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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11월30일 화요일 8 (제179호) 관향조 종친회 음성박씨 청계종중 회관이 착공 4개월 만인 지난 12일 성대 한 준공식을 가졌다. 이날 준공식은 관내 유관기관장을 비롯 한 내외빈이 참석 축하하였으며, 참석한 종원들은 회관 준공 을계기로큰도약을위한기대감에흥분을감추지못했다. 근태종중회장은이날준공기념사를통해우리청계종중은 지역의 토반으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왔다고 말하고 이 제 회관 준공을 계기로 우리는 신라왕손으로서의 더욱더 모 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착공부터 준공에 이르 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 사를전했다. 청계종중 회관은 청계동 764-9번지 소재 연면적 3,152㎡에 지상 3층 콘크리드 구조로 연건평 199.37㎡이며,지난 6월 2일 착공하여 10월 30일 공사를 마무리하고 준공검사 등을 거쳤 다. 1층은 일반음식점 용도이고, 2층과 3층은 사무실로 2층은 종중사무실로사용되고나머지는임대할예정이다. 음성박씨 사인공파 연원은 조선초 지극한 정성으로 신하의 절개를 다하여 세상에 없는 공을 세우고 끝없는 아름다움을 협찬한 박순(함흥차사)의 손자 사인공(휘 숙달)으로부터 시 작된다. 사인공은 1462년 문과급제하여 사헌부 장령, 의정부 사인, 사헌부 집의를 역임하였으며 예조참의에 증직 되었으 며, 7세손 휘 항구(恒龜) 선조께서 입향 아들 정태(廷泰), 정 일(廷一),정필(廷弼),정선(廷善),정의(廷義)등 5형제를 둠 으로서크게번성하였다. 특히선조님이물려준종토를잘관리보전하여임대수익으 로 종원들의 복지증진과 육영사업에 활용하고 있어 종원들의 참여도가높다. 특히 지난 2006년 대대 적인 묘역을 정비하고 사 인재를 신축하여 위패를 봉안, 장묘문화를 개선하 는 등 적극적인 위선사업 과 종원간 친목을 도모하 며 남다른 유대감을 형성 하고 있어 여타 종중의 선 망 의 대 상 이 되 고 있 다. 특히 청송현감과 승 정원 좌승지를 역임한 사 인공 백부(휘 소)의 후손 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청 계동 선산마저 조선조 한명회의 선산으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넘어가 묘소마저 찾지 못하다 몇 년전 집행부 임원의 현몽으로 찾아 이장하고 계속하여 제향을 받들어 오고 있어 이날 제향에도 후손들의 행방이라도 찾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함께빌기도하였다. 한편 지난 18일(음10.4) 사인재에서 사인공(휘 叔達)의 배 (配) 횡성윤씨를 비롯한 위패가 봉안된 24위(位) 선조(先祖) 시향이 재윤, 재활, 재군 현종이 각각 헌작하고 근태 회장의 독축으로엄숙봉행되었다. 음성박씨청계종중회관준공및사인재시향 봉행 연건평199.37㎡3층콘크리트구조븣뷺더큰도약을위한계기될것뷻 음성박씨청계종중회관이 착공 4개월만에 완공 지난 12일 준공식을갖 고새롭게출발했다. 지난 18일가진사인재추향에참례한 종원들이 기념촬영을하고있다. 음성박씨청계종중회관, 연면적 3,152㎡ 에 지상 3층 콘크리드 구조로 연건평 19 9.37㎡이다. 2018년 복설이후 꾸준히 강학의 공간으로 자리잡아가는 벽 진서원이 지난 19일 오전 성련 전 회장의 집례로 상배 회장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 정체 현종이 독축하였으며, 이어 죽산 박씨 임곡문중의 봉용 총무, 희진 종친회 부회장이 순서대로 헌작하는 등 30여분에 걸쳐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질서 정연 하게 봉행된 가운데 봉작 종대,봉로 희은, 사준 재호, 찬인 도 연 현종이 각각 맡아 제례를 도왔다.이날 제례에는 죽산박씨 임곡문중의 형엽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참례하면서 죽성대 군의후예로서정을돈독히하였다. 상배 회장은 제향 후 가진 음복에서 함께 해준 박형엽 회장 님과 임원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정을 쌓아 나가자고 말하고 서원 본래의 취지가 강학인데 종 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 덕분에 벽진서원은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며 종원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며 적극적인성원을당부했다. 형엽죽산박씨임곡문중회장은같은지역에서같은뿌리로 살면서 이제야 찾아왔다고 말하고 임곡문중은 입향 500여년 을 보내오는 동안 지역의 토반으로 성장하였는데 음성박씨 정승공파 문중 또한 임곡문중보다 더 빠른 시기에 입향 세거 하면서 모범을 보이고 있어 배울점이 많다며 지도편달을 당 부했다. 죽산박씨 임곡문의 이번 참례는 지난 1월 28일 음성박씨 정 승공파 종중의 상배 회장과 이채 직전 회장이 방문하면서 교 류가이어졌다. 벽진서원은 1602년 회재 박광옥 선생의 학덕과 절의정신을 추모한 후학들이 광주 서구 벽진동에 벽진서원을 창건하여 향사(享祀)와 교학(敎學)에 힘써왔으나 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훼철되었다. 이에 후손들이 1927년에 운리영당(雲裏影堂)을 창건해 향 사하였는데 도시개발로 선생의 묘소와 영당이 편입되어, 199 9년에 묘소를 이장하고 그 옆인 서구 풍암동 769-1번지에 운 리사(雲裏祠)를 종중에서 복설하고 뜻있는 유림들과 학자들 그리고 사림이 벽진서원위패봉안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곳을 벽진서원이라 하고 유림봉사(儒林奉祀)를 결정하면서 선생의 위패를 모신 운리사를 의열사로, 학문을 강학하는 강 당의 중앙에 벽진서원, 동쪽에 모현당(慕賢堂), 서쪽에 숭본 당(崇本堂)이라 편액 하여, 훼철 150년 만에 복설되었으며, 유집목판遺集木版(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유물을 소장한시설들이있다. 그리고 춘향은 지역의 유림주관,추향은 종중주관으로 연 2 회 향사를 봉행하며 회재 선생의 높은 충정과 애민정신을 기 리고있다. 회재 박광옥 선생은 1526년 1월 26일 광주광역시시 서구 매 월동 회산에서 성균관 사예인 곤(鯤)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본관은음성(陰城)이고자는경원(景瑗)이며회재는호이다. 44세에 학행(學行)으로 내시교관을 지내고 49세에 운봉현 감에 제수되었으며 별시(別試)에 합격해 예조정랑 사헌부지 평과 성절사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영광군수 밀양부 사등을역임한후향리에돌아와개산송당(蓋山松堂)을짓고 후진양성에 매진했다. 1592년 선생이 67세 때 임진왜란을 당 해 전국이 왜적에게 유린되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모집해 김천일과 고경명에게 출전케 하 여 큰 성과를 올리게 하고 뒤에서 의병과 군량을 확보하여 그 뒷바라지를 도맡았다. 광주목사 권율(權慄)이 천 여 명의 광 주군사로 이치대첩을 거두고, 이어서 전라순찰사가 되어 만 여 명의 호남의병을 이끌고 북진할 때 군사와 군량을 공급했 으며, 대흥사의 승장 처영(處英)을 함께 참여시켜 행주대첩 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한 것도 선생의 역할이었다.선 생은 67세의 고령에도 나주목사에 취임하여 국난을 극복하는 데 전념하다가 병환으로 사임하고 1593년 10월 26일에 별세 했다. 회재 선생의 삶은 애민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역주민 의 기근을 해소하기 위해 개산방죽을 막아 농용수를 제공하 면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으며, 지역의 문인들과 함 께하면 예향광주의 발전적 문화 환경의 기반을 세웠으며, 광 주향교 향약을 재정하는 등 지역주민의 순화에도 심혈을 기 울여앞장섰다. 한편 이날 오전 서원 뒤편의 묘원에서 성균생원 휘 계양 선 조를 비롯한 이하 선조 제향은 성련 전 회장의 집례로 음성박 씨대종회 태근 회장, 재생 현종, 귀식 전 회장이 각각 헌작하 고점채현종의독축으로봉행되었다. 벽진서원추향봉행 죽산박씨임곡문중임원진참례 강학공간으로거듭나는데 종원들의관심과성원일조(一助) 븮약무호남시무국가븯 즉곡창지대인호남이 없으면전쟁에서승리할수없 어 나라가 없다며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 등을 조달한 회재 박광옥 선행을추모하는추향제례가지난 19일봉행되었다. 벽진서원의의열사에서봉행된회재선생추향에독축하고있다. 벽진서원향사전뒤편의묘역에서봉행된시향제관이함께하고있다. 춘천박씨선기공종친회(회장: 21세손 박상광)는 11월7일(음 10월3일)강원도 춘천시 퇴계동 우미산 선산에 있는 사당 崇敬祠에서 종친회 임원들만 참석한 가 운데추향시제를봉행하였다. 상광회장은 시제 후 민화(51년생) 민 화(55년생) 민군(56년생)종친에게 장 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부부은수저세트 를 경로기념품으로 전달하였다. 경로기 념품은 65세 이상 종친에게 수여하는 것 으로 올해까지 50명에게 수여했다.후손 육영사업으로 대학생 승현에게 장학금 1백만원을 전달하였으며 현재까지 장학 금 수혜자는 96명에 이른다. 지난해 10 월에 아들(도화)을 낳은 제현종친에게 출산장려금 3백만원을 전달했다. 춘천 박씨선기공종친회는 작년부터 ‘자랑스 런 춘천인상’을 제정하여 상광회장은 부회장 경환 종친이 모든 종친회원을 대 신하여 상패를 전달하고 회장은 제무이 사 민군과 회계이사 주모에게 상패를 수 여하였다. 표창내용은 ‘ 귀하께서는 춘 천박씨선기공종친회 회장으로서 종친 회 활성화와 문중발전에 크게 기여하셨 습니다.이에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 며 그 공을 기리고자 종원들의 마음을 담아 ’자랑스런 춘천인상‘을 드립니다. 2021년(춘천박씨紀元795년) 11월7일 春川朴氏善寄公宗親會會員一同’이다. 춘천박씨는 강원도 토 호성씨 50여 중 수부도시 춘천을 관향으로 하는 유일한 씨족으로 혁거세 시조님의 29세손이신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아홉 왕자 중 일 곱째이신 강남대군(諱 彦智)의 11세손 문의공(諱 恒 :1227 ~ 1281)의 후손으로 794년 연면히 대를 이어 오늘에 이른다. 조선 최고의 성현이신 퇴계 이황 선생의 어머니가 춘천박씨인 것을 춘천인들은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지난 2019년 추분일에는 임원들이 경주 시조왕릉 추 향대제에 참례하고 돌아오는 길에 안동 에 들려 춘천박씨할머니 묘소에 참배하 였다. /박민군명예기자(춘천박씨22세손) 춘천박씨선기공종중추향봉행 숭경사(崇敬祠)븣경로기념품·장학금·출산장려금지급및자랑스런춘천인상수 여 상광 회장(左)이 주모 회계이사에게 ‘자랑스런 춘천인상’을전달하고함께하고있다. 입향 385년의 오랜 세거지 진주 시 대곡면 기정리 에 재사(齋舍) 오 계재가 후손들의 정성으로 아름답 고 웅장한 모습으 로 새롭게 태어나 지난 14일(음10.1 0)낙성식을가졌다. 이날 낙성식에는 졸당공파 박종식 감 사(진주시유도회장)을 비롯한 상급종 친회 임원진과 후손, 그리고 지역 주민 등이 참여 축하와 함께 축제의 시간 속 에 만제 회장은 처음 재건축에 뜻을 두 었을 때만 해도 일부 찬성과 일부 우려 의 목소리가 공존했으나 추진위원장을 비롯한 뜻있는 종원들의 각별한 노력으 로 오늘의 이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말 하고 이어 종원들의 노고에 힘입어 미풍 양속의 제례를 치를 수 있게 되어 참으 로 큰 기쁨이라며 종원 여러분에게 감사 의 인사를 전하고 도목수 김대용, 임하 서원 노재일 원장 감사의 선물을 전달했 다. 이어 졸당공파 대종회 종도 회장은 종 식 감사가 대독한 축사를 통해 오늘 낙 성식을 갖는 오계재는 후손 모두가 선조 의 추모와 단합의 장소이며, 후손에게 효를 높이 찬송하고자 하는 산실로서 매 우 귀중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볼수 있으며 효의 문화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의 정신적 지주이자 소중한 자산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이런 뜻에서 오늘의 오계재 낙성식은 우리 사회에서 희박해져 가는 븮효의 정신븯과 븮인간성 회복븯의 명제를 되새기게 하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고전했다. 오계재는 후손들이 의지를 모아 선대 조의 인덕(仁德)을 기리고 후손의 영화 와 발전을 위해 1987년 농가주택을 구입 개 조 하 여 지 금 까 지 재 사 (齋 舍 ) 로 사 용 해 왔으나 협소하고 퇴락한 재사(齋舍) 는 세월을 이기지 못함에 따라 2018년 1 1월 재실건립에 뜻을 모아 추진위를 발 족하여 고결하고 정성어린 성금을 모아 2020년 4월 구옥을 허물고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작와가 건평 15평으로 재건축 을 시작하여 동년 5월 24일 상량을 올리 고 이날 낙성식을 갖게 되었다. 특히 만 제 회장은 상당액을 쾌척(快擲)함으로 서 종원들의 피땀어린 헌성(獻誠) 의지 를 태우는 계기가 되기 되어 오예재 낙 성을이루어냈다. 만제 회장은 탁월한 추진력과 성실을 기반으로 철도 관련기자재와 배관 관련 사업을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켜 고용 창 출과 지역 및 고향발전에 이바지하고 있 다. 오계공 종중은 밀성박씨 졸당공의 7 대손 휘 이도(而睹) 公이 문호를 열었 다. 공의 자는 자이(子仁) 호는 오음재 (五音齋) 또는 오계(梧溪)이고 관(官) 부호군으로 인조4년 병인(丙寅, 1626 년)에 태어났다. 용모가 준수하고 총명 하여 지기(志氣)가 뛰어났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모님을 모시고 합천 가수로부터 진양 (현 진주)동쪽 오 음산에 피신하여 산 아래에 보를 만들어 채전을 일구어 부모를 극진하게 봉양하 여 향리에서는 지금도 은신하였던 오음 산을 박 도령산이라 하고, 난이 끝난 이 후 수 칸의 집을 지어 원근의 학자들이 강학토록하였으며,불철주야성리학연 구에 매진하였다. 어버이가 돌아가시자 고례(古禮)에 따라 슬픔을 다했으며 려 묘3년을지킨효자이다. 오계공의 아버지 팔우당공(휘 현)은 효우가 뛰어나고, 문강공(文康公) 정동 계(鄭桐溪)의 문인으로 당대의 석학들 과 도의지교 하였으며, 조부 악견 선생 의 휘는 서구, 악견은 아호이다. 김해 창 원교수를역임하였으며,행의가수정처 럼 맑아 친상에 고례 따랐으며, 승중(아 버지 복을 입은 상주)에 할아버지가 돌 아가시고 이어 할아버지 어머니 등의 시 묘 세월이 어느덧 40세 맞았다. 또 임란 에 창의하여 곽 망우당 진영에서 큰 공 을 세우는 등 악견공과 팔우당공의 기록 이합천읍지에전해진다. 밀성박씨오계재(梧溪齋)낙성식가 져 종원들헌상빛나븣위패봉안시설갖추는등실용적공간구성 합천에서진주에입향효를다하고성리학을탐구해온 오계공의재사오계재가지난 14일낙성식을 가졌다. 박만제회장 오계재전경. 오계재 내부, 오계공 이하 선조의 위패를 봉안 하고 합동제례공간을 만들어 재실의 효율성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