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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오직 뜻과 기개로 살고 맑고 곧음으로써 일세의 스승이 된아가 계셨으니 그가 바로 여기 누워계신 일석 변영태선생이시다. 본관은 밀양 부친은 삼화감리 정상공 모친은 강씨 형 영만은 학문으로 아우 영로는 재주로써 들렸고 선생은 높은 인격으로써 남의 추앙을 받은 이였다. 일찍 1892년 12월 15일 서울에서 태어나 보성중학을 졸업한때는 1910년 국치의 해라 한을 품고서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학교를 마치고 중국 북통주협화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 한뒤에 28세에 고국으로 돌아와 해방에 이르기까지 무릇 반반세기를 중앙고보에서 교편을 들었었다. 0세에 외무부장관 63세에는 국무총리로 세번이나 한국수석대표로써 유엔에 참석한 중에 통일방안 14개 항목의 제시는 특히할일이었다. 혹은 영문학 강의 혹은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72세에 나라를 거정하여 정민회를 조직하고 대통령에 출마했으나 그 높은 뜻을 받들지 못했다. 말로써 타이르고 글로써 꺠우치기 다시 5년동안 1969년 3월 10일 78세로 세상을 여의니 동지와 국민들은 애통한 마음을 금할길이 없었다. 지조를 생명과같이 한세당 뜻으로 살고 조국과 정의를 위해 굽힘없이 걸어간이여 만인의 가슴마다에 스승으로 모시니라 이은상 짓고 김충현 쓰다 1970년 3워 외무부 직원일동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