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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9월30일 목요일 3 (제177호) 광역시도본부 및 시군지부 충남본부(회장 종량븡 사진 ) 는 지난 6일자 서신을 통해 코 로나19로인해정기총회및하 계총회를 부득이 무기한 연기 할 수 밖에 없음을 서면으로 고지했다. 대신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 1 9 ’ 괴 질 이 온 세 상 을 공 포 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코로 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현실 이 매우 안타깝다며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지만 이 어려운 난국을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것이라며 위로의 뜻을전했다. 그리고 총회를 코로나 정국이 진정 될 때까지 미루 는 수 밖 에 없 음 을 고 지 하 고 널 리 양 지 하 여 줄 것 과 도 본부 운영에 핵심인 회비 납부를 당부하고, 23일 시조 대왕 추향대제가 간소하게 치러지게 되어 각자 현명하 게대처하여줄것을고지했다. 뱚뱚오릉보존회 충남본부 뱚뱚정총븡하계총회 무기한 연기 코로나19진정될때까지 문학의 3대 시성으로 손꼽히는 노계 박인로 선생(1561~1642)의 문학과 감성 을 느껴볼 수 있는 인문학강좌가 지난 4 일 개강하여 11월 27일까지 3개월에 걸 쳐진행된다. 매주 토븡일요일마다 각 4회에 걸쳐 진 행되는 븮인문학 강좌 및 노계 유적지 탐 방븯은 전븡현직 교수와 분야별 전문강사 등 7명을 초청해 △사제곡의 배경 △상 사곡의 재해석 △권주가의 재해석 △노 계시조의세계 △선상탄 해설 △입암29 곡 해 설 △노 계 가 만 난 사 람 들 △ 노 계 가 사의 특성 △노계 한문학의 실상과 성격 △노계의 충효 의식과 행동 △인간다움 과 노계의 오륜가 △노계의 도학적 꿈꾸 는 세상 △독락당의 내용과 도학적 미학 △노계문학의 창작현장 △소유정가의 창작현장 △노계가의 창작현장 △노계 의 도학적 삶과 독락당의 의의 △노계의 교유관계 △노계문학의 실상과 성격 △ 노계박인로의 시조와 입암 △노계 입암 시가의 창작배경 △노계박인로 입암 시 가의 창작의식 △노계 박인로의 생애 등 노계 가사의 특성과사상 등을 소개하고 주변 유적지를 둘러보며 생애 발자취를 재조명해준다. 그리고 븮노계 따라 떠나는 감성 문학 기행 및 유적지 답사븯는 3대 시인들의 문학기행으로 10월과 11월 당일 코스(2 회)와 1박2일 코스(1회)로 나눠 실시하 는유적지답사프로그램이다. 각 프로그램은 코로나19 예방차원에 서 참가인원 제한과함께 탄력적으로 운 영되기때문에사전예약이필요하며,매 회 차 강좌내용이 다르므로 1팀당 최대 3회까지연장신청이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노계문학관(054-330 -6548)으로문의하면된다. 노계 박인로(朴仁老, 1561년~1642년) 선생은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더불 어 한국가사문학의 3대 시성으로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盧溪)·무하옹 (無何翁)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영천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시 에뛰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자 의병장 정세아(鄭世 雅)의 휘하에서 별시위가 되어 왜군을 무찔렀다. 이어 수군절도사 성윤문(成允文)에게 발탁 되어 그 막하로 종군하였고, 1598년 왜 군이 퇴각할 당시 사졸(士卒)들의 노고 를 위 로 하 기 위 해 가 사 븮 태 평 사 븯 ( 太 平 司)를 지었다. 이듬해인 1599년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守門將)·선전관을 지내고 이어 조라포(助羅浦) 수군만호 로 부임하여 군사력 배양을 꾀하고 선 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뒤에 사직하고, 고향에 은거하며 독서와 시 작(詩作)에 전심하여 많은 걸작을 남겼 다. 1630년(인조 8) 노인직(老人職)으 로용양위부호군이되었다. 박인로가 남긴 중요한 작품으로는,조 홍시가, 누항사, 선상탄, 사제곡, 영남 가, 노계가, 입암별곡, 소유정가, 노계집 등이있으며,영천의도계서원에배향되 고 노계집판목(蘆溪集板木)이 유형문 화재제68호로지정되었다. /자료제공노계박인로기념사업회박영환사 무국장 노계문학관‘가을날의인문학강좌’이 어져 노계문학관-경북 영천시북안면신평탑골길93-33 노계 박인로 선생의 충효사상을 재조명하고새로운 문화관광자원화를 위해 영천시가 지난 2013년부터 영천시 북안면 신평탑골 길 일대 27,427㎡부지 에36억원의사업비를들여 지난 2018년개관했다. 참가대상경북도민300명,매회차강좌내용이다르므로1팀당최대3회까지연장신 청가능 코로나19의 제4차 대유행 속에서도 청도군청년회(회장 종 우)의 추원보본의 정성은 막지 못한 듯 하다. 지난 달 27일 실 시된 전(傳) 태사공 묘역 벌초와 제향에 청도지역 청년들과 원로 30여명이 참석하는 등 시종일관 따뜻한 애종과 숭조사 상을엿볼수있었다. 이날행사는당초방역상황을고려하여참여를자제하여줄 것을 고지하였음에도 아침일찍 많은 청년들이 참여하였으며, 특히부산에거주하는박순필(81세)현종과청도각남의박원 현(86세) 현종은 이제야 조상님 뵐 면목이 선다며 안도하며 청년들을격려한가운데벌초가이어졌다. 벌초후에는사회적거리두기를실천한가운데각자자기소 개와 소감을 발표한 가운데 대분의 참가자들이 앞으로도 계 속 참여의 뜻을 밝히며 서로를 격려한 가운데 종우 회장은 인 사말을 통해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참석해주어 감사 하다고 말하고 무엇인가 구심점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처음 시 도 한 것 이 5 회 째 를 맞 으 면 서 그 의 미 를 찾 을 수 있 을 것 같 다 고 말하고 회원 상호간에 상부상조하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 란다고말했다. 오릉보존회 청도군지부 동희 지부장은 일기도 고르지 않은 가운데 많이 와주셔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종친회장으로 서 항상 청년들에게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어른들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단합을 이루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청도 지역 대성이면서 되는 것이 없었는데 이제부터라도 답합하여 우리가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수식어가 뒤따를 수 있도록 하자며단합을강조했다. 박권현도의원은오늘벌초에참여하면서 이제나도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은 무거운데 발걸음은 가벼움 을 느꼈다며 전통문화 계승발전에 조금 소홀 한 점이 있지 않 았나 생각 해 보고 향후에는 최선 다하는 모습으로 여러분 곁 에서겠다는각오를다졌다. 전(傳) 태사공 묘역은 1550년에서 1560년대 사이에 발행된 밀성박씨화산세고븯(密城朴氏花山世家), ‘송재추선록븯(松齋追 先錄)은 태사공을 비롯한 두 아드님 휘 효신(孝臣)·의신(義 臣)의 유지가 ‘밀주풍각화산븯(密州豊角花山)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동안 각 문중에서는 실묘 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박위출 전 면장을 비롯한 청도지역 어른들과 박윤제 문화원 장이 나서 찾게 되었다.묘역은 수차례에 걸쳐 도굴을 당했고, 석물은파헤쳐져있었음에도봉분의형태는그대로남았다. 봉분은 가로 4.2m, 세로 6.3m전형적인 고려 양식의 방형묘 (方形墓)이고, 도굴범들이 남기고 간 숟가락과 젓가락 1벌이 당시의생활상을대변해주고있다. 특히 묘소가 소재하고 있는 임야가 대대로 박문의 소유이 다. 이에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공부상 정리를 추진중에 있기 도하다. 태사공(太師公) 휘 언부(彦孚)은 밀성대 군의 8세이다. 고 려 문종(1047년 丁亥) 때 문과에 급제하여 최충과 함께 태사 (太師)를 지냈고 중서령 문하시중 도평의사를 역임하였으며 밀성부원군으로피봉되었다. 태사공은 아들을 둘 두었는데 맏이는 효신(孝臣)차는 의신 (義臣)이다.고려 인종은 양 형제를 효의양신(孝義兩臣)또는 고려주석(高麗柱石)이라 부르고 동방대성(東方大姓)이란 어 필넉자를하사해후손들은자긍심을갖기도한다. 이에 이날 벌초에 참여한 밀직부원군의 후손 000는 소장하 고 있는 자료를 가지고 현재 토지의 현황과 왜 우리가 동방대 성인가에대해설명하여청년들의보학증진에도힘을쏟았다. 한편 이날 벌초후에 가진 제향에는 동희 대종친회장, 부산 에서 참여한 순필 현종, 종우 청년회장 순으로 헌작하고 이서 훈령서원 희범 유사의 독축으로 이어졌으며, 옥순 여성부회 장이함께하며진설을도와행사가더욱빛났다. /박상섭 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청도군청년회‘전(傳)태사공’묘역 벌초 청도군청년회회원30여명이지난달27일전(傳)태사공묘역을벌초하고함께하고있다.벌초는매년7월27일실시한다. 벌초후가진제향에동희 종친회장이 헌작하고희범 축관의독축으로 이 어졌다. 태사공 묘역벌초에는 주변의 무연고 묘소 벌초도 함께하면서주변인들 의칭송이 뒤따른다. 청년들의구심점을찾기위해묘소벌초시작븣뷺좋은일만이어질것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