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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6월30일 수요일 5 (제174호) 관향조 종친회 밀성박씨 송은 공 파 대 종 회 ( 회 장 영 광 )는 지 난 달 26일 오전11 시 보본재 정당 에서 중수고유제 를 올리고 본격 적 으 로 중 수 에 들어갔다. 이번 중 수 는 동 재 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서재는 부분보수 를 하게 된다. 동재는 지난해 초부터 서 까래가 내려앉는 등 심각하게 퇴락되어 총회에서 중수를 결정하고 송은선생의 아들 4형제(우당, 인당, 아당, 졸당) 문 중에서 각출하고 기본 자산을 더해 이달 부터 공사를 시작 금년 내 완공할 계획 이다. 박영광 회장은 고유제 이후 종원들의 관심과 성원이 있을 때 종중이 윤택해 지고 선영을 모실 수 있다며 지속적인 성원을 당부하고 이번 중수에 각 파에 서 헌성해준데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 했다. 보본재는 고려말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송은 박익 선생의 묘재(墓齋)이다. 선생의 체백(體魄)은 일찍이 조선태조 7년(戊寅)에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소 고야(所古夜)에 안장되어 향화(香火) 를 받들어왔다.1794년 정조 갑인(甲寅) 에 후 손 감 찰 정 원 ( 鼎 元 ), 진 사 윤 덕 (潤 德)등이 추모재(追慕齋)를 세웠고,180 3년 순조 계해(癸亥)에 중수하여 보본 재(報本齋)라 개편(改編)하였으며, 192 5년 구사(舊 셴)를 철거하고 중건하였 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니 풍우(風雨) 와 환란(患亂)을 이기지 못해 동재(東 齋 )와 창 벽 (窓 壁 ) 이 무 너 지 고 떨 어 져 수많은 후손들의 마음은 슬픔과 한스러 움이 간절했는데, 송은 선생 서거 600주 년을 맞은 1998년 봄에 사방의 후손들이 재사(齋舍)에 모여 재사(齋舍) 및 동서 재 중수, 원장(垣墻) 개축, 환경정리, 수 호인거실 장외신축, 대문신축, 신도비 각 정비, 주차장신설 등을 의논하여 모 두가 한마음으로 추진하여 지금에 이르 렀다. 한편 보본재 수호인 주택 지붕방수 문 제로 고민하던 종친회는 지난 봄 강판지 붕을씌워산뜻하게정비를마쳤다. /박순제명예기자(경남산청군지부) 보본재(報本齋)중수고유제올려 송은박익선생의묘재(墓齋)븣동재서까래내려앉아 보본재동재의서까래가내려앉아철재로 임시지주대를만들어지탱하고있는가운데지난 달 26 일고유제를올리고이달부터중수가한창이다. 고유제는 박영광 회장이 헌작하고 박희학 고문 (전숭덕전참봉)이 독축으로 엄숙봉행되었다. 수호인 주택 지붕 방수문제를 해결키 위해 강판 으로 지붕을씌웠다. 박영광회장 밀성박씨고양선조원당종중회는 봉 준회장(5월 30일 접종)을 필두로 원당 직원 7명 서울사무소 5명 포함 전직원 12명이 최초접종자인 봉준회장의 권유 와 경험담을 설명하여 스스로 백신접 종을완료하였다. 집행부는 많은 종친회원들과 일반 방문객들을 접촉하는 기회가 많기 때 문에 본인 스스로를 위하고 종친회원 님과 기타 방문객의 건강을 위해 필히 꼭 접종을 해야 하는 것이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설명을 하였고 간혹 집행부를 방문하는 회 원 및 일반인들을 상대로도 봉준회장은 설파를 하여 정부의 예방접종 활동에 일조를 하는 등 종친회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있다. 한편봉준회장은왕좌산및지영동선산을둘러보고는지난 5월부터 벌초를 하고 봉분에 잔디가 죽어있는 관리후손들께 는 연락을 하여 사초 할 것을 권고하였고 시간이 없고 사초에 경험이 없는 회원님들께서는 사초비를 집행부에 납부하여 대 신 작업해 줄 것을 의뢰하는 등 묘역관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며 만전을 기하는 등 코로나19의 어려움속에서도 회원님들 의 건강관리와 건물 관리외에 선산 묘역관리에도 신경 쓰는 등 종중운영에 심혈을 기울여 다행이 종중회원님들은 코로나 19감염과는현재까지아무런영향을받지않고있다. /박봉준명예기자(경기고양시지부) 밀성박씨충헌공파경기도고양시원당종중회 전직원 코로나19 1차 백신접종 완료 지영동왕좌산선영사초작업실시 박봉준회장 두문동 현인으로 세인들의 추앙을 받 아온 송은 박익 선생 과 두 아드님 인당· 졸당 선생을 배향하 고 있 는 산 청 군 신 안 면 진 태 마 을 소 재 신 계 서 원 이 지 난 해 가 을부터 지난 5월 말 까지 순환도로를 개 설하고 꽃동산 및 쉼터를 만드는 등 정화사 업을 마무리함으로서 서원을 찾는 탐방객 들에게편의를제공하게되었다. 신계서원은 가파른 언덕에 있어 급경사 의 오르막길은 편도로 차량의 진입이 어렵 고, 사륜구동의 차량이라도 좁은 노폭으로 인해 교행이 어려 웠다. 이에 지난해 가을부터 마을 회관에서 진입하는 진입로 를 개설함으로서 순환이 가능하고 기존 도로 입구의 하천을 복개하여 노폭을 크게 넓혔다. 그리고 금년 봄부터 시행한 꽃 동산 만들기는 철쭉을 비롯 50여 품종의 꽃을 심어 벽화마을 속에아름다운꽃동산이어우러져힐링의공간으로변모했다. 이번 사업은 동내 이장을 맡고 있는 승제 회장과 산청군종 친회 사무국장을 맡으며 광폭 행보를 이어온 순제 총무의 뛰 어난추진력이더해져전액도비와군비로충당되었다. 신계서원(新溪書院)은 1836년(丙申 헌종2)에 시공(始工) 하여 1869년(己亥)에 工役)을 마쳤다.헌종 5년(1839)신계서 원 정충사(貞忠祠)에 송은 박익선생을 주벽으로 영정(影幀) 을 봉안하고 아당(啞堂),졸당(拙堂)두분의배행하고 춘(春) 3월추(秋)9월중정(中丁)에유림에서봉향(奉享)하였다. 1868년(고종5 무진(戊辰))에 조정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하 여모든서원이훼철되니신계서원역시1871년(辛未)에 훼철 됨으로 향사 받드는 일이 중단되고 선생의 영정 또한 봉안하 지못하였다. 1875(고종12 乙亥)년에 子孫들의 합모(合謨)로 응봉산 중 턱 현 위치에 영정각(影幀閣) 3칸과 세한재(歲寒齋)를 건립 하여 송은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후손들이 춘추로 향화(香 火)를 받들었으며 학당(學堂)으로 이어졌다. 그 후 1917(丁 巳)년에 향중(鄕中)의 유림들의 공의(公儀)로 송은선생 위판 (位版)을 복설(復設)하여 3월 중정일에 석채례(釋菜禮)로 봉 향했다. 1985년(乙丑) 3월 채례시(菜禮時)에 유림들이 신계서원을 복원하자는 공의(公儀)가 있은 뒤 후손들이 그 일을 맡았고, 유림들이 도와 經營하니 사우3칸과 내삼문 그리고 대문3칸을 중건하고 주위를 정화했으며 제기 18점이 지방문화재 제135 호로 지정되어 지자체에서 문화재 보호각(東齋) 3칸을 중건 하였으며 원우(院宇)를 번와( 붕瓦)하고 보수하고, 1989년 3 월11일복설하였다. /박순제명예기자(경남산청군지부) 신 계서원정화사업마무리 순환도로개설및꽃동산과쉼터만들어 집행부임원개선회장승제·총무순제 박승제회장 “효제(孝悌)는 인간의 근본인 것이며 문장과 예술이란 끝이 되는 것인즉 문학 에만 전력하고 효도에 게을리 할진데 차 라리 그의 근본 된 효도를 먼저하고 그 의 끝이 된 학문을 뒤에 할 것입니다.”라 며 효를 실천했던 난정(蘭亭)박윤채 선 생과 부인 달성서씨 묘비가 지난 6일 오 전 11시 광주 광산구 송산동 선영에 세 워졌다. ▶묘비문11면 난정공의 아들 사은(思恩) 용철 현종 이 주선하고 노강박래호 선생이 비문을 지어 제막식을 갖게된 난정공은 지극한 효자이고, 부인 서연화 여사 또한 무장 향교 유림에게 포양문을 받았다. 특히 아들 용철 현종의 효행 또한 지극하여 3 대에 걸친 효행은 지역의 미담으로 남고 있어 노강 박래호 선생이 지은 비문을 함께 소개해 본다. 한편 이날 제막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외부인사 초청 없이 직 계가족 행사로 이어졌으며,난(蘭)을 남 달리 사랑했던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비 수에난(蘭)을새겼다. 난정박윤채선생과부인달성서씨묘비세워 대를이은효자효부모범적인삶미래세대교훈되어 난 정공 묘 비 제막 식후 공의 아들 박용 철 전(前) 광주북구의회 의장과 저자 노강 박래호 선생이 함께하고있다. 밀성박씨 좌상공파 대종회는 지난 10일 행순 종손과 현준, 상섭이 30도를 웃도는 초여름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봄 벌초 를마쳐단소주변이산뜻해졌다. 서석단은 고려벽상공신 증 좌시중 박춘 선생과 그의 아들 손자 등 4위를 모신 단소로 광주 북구 화암동에 1976년 제단 (서석단)을설치하고제향을받들어왔으나세월을이기지못 하고 규제에 묶인 서석단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퇴락하였는 데 2019년 어렵게 인허가를 얻고 종원들의 성금으로 지난해 성대하게중수사업을마쳤다. 밀성(밀양)박씨서석단봄벌초마쳐 고려벽상공신증좌시중박춘선생과그의아들손자등4위를모신단소,잔디관리위해년 2회이상