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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國家) 의흥망성쇠(興亡 盛衰)의 원인은 기 근 ( 饑 饉 ) 이 나 홍수(洪水), 지진 (地震), 화재(火 災)나 외적(外的) 의 침략(侵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회(社會)의 쇠 약(衰弱)과 내부붕괴(內部崩壞)에서 초래된다고 했다. 즉 한 국가의 몰락은 그 나라를 이루고 있는 국민의 마음가 짐이나 도의심(道義心)에 기인(起因) 하고있다. 도덕(道德)의 추락(墜落)이 이 나라 를 멸망(滅亡)케 했다는 것은 우리는 역사에서 잘 배워왔다. 서양사(西洋 史)에서 보듯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은 국민들의 이기주의와 도덕(道德)의 추 락(墜落)에 있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또 중원(中原)에서 대통일(大通一)을 이룩했던 진(塵) 제국(帝國)의 멸망 (滅 亡 ) 은 수 천 궁 녀 (宮 女 )를 둔 아 방 궁(阿房宮)을 지어 음탕(淫蕩)한 생활 을 한데서 비롯됐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반도(韓半島)에서 백 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는 나당연 합군(羅唐聯合軍)의 공격(攻擊)으로 660년과 668년에 각각(各各) 멸망(滅 亡)했으나, 이에 앞서서 양국(兩國)의 집정자(執政者)들은 음탕(淫蕩)한 생 활(生活)과 이기주의(利己主義)에 얽 매여 내분(內分)과 분열(分裂)로 멸망 (滅 亡 )의 길 을 재 촉 했 다 . 그러나 한반도(韓半島)에서 삼국통 일(三國統一)의 대업(大業)을 완수 (完遂)한 신라(新羅)의 시대정신(時 代精神)은 화랑도(花郞道)에서 그것 을 찾 아 볼 수 있 다 . 신 라 (新 羅 ) 는 한 반 도(韓半島) 동남간(東南間)에 위치하 면서 백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의 거듭된 공격을 수없이 견뎌 내면서 삼 국통일(三國統一)의 위업(偉業)을 이 룩했다.이 힘의 원동력은 화랑도(花郞 道) 정신(精神)에서 보여준 앙양(昻 揚)된 도의심(道義心)에 있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조(朝鮮朝)가 동방 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으로 5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성리학(性理學) 에 근거를 둔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 에 가능했다. 만일 화랑도(花郞道) 정 신(精神)이 없었다면 어찌 신라가 삼 국(三國)을 통일(統一)하여 세계 역사 상 단일국구(單一國家)로서 천년의 보 기 드 문 사 직 (社 稷 ) 을 지 속 (持 續 ) 할 수가 있었겠는가. 역사(歷史)는 물적 (物的), 정신적(精神的) 힘이다. 역사 는이상(理想)일수만은없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 고 역사를 소 중 히 여 기 지 않 는 민 족 (民 族 ) 이 지 구 상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 이 바로 윤리적(倫理的) 교훈(敎訓)이 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기의 신성(神 聖)한 생명(生命)을 내 던져 나라를 구 하는 자세처럼 고귀(高貴)하고 위대 (偉大)한 정신이 어디 있겠는가. 신라 (新羅) 장군(將軍) 품일(品日)의 아들 관창(官昌, 645-660)은 15세(歲)의 어 린 나이로 황산(黃山)벌에서 백제(百 濟 ) 를 칠 때 부 장 (副 將 )이 되 어 용 약 선 봉(勇躍先鋒)에 나서서 백제(百濟)의 계백(階伯)장군과 맞서 싸우다 생포 (生捕)되었다. 이때 계백(階伯)장군은 그 어린 관창의 용맹(勇猛)에 감탄하 여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다. 신라 진영 (陣營)으로 돌아온 관창은 또 다시 선 봉 ( 先 鋒 )에 서 서 싸 우 다 두 번 째 로 생 포되고 말았다. 이때 계백은 애석한 마 음을 억제하고 관창의 목을 베어 타고 왔던 말안장에 메달아 신라 진영으로 돌려보냈다. 이를 본 신라군은 소년 관 창의 죽음에 크게 감동을 받아 백제군 (百濟軍)을 대파(大破)시켰다. 계백은 이 황산벌 전투(戰鬪)에서 전사(戰死) 했다. 그 당시 백제는 중국(中國)으로 부터 수입(輸入)한 문물로서 사치(奢 侈)와 향락(享樂)으로 의자왕(義慈 王)은 방탕(放蕩)한 생활로 국사(國 事)는뒷전이었다. 우리는 이처럼 승리(勝利)의 역사 (歷史)와 비극(悲劇)의 역사(歷史)를 다 가지고 있다.이와 같은 역사에서 배 우지 못하고 또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 면 어찌 이 지구상(地球上)에서 오래 살아남기를 바라겠는가. 역사는 기억 (記憶)만으로는 부족(不足)하다. 역사 의 식 (歷 史 意 識 )이 살 아 숨 쉬 고 있 어 야 물적(物的), 정신적(精神的) 힘이 될 수 있 다 .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기운(氣運)이 흐르는 민족철학(民族 哲學)이 담긴 역사(歷史)여야 하는 것 이다. 지금 우리 사회(社會)는 현실(現實) 을 무시(無視)한 실체(實體)없는 역사 (歷史)가 뒹굴고 있는 꼴이다. 이런 상 황(狀況)에서 오늘날 우리 장래를 짊 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이 우리의 역사 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만약 우리 인간이 윤 리적(倫理的) 삶을 신(神)에게 도로 반납하고 단순히 물리적(物理的) 섭생 (攝生)으로 되돌아간다고 치면 우리 인류(人類)는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 다. 독일의 철학자(哲學者) 피히테(176 2-1814)는 인간의 주성분(主成分)이 븮사랑븯이라고 했다. 인생에서 괴로움과 비극(悲劇)이 허다하고 죽음도 있고 가난한 질병도 있다. 그러나 우리 가슴 속에 사랑이 샘솟고 있는 한 윤리는 살 아있고 기쁨을 가질 수 있다.사랑이 메 마른 사회에서는 윤리도덕(倫理道德) 이 지탱할 수가 없다. 사랑과 윤리도덕 (倫理道德)은 인간의 가치 중에 최고 의가치이며,븮윤리적(倫理的)삶븯은목 적 중의 최고의 목적이다. 이런 가치 (價値)와 목적(目的)을 추구하고 달성 하기 위하여는 우리 국민들의 이해와 의식의변화없이는불가능하다. 한 사회(社會)가 불행(不幸)해 지는 것은 진리(眞理)의 길과 불행(不幸)의 길을 두고 어느 쪽으로 저울이 기울어 지는가에 달려있다. 오늘날 한국사회 (韓國社會)의 불행을 두고 흔히들 븮한 국병븯(韓國病)이라 표현(表現)하고 있 다. 이 한국병(韓國病)의 원인은 진리의 길을 놓아두고 불행의 길 쪽으로 저울 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병(韓國病)의 근원적 치료는 도덕 윤리(道德倫理)의 진리(眞理)를 찾아 다함께 실천(實踐)하여 잘사는 사회건 설(社會建設)에 매진(邁進)할 때 치료 (治療)가가능(可能)한것이다. 한국병(韓國病)은 돈도 아니고 의술 (醫術)과 학력(學歷)도 아니다. 생각 의 병(病)이기 때문이다. [본 글은 운산참봉님께서 영면전 남 긴 유작입니다.몇편의글이 더 있어 금 년말까지게재됩니다.] 한국병의근원적치료방법(2) 한빛의메아리 박희학 븣숭덕전前참봉 2022년7월31일 일요일 11 (제187호) 독자마당 다산은 귀양살이 18 년, 긴긴 유배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편지를 두 아들에게 보냈습니다. 귀양가던 1801년 말부터 해배되어 돌아온 1818년 가을까지 아들들에게 아 버지가 먼저 편지를 써 서 보내는 경우, 기(寄)를 사용해 누구에게 부 친다라고 쓰기도 하고, 어떤 경우 시(示)라고 써서 보여준다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아들들의 편지에 답장으로 보내는 경우는 ‘답 (答) 아무개’라고 표현하여 답장의 편지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편지의 성격이지만 어떤 경우는 가계(家誡)라고 하여, 누구누구에게 주는 가훈(家訓) 격인 글이라고 말하기도 했 습니다.강진의 유배 초기,날짜가 명기된 짤막 한 다산의 한 통 편지는 18년 동안 계속해서 하 던 내용이 압축된 글이어서 읽고 또 읽어도 다 산이라는 아버지가 두 아들을 생각하는 간절 한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보기 어렵지 않습니 다. “너희들 편지를 받으니 마음이 위로된다. 둘째의 글씨체가 조금 좋아졌고 문리(文理)도 향상되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덕인지 아니 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덕인지 모르겠구나. 부디 자포자기 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서 부지런히 책을 읽는 데 힘쓰거라.그리고 책 의 중요한 내용을 옮겨적거나 책을 짓는 일도 혹시라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해라. 폐족이 되 어 글 도 못 하 고 예 절 에 맞 는 행 동 을 하 지 못 한 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보통집안 사람들보다 백 배 열심히 노력해야만 겨우 사람 축에 낄 수 있지 않겠느냐?내 귀양살이 고생이 몹시 크다 만 너희들이 독서에 정진하고 몸가짐을 올바 르게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근심이 없겠 다. 큰애는 4월 열흘께 말을 사서 타고 오너라 만, 벌써부터 이별할 괴로움이 앞서는구나. (1 802년 2월 초이레 :「答二兒」) 지난해 11월말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시작하 고 그 다음해 2월초이니 아들들과 헤어진 지 겨우 3개월 정도의 시간이었지만,얼마나 보고 싶으면 말을 사서 타고라도 찾아오라고 했겠 는가요. 그렇게 찾아오라고 권해놓고도, 만나 는 기쁨보다는 헤어지지 않을 수 없는 부자간 의 처지를 생각해서, 헤어질 때의 슬픔을 견디 기 어려울 것임을 먼저 걱정했으니, 그들의 딱 한 처지가 오늘 우리의 가슴에까 지 번져서 우 리를 슬프게 해줍니다. 이 짤막한 편지에 다산 의 바램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글씨도 잘 써야 한다, 문리가 트여 글을 보고 글을 짓는 일에 열심히 노력하여 학자가 되어야 한다, 책의 요 체를 베끼는 초서와 저서(著書)에 게을리 하 지 말아라, 예의에 맞는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 여 폐족이어서 욕먹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일만 열심히 잘 한다 면 유배살이 고통 쯤이야 거뜬하게 견딜 수 있 다는 간절한 다산의 뜻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다른 편지에서 폐족이 폐족 에서 벗어나는 길이 단 한 가지가 있으니,그것 은바로‘독서’한가지일뿐이라고거듭거듭강 조했습니다. 정학연·학유 두 형제는 아버지의 간절한 바램에 등돌리지 않고 참으로 열심히 독서하고 올바른 행동을 제대로 했습니다. 다 산이 세상을 떠난 16년 뒤인 1852년 6월, 마침 내 다산 집안은 폐족에서 벗어나 벼슬하는 청 족(淸族)의 집안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70세 의 정학연에게 임금이 선비들에게 대우해주는 ‘가감역(假監役)’이라는 종9품의 벼슬을 내렸 습니다. 폐족에서 벗어나는 기쁨의 순간이 왔 습니다. 만나자고 오라고 해놓고도, 만나는 기 쁨보다 또다시 헤어질 슬픔에 마음 괴로워하 던 다산의 비애는 집안이 청족으로 바뀌면서 한 가닥의 한(恨)을 풀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 니다. 아들에 대한 간절한 아버지의 뜻은 반드 시실현되고만다는본보기이기도합니다. 뱚뱚만나는기쁨보다 뱚뱚헤어질슬픔이앞선다 (편지1통의전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캠퍼스도 없는 미네르 바 대학교라는, 세계에서 가장 입학하기 어려 운 대학이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을 다니던 학 생이 대량생산식 대학교육방법에 문제가 있다 고 생각하고 인공지능시대에 맞는 대학교를 만 들겠다고 창립했다.온라인으로만 수업을 진행 하는데도 세계혁신대학평가에서 1위로 선정되 었다.무엇 때문에 하버드나 MIT 등 쟁쟁한 대 학을제치고더우수한대학이되었을까? 미네르바대학에서는 교수가 학생을 가르치 지(instruct)않는다.인터넷 검색을 하면 무엇 이 든 알 수 있 으 니 , 공 부 는 학 생 들 이 스 스 로 하 고, 교수는 학생들 간의 토의를 도와주는 퍼실 리테이터(facilitator) 역할만 한다.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을 하기 전,미리 수업 내용을 공부 해오고, 수업에서는 공부해 온 것을 발표하고 상호토론을 한다. 모든 클래스는 원할한 토의 를 위해 18명을 넘기지 않으며 숙제와 시험은 존재하지 않고 발표, 과제수행, 프로젝트 등으 로 평가한다. 공부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스스로 찾아서 공 부해야 하기에 학습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편 이다. 미네르바대학의 두 번째 특징은 체험학습과 세계화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숙사에서 1년을 마친후 에 한국(서울) 인도(하이데라바드) 독일(베 를린) 아르헨티나(부에 노스아이레스) 영국(런 던) 대만(타이베이) 등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6 개국에서 한 학기씩 역 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온 라 인 수 업 외 에 인 턴 십 등도 하면서 글로벌 문화와현지화공부도하고있다. 미네르바대학의 입학은 특이하다. 미국 대 학들이 채택하고 있는 표준화점수(수능점수) 나 추천서 등을 전혀 받지 않으며,챌린지 통과 와 중고교시절의 성취(achievement)를 제출 받아 평가하고 합격시킨다. 한마디로 문제의 발견과 문제설계, 해법학습에 역점두는 입학 절차이고 학습과정이며, 문제해결력이 높은 학생 입학시켜 더 역량 있는 학생으로 만들어 내보내고있다. 미네르바대학에는 전공분야도 포괄적으로 5개밖에 없다. 예술과 인문학(Arts & Human ities), 경영학(Business), 컴퓨터과학(Comp utational Sciences), 자연과학(Natural Scie nces), 사회과학(Social Sciences)이 그것이 며 대학원 석사과정은 1개 분야, 의사결정 분 석학석사(Masterof Sciencein Decision An alysis) 뿐이다. 인공지능시대에는 융복합적 시야와 멀티플레이어적 역량을 요구하기에 시 대에 부응하는 통합적 전공이고 학습프로그램 이다. 우리나라 에서는 미네르바대학식으로 수업 을 진행하는 대학이나 중고등학교는 전무하 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급격히 발전하고 있 는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시대를 의식하고, 인구절벽문제와 세계화시대의 도래에 우리 초 중고학생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대한민국이 유 지될 수 있을까를 걱정한 세종로국정포럼 이사 장 박승주 박사가 인공지능시대에 부응하는 스 마트학습방법을 OutSchooling 차원에서 개발 하여현재확산시키고있다. 박승주 박사가 개발한 한국형 미네르바 스 쿨링(schooling)학습방법은스마트폰을핵심 적인 학습도구로 사용하기에, 인터넷과 와이 파이만 연결되면, 섬과 오지지역 어디에 살던 학생들은 모두가 1당100 영재가 될수 있는 미 네르바대학式 스마트학습방법이다. 박승주 박 사의 미네르바스쿨링 학습방법은, 현재의 초 중고 학교공부로는 다가오는 미래의 도전을 해쳐나가기가 미흡하니 미네르바스쿨링센터 를 통하여 학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의 스 마트학습을 격려해주어 인공지능시대 교육3.0 을 이루도록 해주고, 대학졸업후 취업파고도 해쳐나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식위주 교과 공부는 스마트폰 검색학습으로 미리 공부한후 스마트폰 프리젠테이션 방법으로 공부한 것을 발표하고 토의도 하도록 한다. 그리고 창의적 체험학습으로 디지털봉사활동, 4차산업혁명 기업탐방, 역할연기학습활동, 리더십훈련과 동아리캠프,국제펜팔을하도록한다. 인공지능시대초중고학교교육,미네르바스쿨링이 정답이다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영일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3)588-7300 FAX(053)581-0067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42612 대구달서구달구벌대로1221(이곡동538-2)성창B/D5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 시중(侍中) 강감찬(姜邯贊)은, 경술년(10 10,현종1) 거란이 처음 침입했을 때 여러 신 하들은 항복을 논의하였는데 홀로 파천(播 遷)하여 회복을 도모하자고 청하였고, 무오 년(1018) 거란이 재차 침입했을 때 상원수 (上元帥)로서 서도(西都)에 나가서 교전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기니, 10만의 강포한 적 들 중에 귀환한 자가 수천에 지나지 않았다. 거란이 전투에서 이처럼 심하게 패배한 적은 없었으며 시중보다 훌륭한 공을 세운 신하는 없었다. 그러나 개선한 뒤 곧바로 고로(告 老)하였고 임금이 친히 금화(金花) 여덟 가 지를 꽂아 주자 배사(拜謝)하며 감히 감당하 지 못하였으니, 공을 세운 것이 훌륭한 점일 뿐만이 아니라 고로한 것이 더욱 훌륭한 점 이다. 일흔 살에 치사(致仕)한 일은 고려 초 에이미 전례가 있었는데 벼슬살이의 즐거움 에 취해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은 모르 는자가어쩌면그리도많았단말인가. -이만도(李晩燾, 1842~1910), 븮향산문집(響山文 集)븯권8븮여사제강보단(麗史提綱補斷)븯 [해설]위는 이만도가 쓴 븮여사제강보단븯의 일부이다. 분량이 방대한 븮고려사븯의 요약본 이 유계(1607~1664)가 지은 븮여사제강븯이라 면, 그 책 중 일부에 붙인 저자의 평이 븮여사 제강보단븯이다. 이 부 분 은 일 종 의 사 평 (史 評 )으 로 고 려 역 사에대한저자의시각이담겨있다. 저자는 강감찬에 대해, 거란이 처음 침입 했을 때 화친하지 말고 일단 피한 뒤 훗날을 도모하자고 홀로 주장한 점, 재차 침입했을 때 직접 출정하여 모든 전투에서 승리해 적 군이 거의 전멸할 정도의 피해를 입힘으로써 거란이 처음 침입했을 때의 본인 주장을 증 명한점을먼저든다. 이러한 공훈은 임금이 황해도 금천(金川) 까지 직접 마중 나와 금화 여덟 가지를 꽂아 주었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물러났고 저자는 이를 더욱 훌륭한 점이라고 평하였다. 관직 에서 물러난 후 도성 남쪽에 별장을 짓고 만 년을 보냈는데, 당시에 일기가 화순하고 풍 년이 들어 온 나라가 평안하니, 사람들이 그 공을 모두 그에게 돌렸다고 했다. 당시 사람 들 또한 그가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물러나 만년을 보낸 모습을 훌륭하게 여긴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70세가 되면 벼슬에서 스 스로 물러난다는말이유가(儒家)의경서(經 書 )인 븮예 기 븯(禮 記 )에 실 려 있 고 고 려 초 기 에 이미그러한전례가있었지만권력에취해이 를이행했던사람은적었기때문이다.저자는 이러한 이유로 강감찬의 만년을 거론하였고 그렇지못한사람들을비판하였다. 븮여사제강보단븯에 나타난 저자의 고려 역 사에대한시각은대체로위와유사하다. 븮여사제강븯의 특정 기사를 거론하고 그 일 에대해자신의당위를견해로제시한다. 저자의 이러한 사고는 이미 흘러갔다고 가 벼이 생각하기 쉬운 과거에 대한 투철한 인 식이면서도 그가 처한 현실 상황과도 밀접하 게결부되어있는것으로보인다. 저자는 1866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 직을 역임하였는데, 1876년 집의로 있을 때 는, 일본과 맺은 병자수호조약을 목숨 걸고 반대한 최익현(崔益鉉)을 비호하다가 파직 되었다.안동에서 강학(講學)에 전념하던 18 95년에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일본에항거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 때는 을사 오적을처형해달라고상소하였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었을 때는 24일간 단 식하다가 순국하였다.국가가 위태로울 때마 다 저자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끊임없이 투쟁한 것이 다. 저자의 이러한 행적은 강감찬과 다른 듯 닮아 있다. 살았던 때는 달랐지만 양자 모두 국가의 운명을 위협하는 외세의 침략에 자신 의목숨을걸고싸웠다. 다만 시대와 상황이 달랐을 뿐이다. 국치 (國恥)의 날에 저자는 본인의 최후를 직감하 면서도 강감찬과 같은 만년을 바라지 않았을 까. 강감찬이 거란의 대군을 물리치고 치사를 청했던 시점과 저자가 국치의 울분을 품고 유명을 달리했던 때를 헤아려보면 모두 70세 전후의 나이였다. 옛적에 70세를 치사의 나 이로 규정하고 현대에 정년을 두어 퇴임할 시 기 를 정 한 이 유 는 여 러 가 지 가 있 겠 지 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쉬어야 할 시기라고 판 단한것으로보인다. 하지만 강감찬은 공을 이룬 뒤 물러났고 저자는 고령에도 음식을 끊다가 숨을 거두었 으니, 각자 자신이 지키던 가치를 버리지 않 고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강감 찬이 공을 이룬 뒤 물러나지 않고 그 힘으로 국정을 좌우했다면 우리는 그를 다르게 기억 하고있을지모른다. 침략해 오는 외세에 평생 동안 투쟁해 온 저자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국가의 치욕을 잊을 수 있었겠는가. 이른바 만절(晩節)을 잘지킨분들이라하겠다. 각계의 원로 인사가 특히 정치에 입문했다 가 오랫동안 쌓아왔던 명망을 잃는 경우를 요사이에종종보게된다. 무엇인가를 일관되게 쌓아온다는 것도 쉽 지 않지만 평생 쌓아왔던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출처(出處)란 참으 로어렵다는생각이든다. 자신이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 며 , 그 것 을 지 키 고 있 을 때 의 나 와 그 것 을 버 렸을 때의 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명확한인식이필요해보인다. /글쓴이 강만문(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 원) ※본 글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메일링서비스를 통해받은것입니다. 뱚고전산책 만년의절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