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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자로서의 변영로 수주는 15세에(1912) 중앙 기독교 청년회화학교 영어반의 3년 과정을 불과 6개월 만에 졸업할 정도로 뛰어난 언어 감각의 소유자였다. 수주가 활동하였던 1920년대에 요즘과 같은 근대문학을 접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번역본을 보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상태를 주수는 "삼중역중(三重譯的) 문예"라고 개탄하였다. 즉 일본어를 통해 서구 근대문화를 접하기 때문에 늘 일본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주는 일본 유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영어를 습득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을 일찌감치 간파하였다. 그래서 그는 (동아일보)와 같은 신문이나 『폐허』, 『개벽』,『신천지』와 같은 잡지에 다수의 서양 작품을 번역하여 게제하였다. 그는 1921년부터 1930년까지 대략 10여년 동안 스위스 여성작가인 라게를뢰프로부터 시작하여 발자크, 스티븐슨, 시먼스, 메이스필드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여 집중적으로 소개하였다. 아직 걸음마상태였던 조선의 근대문학의 수준과 가까위지기 위해서는 서구 문학을 번역하여 비판적으로 섭치하는 것이 종요하였는데 수주가 그 작업을 선구적으로 시도하였던 것이다. 까닭에 수주는 당시 조선 문단에서 최고 수필의 문예 이론가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