촌보]라도 네 壁[벽]을 내어디디면 그 네 壁[벽] 밖은 殊土[수토]요 異鄕[이향]이리. - ≪춘추≫, 4권 7호, 1943. 7
179page

작품해설 이 작품이 나온 1943년은 일본의 태평양 전쟁 승전 소식이 매일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던 시기였다. 수주에게 세상은 압도적인 힘을 지닌 악이 선의 숨통을 끊어가는 완전한 절망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수주는 사면에 시(詩)의 벽을 세우고 암흑과 고독의 공간 속에 들어가 스스로를 유폐시킨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절망적인 현실 세계와 절연된 정신 공간 속으로 도피하여 그 속에서만이라도 자신의 지조를 사수하겠다는 표독한 의지와 자부심이 공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