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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1월31일 월요일 8 (제181호) 기 획 창원시지부는 2011년 경남본부가 회관을 매입하여 이사하 기 전까지 경남본부를 대신하는 등 연륜과 함께 경남지역을 대 표하는 지부였다. 특히 1997년 박씨선원보를 발간하면서 창원 지역의 공직자와 소상공인 등을 아우르면서 지역의 성손들에 게자부심을심어주는역할을담당하기도했다. 그 연원을 보면 1963년 12월에 창원군 14개면 분회를 조직 창립하고초대회장에박칠용현종이취임했다. 197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창원면, 상남면, 웅 남면이 마산시 동부출장소로 개편 박동진 창원면 분회장이 명 맥을 이어왔으며,1981년 4월 1일 행정개편으로 인하여 창원시 가 발족됨으로써 여러 종친들과 협의하여 조직정비에 이르러 창원시지부를 재 창립하고 회장에 박창식 현종이 취임하여 운 영하던 중 총무 박유표 현종의 사망과 창원공단조성의 혼란 (混亂)으로 활성화가 되지 못하고 기능이 상실된 상태에 있던 중 뜻있는 종친들이 협심하여 재건하고 1990년 1월에 박성곤 회장 취임하고 1994년 4월 23일 정기총회에서 박한용 회장 취 임,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 행정개편으로 창원시 동면, 대산 면, 북면이 흡수되어 4월 21일 정기총회에서 창원시 27읍면동 분회를 결성 회장이 박창식 전 회장이 재 취임하였으나 얼마 안 되어 회장의 개인사정으로 사의를 표명하여 1996년 4월 3일 정기총회에서 박성곤 회장이 취임 박씨 선원보를 발간하면서 활성화를꾀하였다. 박씨선원보는 신라시조왕의 탄생에서부터 경명왕의 아들 8 대군을 비롯 창원지역 거주 관향조와 각 지파에 대한 소개 그 리고 500여 소상공인과 5,800여 성손들의 명부를 기록 지역의 성손들의큰자부심으로남는다. 1999년 4월 21일 정기총회에서 박홍식 전 회장을 재추대하 여 취임하고 2001년 5월 12일 박수용 회장, 2005년 5월 박용기 회장, 2007년 5월 박석호 회장(11대), 2008년 5월 박영록 회장, 2011년 5월 박영록 회장 재 추대, 2014년 4월 박재복 회장 취임 과 함께 여성회(초대회장 박나원)가 창립되었으며, 2017년 5 월 박성국 회장을 추대하여 취임하였으나 사정에 의해 박재복 전 회장의 소집으로 집행부를 새롭게 구성하는데 박양현 현종 이 임시회장으로 추대하였으나 극구 사양함으로써 2020년 2월 정기총회에서전임박재복회장을재추대하여지금에이른다. 창원시지부는 지역에 소재하는 운암서원과 선조의 큰 족적 이 남아 있어 타성에 비해 예(禮)를 중시하면서 숭조하고 애종 으로써성손들간의끈끈한친목을도모해왔다. 선조유적탐방과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종친기업 등 선진지 견학을 통해 견문을 넓히면서 한편으로는 육영에 몰두해 지역 을 이끌어가는 큰 인물들을 배출시켜 왔다.대표적으로 박완수 국회의원을 비롯 박종훈 도 교육감과 선출직 지방의원들을 다 수당선시킴으로서그결속력은대내외적으로인정받아왔다. 그리고 지역 특성상 단감과 시설하우스 주산지로 부족한 일 손 돕기에 나서면서 주변의 농가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여 종 친회목적을성실하게수행해왔다고할수있다. 특히SNS를통한 소통이다.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처럼느껴 진 번개모임을 수시로 가짐으로서 회원 모두가 스스럼없이 조 우하고있어눈여겨볼만하다. 창원지역의 토성은 박(朴)·황(黃)·공(孔)현(玄)의 4성(姓) 이 있다. 마을(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촌성(村姓)으로 구 (具)·정(丁)씨가있고,다른지방에서들어왔거나래접한래성 (來姓)으로 김(金)·허(許)·정(鄭)씨 등이 있다. 창원지역의 토성 중에 우리 박씨의 세력이 제일 커 박성을 중심으로 읍사 (邑司)가결정되었다고창원읍지는전하고있다. 그리고 박성(朴姓)의 중심은 사화에 정착한 밀성박씨 인당 공 후예이고,이후 경주박씨와 밀성대군 후예들이 타 지역에서 이거해와 래성(來姓)과 같이 지역에 거주하였으며, 창원을 본 관으로 하는 창원박씨는 조선 태조조에 흥양(興陽, 현 전남 고 흥)으로이거하였다. 조선조에 많은 명현이 배출되면서 朴姓의 위치는 확고해진 다.그대표적인인물은다음과같다. △ 박무열(朴武悅) 자는 은경(殷經) 호는 만취헌(晩翠軒)으 로 창원 정계인이다. 선조21년(1588) 무과에 등용되었고 벼슬 은 수문장으로 선조 임란시 적을 토벌한 공으로 뒷날 삼등훈에 녹하였다. △박문흥(朴文興) 조선때의 무인, 자는 문박(文博) 본관은 밀성인이니 숙종 25년 북면 무동리에서 박선길의 아들로 태어 났다.장성함에 따라 학문에 전념하는 한편 무예를 닦아 경종 2 년(1722) 마침내 무과에 급제하였다.그는 이듬해 벼슬길에 올 라 충순위부사과가 되었으나 당시 조정의 잦은 옥사에 염증을 느껴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평생 출세를 단념한채주경야독으로여생을마쳤다. △박신윤(朴身潤)밀성박씨인당공파창원사화인이다.자는 덕경(德卿)이고 호는 우곡(愚谷)이다. 현종2년(1661)에 태어 나 일찍부터 학문에 전념하였고 양친을 극진히 모셨다. 그의 1 0대조 영균(永均)은 고려 익대공신 판도판서 은산부원군으로 시호는 문헌(文憲)이었고, 증조는 홍정(弘貞)으로 선조때 임 란 일등공신으로 판결사를 지냈다. 아버지는 이경(而慶)의 자 는현보(賢甫)이며호는영헌(寧軒)이다. 숙종 23년(1697)적성(積城)여온(廬溫)재사(齋舍)를 새로 지어 여러 사우(士友)들과 함께 연회에 초청되어 강론도 하고 주연도 베풀어져 모든 사람들이 취하였으나 오직 그만 수저를 들지 않으니 노공(盧公)이 집안에 노모를 모시고 있음을 알고 특별히 먼저 봉대(封對)하였으니 염려 말고 음식 들기를 권유 하였으나 사양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노공 좌우를 둘러보 며 그의 효성을 칭찬하며 하인 한사람을 수행하여 귀가토록 하 였다. 귀가 도중 천지가 자욱하며 장대비가 쏟아져 냇물이 범 람하여 내를 건너기 어렵게 되자 하늘을 향해 탄식하여 말하기 를 “하늘이여 내 불효한 죄를 용서하소서”하고 통곡하니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홀연히 냇물이 끊기고 돌다리가 나타나 무 사히 돌아오게 되었다. 노공이 하인에게 이 사실을 듣고 말하 기를 “덕경(德卿)의 孝는 하늘이 내린 것이요, 하늘이 감동한 것도덕경의효성때문이다”고하였다. 이후 이름도 없던 이 내를 조갈천(早渴川)이라 이름하여 오 늘까지 전하고 있다.숙종24년(1698)38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 가자 고을의 사림들이 그의 효행과 학문을 우러러 받들어 조정 에 건의하여 운암사(雲巖祠)에 향사되었다. 운암사는 숙종 임 오년(1702)에 세워졌다가 뒤에 숙종 갑진년(1844) 도내 유림 들의 논의에 의해 운암서원으로 승호 되었다.숙종34년에 승훈 랑 호조좌랑에 증직되었다. 그리고 매년 음력 4월 25일에는 후 손들이모여다례(茶禮)를지낸다. △박기진(朴基珍) 밀성인으로 사화 후예이다. 자는 선극(善 極)호는 소계(小溪)로 현종 15년(1849)에 태어났다.일찍부터 학문에 열중하여 시례(詩禮)에 밝았으며 언행이 일치하고 자 기가 믿었던 일은 반드시 실천에 옮기는 강직한 성품을 지녔 다. 고을의 유림들이 추증하여 고종22년(1885) 중추원 주사를 거쳐좌수(座首)직을역임하였다. △박홍정(朴弘貞) 창원 사화인으로 자는 재숙(再淑)이며 호 는 의와(義窩)이다.우곡 박신윤의 증조부로 임란시 적을 토벌 한공로로삼등훈에녹하였다. △박시명(朴始明) 부모가 동시에 죽자 여막에 거(居)하면서 몹시 애통해 하고 3년 상을 마쳤다. 아침저녁으로 직접 음식을 올리고 출입할 때는 반드시 고하였다. 위에 보고되어 상과 벼 슬이내려졌다. △박정견(朴廷堅) 연산군때 단상법(短喪法)이 엄했다. 정견 은 부모의 상을 당해 3년상을 지내고 상이 끝난 뒤에도 아침 저 녁의예를폐하지않았다.조정에보고되어정려가내려졌다. 이밖에도 사마시에 오른 박진구(朴進九), 음사로 만호에 오 른 박진종(朴振宗),부사 박성유(朴聖由),첨사에 오른 박복용 (朴福龍),참봉박수홍(朴守洪)등이있다. 현세에 이르러 박종규 경호실장,박재규 통일부장관(경남대 총장),국회의원 박재규(현 박재복 회장 아우),박성,박완수호 (현 지부 자문위원), 박한일 해양대 총장 등이 있으며, 광역의 원은 박한석,박해영,박차봉,박판도 의원등이 있다.그리고 서 기관으로 공직에서 퇴임후 종사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현재 창원시지부의 정신적 지주로 종원들을 독려하고 있는 박영록 고문은많은사람들로부터추앙을받고있다. 창원시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공단도시 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그럼에도 종친회가 명맥 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숭조심과 애종으로 위선 사 업에매진한종원들이있었기에가능한것이라할수있다. 현 박재복 회장은 50여 년 동안 종사에 매진하면서 대산면 분회 활성화를 이끌었으며,그 여력은 이제 창원시지부 활성화 에 대한 숙제를 안고 있다. 지난 연말 대한민국 자랑스런 밀성 인 대상(육영부문)을 수상한바 있는 박 회장은 코로나 19의 엄 중함속에서 종친회마저 침체의 길로 접어든 것 아닌가 걱정한 다. 종친회 특성상 자주 만나야 하는데 만날 수 없음에 속이 까 맣게 타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창원시종친회를 기억하고 함 께하여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고 박영록, 박문호 박양 현 고문, 자문위원으로 국정에도 바쁜 가운데 최선을 다해준 박완수(국회의원), 박종훈 도교육감, 부회장 박순곤, 전임 사 무국장을 역임한 박외철,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창원시지부 사무국장 박윤택, 종중 일에 미쳤다 할 수 있는 사무국장 박영 진, 여성이사로서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선소리산타령) 이 수자이면서 지도교사로 국악발전에 기여하며 종친회 여성이 사로 헌신한 박현지, 젊은 청년으로 솔선하고 있는 박재완 등 많은사람들의헌신적인노력에감사하고있다. 창원시지부는 이제 많은 성손들을 기다리고 있다. 더 많은 후손들이찾기를기대해본다. 뱚시군지부를가다 경남창원시지부 2019년선진지견학(산청동명식품) 경남에서가장역동적으로 운영중인산청군지부 회 관을찾았다. 창원은 한반도의동남단 경상남도의중부남단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울산,부산,사천을연결하는동남임해중화학공업지역 내의대규모기계공업단지로서경남중부지역산업경제의중추 역할을담당하고있다. 창원시는 부산광역시와 함께 한반도의 동남단에 위치하고 있 으며, 남쪽으로는 마산만과 진해만이 위치하고 있고 북쪽으로 는함안과밀양,동쪽으로는부산과김해,서쪽으로는고성군이 위치하고있다. 창원이라는 지명은 조선 태종8년(1408)에 의창과 회원 두 현을 합하면서 의창의창(昌)회원의원(原)의두 글자를 따 창원이라 하였으며, 1914년 4월 1일 마산부가 분할되었고, 1955년 9월 1 일 진해시가 분리됨에 따라 이후 우리 종친회도 마산과 진해에 각각독립적인종친조직이발족되었다. 2010년7월1일창원시,마산시,진해시의통합으로창원시가출 범되어 의창구, 성산구,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진해구로 개 편되었으나 우리 종친회는 아직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해 시는 종친조직이 해체되고 마산시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며, 창원시또한시내동분회조직은와해되고창원시대산면,북면, 동읍분회가운영되고있으며,지부는현재 박재복회장과박영 진 사무국장 체제로 공업도시 창원에서 성씨문화를 이끌며 마 산과 진해를 함께 아우르는 통합종친회를 구상하고 있어 소개 해 본 다 . 창원시지부연혁 창원시지부는 박재복 회장(右)과 박영진 사무국장이 수시 출근하여 업무 를살피고있다. 2014년여성회창립 창원시지부활동 지난해 12월 자랑스런밀성인대상을 수상한 박재복 회장을 축하하기위해 창원시지부 종친들이 함께 모였다. 창원시 종친회는 이처럼 회원들의 소 소한 일이라도함께 나누고있어돋보인다. 창원지역토성(土姓)박씨 맺음말 회장박재복 부회장박순곤 감사박외철 감사박윤택 여성이사박현지 사무국장박영진 창원시지부055-297-8843 사무국장010-8500-2206 임 인 년 새 해 복 많 이 받 으 세 요 어 둠 은 동 트 기 전 가 장 어 둡 지 만 지 금 이 순 간 이 지 나 고 나 면 기 다 리 던 밝 은 아 침 이 옵 니 다 ° 코 로 나 함 께 이 겨 축 복 받 은 한 해 가 되 시 길 바 라 오 며 종 보 한 빛 신 문 의 창 간 十 五 주 년 우 리 가 함 께 합 니 다 ° 뷛 사 뷝 신 라 숭 덕 전 릉 참 봉 협 의 회 拜 고 문 박 의 규 박 희 준 박 장 환 박 진 국 박 윤 도 이 사 장 박 철 규 부 이 사 장 박 인 석 박 병 준 이 사 박 흥 식 박 옥 규 박 진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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