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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21년 7월 31일 (음 6월 22일) 토요일(신라기원 2078년) 2007년1월24일창간 제175호 12면(월간)뱚 고객에게븮信友븯같은 기업으로다가서는븮신우수출포장 븯 1999년 설립,고객의 상품이 뷺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뷻 최선을다하겠습니다 신우수출포장은 대구 경북권 100여군데업체의 수출을책임지고 있는우수한기업입니다. 대한민국1등수출업체 신우수출포장 대구광역시달서구성서서로270 TEL:(053)591-0213,0013/FAX:591-0214 대표박재한밀성박씨전국청년회고문(제6대회장) 아 산 지 역 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고 많은 후학을 길러내 아산지역 최초 의 서원인 인산 서원에 배향된 잠야 박지계 선 생을 재조명하 는 학술대회가 지난 25일 오후 1시부터 아산시 와 함양박씨 잠 야 공 파 종 친 회 (회장 면용)가 주최하고 순천 향대 아산학연 구소가 역사문 화학회와 공동 으로 주관하여 온양제일호텔에서 븮인산 서 원 및 배 향 인 물 재 조 명 -잠 야 박 지 계 를중심으로븯를주제로있었다. 이날 대회는 줌 화상회의와 유튜브로 생중계되며 현장이 아닌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참여를 유도해 관심을 모은 가운 데 1시부터 참여등록과 기념식에 이어 2 시부터 순천향대학교 김기승 교수의 ‘아산 유학의 맥락과 잠야 박지계 선생’ 기조강연에서아산의유학은맹희도,표 연말, 홍가신, 이순신, 박지계, 조익, 조 상우, 이간, 임현회로 이어졌고, 특히 박 지계, 조익, 조상우는 17세기 아산 유학 진흥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 이중 박지 계는 아산 유학 진흥의 중심이 되었기에 잠야선생과 관련한 기념사업이 가장 시 급하다고언급했다. 기조강연에 이어 △김일환 호서대 교 수의 ‘잠야 박지계의 삶과 행적연구’에 서 박 지 계 는 1 7 세 기 아 산 유 학 의 형 성 에 초석을놓은인물이며아산의지역정체 성을 규명하기 위한매우 중요한 인물이 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아산에 남겨진 박지계의 자취를 추적해 그의 도학적 삶 의모습을밝혔다. △한국전통문화대학 무형유산학과 최 영 성 교 수 의 ‘잠 야 박 지 계 의 생 애 와 학문정신, 구시(求是)·본실(本實) 정신 을 중 심 으 로 ’를 통 해 박 지 계 는 주 자 학 에 충실했던 학자였으며 진리 앞에서 편 견은 금물이라는 사고를 가진 학자라고 평가하고,그의삶과학문을조명했다. △성균관대학교 안미경 초빙교수의 ‘잠야 박지계의 문집의 간행경위와 서 지 적 인 특 징 ’에 관 한 발 표 에 서 박 지 계 문집인 '잠야선생집'이 사후 130년이나 지나서 간행되기까지 어떠한 사람들이 어떠한 인연으로 편집과 간행에 참여했 는지 고찰했다. 더불어 조선 후기 문집 간행의 출판문화 속에서 교서관 활자 이 용이 어떠한 의미를지니고 있는지에 대 해서도살펴보았다. △공주대학교 이해준 명예교수의 ‘아 산 인산서원과 잠야 박지계’ 순으로의 발표를통해인산서원터에는건물성격 별 로 몇 개 의 단 으 로 나 눈 흔 적 이 있 으 며 초석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등 서원 터가 이처럼 완전하게 남아 있는 사례는 드물다고 설명하고 하루빨리 유적의 기 초 발굴조사를 통해원형을 파악하고 이 후 체계적으로 복원할 방향을 다양하게 제시하면서후손들의역할을강조했다. 이같이 4명의 발표에 대해 이근호 충 남대학교교수,손세제자암김구선생기 념사업회이사, 박용만 한국학중앙연구 원 수석연구원, 천경석 아산향토사연구 회장이 토론자로 나서 박동성 좌장의 진 행으로 당초 오후 6시 마감을 넘기면서 활발한토론이이어졌다. 인산서원은 1610년 아산지역에 최초 로 설립된 서원이라는 의미와 함께 아산 지역과 관련된 인물인 기준, 이지함, 홍 가신, 이덕민, 박지계 등이 배향돼 역사 적 의미를 더하고 있으며, 잠야 박지계 선생은 도학을 강론하며 학문에 전념, 아산에서 수많은 후학을 양성한 조선 중 기의 대표학자이다.한편 이날 기념식에 서는 박동성(밀성인,지족당공 后)순천 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 소장은 인사말 에서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아산지역 의 문화자원 발굴과 지역연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감 사드린다”고말했다. 박면용 함양박씨 잠야공파종친회장 은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인산서원에 배향된 홍가신, 기준, 이덕민, 이지함 선 생님의 학문 재조명을 위한 학술세미나 가 지속적으로 개최됨은 물론 인산서원 터의 발굴 및 복원을 위한 본격적인 출 발점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하고 종친회 에서는 인산서원터의 기부체납, 자금출 연 등을 통해 인산서원의 발굴 및 복원 을위해노력하겠다며아산시,아산시의 회, 아산유림회는 물론 배향된 후손 문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 및 참여해 주 시길당부했다. 순천향대학교 김승우 총장은 영상을 통해 오늘 이 학술대회가 큰 학문적 성취 와 함께 우리 아산지역의 문화사업 발전 으로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 한다고 하였으며, 이밖에도 이흥복 온양 향교 원임전교, 오세현 아산시장, 이명 수, 강훈식 국회의원의 축사가 이어졌 다. ※이날 가진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자 료를요약하여12면‘인산서원과잠야박 지계선생’을주제로게재하오니참조하 시기바랍니다. /박성호명예기자(함양박씨구소명종친회) 뱜뱜인산서원및배향인물재조명 뱜‘잠야박지계를중심으로’학술대회 성료 아산시와함양박씨잠야공파종친회(회장면용)가주최하고순천향대아산학연구소가역사문화학회와공동으로 주관하여온양제 일호텔에서븮인산서원 및배향인물 재조명-잠야박지계를중심으로븯학술대회가지난 달 25일개최된가운데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하고있다. 아산시·함양박씨잠야공파종친회주최븣아산지역문화사업발전위한계기단초(端 初) 박면용 회장 박동성소장 밀성박씨고직당공후청계문중(회 장 근 호 )은 지 난 달 말 폭 우 와 장 마 를 대비하여 묘역과 재사(齋舍) 등을 점 검하고 순창 강천산 입구 추모재 뒤 편 축 대 에 천 막 을 씌 워 대 비 해 올 여 름 종 원 들 을 안 심 케 했 다 . 금년 장마는 마른장마로 이 지역에 시간당 20∼30㎜의 장대비가 쏟아지 는 등 강한 국지성 폭우가 예보되고 많은 장맛비가 내렸다. 특히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 호우로 돌변해 지난해 여름 긴 장마 와 폭우로 섬진강 수계에 있는 전남 곡성 구례, 전북 순창 남 원 등지를 할퀴고 간 수마는 많은 피해를 남겼기에 종원들은 조마조마 하다. 이에 근호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은 대형 천막 을 구비하여 씌우고 카톡을 통해 종원들에게 상황을 전함으 로서 종원들은 집행부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며 노고를 치하 하는답을보냈다. 추모재(追慕齋)는 전북 순창군 강천산 입구에 1930년 경 밀 성박씨좌상공후예(10世)로순창입향조인죽포처사휘간형 (艮亨)을 비롯한 선조 재사(齋舍)로 전면 5칸 측면 4칸을 팔 작지붕 와가로 지어져 강천산을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들러 쉬었다가기도한다. 장마븡폭우대비축대점검후안전조치 귀감 밀성박씨청계문중,종원들무한신뢰븡감사전해 밀성박씨청계문중은지난 달 말 장마와폭우에대비하기위해축대에천 막을치고대비함으로서종원들을안심시키고있다. 박근호회장 우리주변에는많은금석문이있다. 이들 금석문은 주로 한문으로 되어 있어 한자세대는 물론 한자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냥 돌에 새겨진 문자쯤으로 이해한 다. 특히 공원이나 유원지에 세워진 비 석 대부분이 순수 한자로 되어 있어 산책 나온 주민들에게는 괸심을 받지 못할뿐더러 자리만 차지하는 그냥 ‘돌(石)’로 취급받는다.비석을 세울 때는 당사자의 업적을 기 리고 이를 본받아 더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고자 함이 역력함 에도한문으로되어있는비석은더이상어필할수없다.해당 지자체는 예산이 없다는 것으로 방치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 이다. 대구광역시달서구와룡윗공원에는상당 수의비석이세워 져있다. 이 중 돋보이는 비석이 지난 달부터 지역주민들에게 읽혀지고있어화재다. 비석의 주인공은 ‘이곡지 수리계장 박광택 기념비(梨谷池 水利싸長 朴光澤 紀念碑)’이다. 비석의 내용은 븮구지신척(舊 池新拓)옛 연못을 새로 쌓아 넓히니/공리홍박(功利弘博)공 리는 넓고 크도다./불유주자(不有主者)나서는 사람 없으니/ 기수능확(其誰能擴) 그 누가 능히 넓혔으리요./ 기주이하(其 主以何) 그 주는 누구였던가?/ 수지수량(誰志誰量) 누구의 의지와 아량이었던가?/ 한년식도(旱年食稻) 가뭄 해 에도 이 밥을 먹으니/ 영이불망(永以不忘) 길이 잊지 못하리로다븯 순 수한문으로 되어 있는 비석 옆에 한글 안내 표지판에 ‘QR코 드’를함께새겨세운것이다. 지나는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큐알코드를 찍으면 사진과 함 께 상세하게 안내를 하고 있다. ‘QR코드’는 2차원 바코드로 흰색과 검정색을 가로 세로 패턴으로 엮어서 숫자뿐만 아니 라 알파벳 등의 문자 데이터도 담을 수 있다. 현재 생산, 물류, 판매, 모바일쿠폰, 광고,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표지판을 세운 박종현 현종은 영등포뉴타운지하상가 대표 이사이다.이곡지수리계장박광택의손자로조부의업적을쉽 게 알리기 위해 본보에 의뢰하여 설치한 것으로 설치 후 조부 의 업적을 조금이나 알릴 수 있어 다행이다 며 조부에 대한 애 뜻한숭조심을드러낸다. 이곡지 수리계장 소성 박광택(小城 朴光澤, 1901~1980) 선 생은 학문이 뛰어나 많은 제자를 양성한 소와처사 박병효(素 窩處士, 炳孝)와 인동 장씨(仁同張氏)와의 사이에 3형제 중 장남으로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서 1901년 태어 났다.선생이 태어나고 4년 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유년시절 을 일제 강점기에 자랐으며, 신학문 대신 아버지로부터 한학 을배우고전통유교사상을이어받았다. 일제강점기많은주민들이기아에허덕이며근근이목숨을 연명한 어두운 시절 선생은 인술로서 목숨을 구하고 한편으 로는 가난을 털어내기 위한 방책으로 사재를 털어 못 둑이 무 너질 위험에 처 한 저수지(이곡지)를 확장 축조해 배 고품을 이겨내게 하여 그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은 1944년 이 곡지에 ‘이곡지수리계장 박광택 기념비’를 세우고, 택지개발 로인해현재의장소로옮겼다. 1966년 마을 주민들의추대로전력도입위원장으로추대된 바 주민들을 설득하여 마을 공동기금을 조성하여 전기도입을 완수하였고, 1973년 마을금고를 설립, 주민금융으로 지역사 업과 복지사업에 크게 이바지하는 등 향리 발전에 지대한 공 헌을 하였다. 선생의 인자하고 덕망이 높은 것을 대구향교에 서 알고 석전대제 종헌관으로 추대되었고, 신라시조왕릉 참 봉으로 천거되어 봉직하였는가 하면 뛰어난 학문으로 많은 시문을엮은‘소성문기(小城文記)’로전해진다. 어려운한자비석한글안내표지판세워 ‘이곡지수리계장박광택기념비’ 뱜큐알코드로함께안내 알기어려운한자비석에한글안내표지판이 세워져길손을잡는다. 특히 큐알코드는청소년들이 쉽게볼 수있다. 큐알코드를 핸드폰으로 촬영하면내용을볼 수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